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퇴사 후 산티아고로 떠난 숨고르기 청년의 순례길 #21
내가 대학을 졸업한 후 몇 년을 방황하다가 들어간 대기업 신입연수 자기소개에서 이런 말을 했다.
"풍경은 늘 변한다."
언젠가 조말론 여사가 인터뷰를 하면서 지나가듯 했던 말이었다. 별것 아닌 말 같았지만 우리의 인생을 관통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풍경도 영원하지 않고, 보잘것없는 경관도 다 한 때뿐이다. 나는 언제든 상황은 바뀔 수 있으니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묵묵히 걸어 나가자는 의미로 수백 명의 동기들 앞에서 앞으로의 포부를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기쁜 날이 많았던 만큼 슬픈 날도 많았다. 화가 나는 날만큼이나 설레는 날도 종종 나를 찾아왔었다. 좌절감이 몰려드는 날이면 내가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 다짐했던 이 문장을 되새기면서 나를 다독이곤 했었다. 그러나 3개월 만에 뛰쳐나온 두 번째 회사로 이직했을 때는 이 문장을 새까맣게 잊었다. 이 문장을 되새길 여유조차 내게 주어지지 않았기에 작은 일에도 아파하고, 보잘것없는 말 한마디에도 온몸에 가시가 박혔다. 그렇게 만신창이가 된 채로 회사를 제 발로 나오고 도망치듯 순례길을 걷기 시작했다.
영하에 육박하는 날씨에 새벽마다 추위에 떨며 걷기 시작한 지 벌써 3주가 훌쩍 지났다. 한 발짝도 더 내딛지 못하고 그대로 포기해야 할 것 같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는 순례길에 조금 익숙해진 것 같다고 안심이 되던 차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걸음걸이가 남들과 다른 것인지 등산을 할 때마다 내리막에서 자주 미끄러지곤 했기에 눈이 반갑지 않았다. 이미 봄이 한참 찾아오고도 남았을 4월 중순에 눈이라니 황당하기까지 했다. 이제 좀 걸음에 자신이 붙었다고 생각했는데 자만한 나에게 한번 더 쉬어가라는 의미로 내리막에 눈까지 내린 것일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구름이 해를 가린 데다가 눈보라가 휘몰아쳐 10m 너머로는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이 길이 맞는지 확신을 가지지 못한 채로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갔다. 철의 십자가를 지나고 한 삼십 분이 지났을 때쯤부터는 줄곧 내리막이 시작됐다. 아마 그 지점이 폰세바돈의 정상이었던 것 같았다. 눈이 온 데다 내리막이니 평소보다 한참 느린 속도로 조심하며 내려갔다. 달음박질해 내려오면 10분이면 내려올만한 거리를 30분이 넘도록 내려오질 못했다. 중간중간 나무가 걷히고 저 밑으로 산기슭이 살짝 보이면 한참을 내려가야 하는 것이 아찔했다. 걷기 시작한 지 2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등산스틱을 짚고 아주 천천히 내려왔음에도 무릎이 아파오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덕유산을 등산하다가 호되게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다지 무리하지도 않았고, 등산하면서 그렇게 무릎이 아팠던 적이 없었는데 그날만큼은 한 발짝도 내딛을 수 없을 정도로 무릎이 아파서 뒷걸음질 치면서 걸어 내려오느라 동행들에게 한참 민폐를 끼쳤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오늘 코스는 내리막으로 내려오기에는 정돈되지 않은 바위를 밟으며 걷는 코스인 데다 눈까지 내려와 뒷걸음으로 내려가는 것조차도 불가능했다.
신발을 바꾼 이후로는 피로가 잘 찾아오지 않아서 서너 시간은 거뜬히 한 번도 쉬지 않고 걸어왔었는데 이 날만큼은 한 시간 반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멀리 산 중턱 마을이 보이고 그 위로 벤치가 보였다. 나는 벤치에 앉아 저 산 밑까지 내려다보며 잠시 쉬었다. 눈을 밟느라 살짝 젖은 발을 말릴 겸 양말을 벗고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오분 정도 지났을까 점점 하늘이 개면서 흐릿하게 보이던 저 밑 마을이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내려왔던 방향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니 반대쪽은 아직도 구름이 잔뜩 끼어 보이지 않았다. 불과 한 시간밖에 차이 나지 않는 거리인데도 한쪽은 맑고 한쪽은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산기슭으로 내려오기까지 눈이 내리면 어쩌나 고민했었는데 한시름 놓았다는 생각에 그대로 한참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한참 동안 내 머릿속에서 잊고 있었던 풍경은 늘 변한다는 그 문장이 떠올랐다. 순례길에서 때로 내 고통은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시작했다. 한발 한발 내딛으면 오늘 하루는 걸어낼 수 있는 통증에도 내일 하루는 어떻게 걸어내지? 하는 걱정에 그 통증보다 더한 고통을 느껴왔다. 그런데 풍경이 늘 변하듯 상황도 늘 변하는 법이다. 흐린 날이 있으면 맑은 날도 있고, 추운 겨울이 오면 더운 여름도 온다. 때로는 이 당연한 진리를 잊고 살 때가 많다. 이 당연한 이치를 몰라 그동안 괴로웠던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올라오자 내 안에 지난 3주간 내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찝찝함이 싹 가셨다. 내가 지금은 비록 누구보다 느리게 내려가지만, 눈이 그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내려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법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이 이 날 하루만큼은 나에게 큰 위로와 감동을 전해주었다.
구름이 거의 다 걷히기 시작하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계곡을 따라가면서 아주 가파른 바위길을 손으로 짚고 내려가야 했다. 좁은 길을 조심해서 내려가다 보니 중간중간 멈춰서 내 뒤에서 기다리는 순례객이 없는지 확인했다. 혹시라도 나 때문에 멈춰 선 순례객이 있다면 앞서가라고 손짓을 보내고 부엔까미노 인사와 함께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여러 명을 내 앞으로 보내더라도 더 이상 내 마음 가운데 초조함이 올라오지 않았다. 이 풍경 또한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산을 거의 다 내려오니 작은 마을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시간은 1시를 훌쩍 넘겼다. 마침 한국인 동행 K와 M이 거의 나를 따라잡았다는 연락이 왔다. 이제 가파른 내리막길이 끝났으니 안심하고 쉬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중간 마을에서 만나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몰리나세카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멋진 시내와 다리 위로 펼쳐진 풍경이 압도적이었던 곳이었다. 다음번 순례길에 방문하면 폰페라다가 아니라 이 마을에 묵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마음이 든 것이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K와 M도 이 마을에 묵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오늘 하루 내리막길을 포기하지 않고 무사히 내려온 나에게 포상하는 마음으로 비싼 스테이크를 시켰다. 평소에 스테이크를 잘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 날 만큼은 왠지 스테이크가 주는 풍족한 식사라는 호화로움을 누리고 싶었다. 메뉴가 나오자 우리 셋은 모두 입이 쩍 벌어졌다. 꽤나 비싼 가격이긴 했지만 이 작은 시골마을에서 기대하지 않은 어마어마한 양의 스테이크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실제 양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도 훨씬 많았는지 결국 혼자서 1인분을 다 먹지 못하고 남겨야 했을 정도로 풍족했다.
야외 테라스석에서 천천히 스테이크를 먹으며 멋진 골목길 풍경을 바라보는데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걷혔기에 오늘은 더 이상 비가 내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신발이 젖지는 않을 정도로 조금씩 비가 내렸다. 평소 같았으면 그대로 실내에 들어가서 먹었겠지만, 이 또한 금방 지나가리라고 생각하고 싶었던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식사를 마무리했다. 식사를 거의 끝내자 길고양이 두 마리가 내 테이블 근처를 계속 어슬렁어슬렁거렸다. 내가 먹고 있는 고기가 탐나는 듯 보였다. 평소에도 이 식당 근처에 자주 나타나는지 식당 주인아저씨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남은 고기 두 점을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한 마리는 경계심이 많은지 그대로 고기를 물고 달아났고, 한 마리는 기분이 좋았는지 그대로 내 앞에 자리를 잡고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남은 고기는 없는데 접시에 살짝 남은 고기 자투리를 건넸더니 잽싸게 받아먹고는 아주 좋았는지 벌러덩 드러누웠다. 고양이의 애교를 보니 어느새 비는 다시 그쳤고, 고양이는 그대로 내 옆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기 시작했다. 눈과 우박, 비까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쳤다 내리기를 반복했던 숨 가빴던 오늘 하루의 순례길을 맑은 햇살 아래서 고양이와 함께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