I후불제 인생I
정상궤도에서 벗어나 삶이 어긋났다는 생각이 잦았다. 크게 망하지도, 완전히 무너지지도 않았다. 다만 모든 게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바쁘게 살고 있었지만, 앞으로 나아간다는 감각은 사라졌다. 아무리 열심히 정리해도 방 안이 어수선한 것처럼, 인생은 마이너스(-) 상태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앞으로 더 나아가려는 노력이 아니다. 현재의 삶을 재정렬할 시간이다.
흔히 인생이 틀어지면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업을 바꾸고, 관계를 정리하고, 환경을 갈아엎어야 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삶은 이미 충분한 재료를 갖고 있다. 문제는 생(生)의 재료가 아니라 배치였다. 우선순위의 재배열이었다. 타인의 박수가 앞줄을 차지하는 동안, 정작 내가 숨 쉴 자리는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다.
나는 하루의 순서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했다. 밤늦게 자고 아침 늦게 일어나던 시간의 순서부터 바꾸었다. 밤 11시 이전에 자고 새벽에 일어났다. 가장 맑고 깨끗한 시간을 남에게 주지 않기로 했고, 가장 맑은 시간을 나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는 시간의 재배치는 생활 속의 효율을 높여주었다. 그리고 해야 할 일보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나둘 지워냈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웠다. 익숙했던 것들을 내려놓는 일, 처음에는 어색하게 다가왔다.
삶의 재정렬 과정에는 반드시 공백이 생긴다. 하지 않던 것을 하지 않으니 시간이 남았고, 만나던 사람을 덜 만나니 고요가 찾아왔다. 그 고요는 처음엔 낯선 보급품 같았다. 주변의 시선도 흔들림을 키웠다. 왜 예전처럼 살지 않느냐는 주변의 질문들, 요즘 많이 달라진 것 같다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재정렬의 시간은 혼자만의 결심으로 끝나지 않았다. 세상의 기준과 나의 기준을 분리해내는 싸움이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급함을 잠재우는 일이었다.
삶을 재정렬하고 잠시 여유의 공백이 생긴 날이었다. 오랜만에 나의 숨소리를 들었다. 조급하지 않은 호흡, 스스로 허락한 침묵들이 나를 감싸 안았다. 그날 이후 성과보다 지속을, 속도보다 방향을, 평가보다 내면의 안정감을 앞자리에 놓았다. 모든 것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길을 잃지는 않을 것만 같았다.
사실 삶을 재정렬하는 시간은 가끔 찾아온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점검의 기회다. 우리는 살면서 계속 어긋난 길을 걷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과 급한 것이 자리를 바꾸고, 나의 몫과 타인의 기대가 엉켜서 뒤죽박죽된 상태다. 그때마다 내 삶은 다시 재정렬할 것을 요구한다. 재정렬된 삶 또한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흔들림이 적다. 삶이 버거울 때 필요한 것 중의 하나는, 앞날을 위해 덜어내고 제자리를 찾은 일이다.
삶은 새로 쓰는 백지가 아니다. 이미 적힌 문장들을 제자리로 옮겨 심는 이식과정이다. 그렇게 정렬된 여백 사이로 비로소 내 길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