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에 필요한 세 가지

대기업 퇴사 후 산티아고로 떠난 숨고르기 청년의 순례길 #22

by설읽은

원래 오늘 가기로 했던 목적지 마을인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는 차승원, 유해진 등 유명한 배우들이 순례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한다는 콘셉트의 예능 '스페인 하숙'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한국인 동행들은 배우들이 식사를 대접하던 그 알베르게에 한번 들러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 예능을 본 적은 없었지만 기념 삼아 가보는 게 나쁘지는 않았기에 기회가 된다면 가보자고 했다. 그런데 남은 일정들을 살피다 모레 일정이 순례길에서 마지막으로 높은 산을 넘는 구간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더구나 처음부터 끝까지 오르막 밖에 없는 데다 큰 마을이 없어 식당이나 바르처럼 쉬어갈 곳도 마땅치 않아 보였다. 나는 오르막이 심하지 않은 오늘 10km 정도 더 걸어 트라바델로까지 가자는 제안을 했다. 다른 동행들은 모두 비야프랑카까지 가보고 기운이 남는다면 그렇게 하자고 약속을 하고 다 같이 길을 떠났다.


동행 4명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같이 걸은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 폰페라다는 꽤나 마을이어서 박물관처럼 보이는 곳도 있었고, 시내를 벗어나는 데에만 제법 시간이 걸렸다. 마을을 조금 더 벗어나니 드넓은 포도밭이 보이기 시작했다. 앙상한 가지를 보며 몇 달만 지나면 영롱한 열매를 맺을 풍경을 상상하며 사잇길을 지나갔다. 밭을 지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터널처럼 나무로 덮인 풀숲이 나왔다. 속도를 올려 앞서 걷고 있는 S를 따라잡으려는데 내 옆으로 덴마크 할아버지 M이 지나갔다. M은 어제도 나와 같은 숙소에서 묵었었는데, 내가 8시에 임박해서 출발한 것을 생각하면 그것보다도 훨씬 늦게 출발한 듯했다. 80이 넘은 연세에도 큰 키로 저벅저벅 걷는 모습을 보자면 순례자들 중에 가장 건강한 사람처럼 보였다. 성큼성큼 발을 떼는 할아버지의 속도에 도저히 맞출 수가 없어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기로 했다. 아마 오늘 트라바델로까지 가게 되면 모레 오세브레이로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며 인사를 하고 나는 그대로 원래 속도대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인사였다. 이틀 뒤 오세브레이로에서 할아버지와 늘 함께 걷던 독일인 친구 L에게서 할아버지는 컨디션이 악화되어 결국 덴마크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분명 할아버지는 건강해 보이셨는데 보이는 것은 늘 실제와는 다른가보다 싶었다.


그렇게 할아버지가 다음을 기약하고 집으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흔히 순례길을 떠나려면 꼭 필요한 세 가지가 있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첫째는 한 달 동안 일을 하지 않고도 멀리 떠날 수 있는 돈이고, 둘째는 한 달 동안 지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건강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 한 달이라는 시간이다."


순례길로 와보기 전까지는 머릿속으로만 이해하던 말이 직접 경험해 보니 피부로 와닿았다. 한 달 동안 휴가를 내고 멀리 스페인에서 순례길을 걸으려면 안정적인 온라인 게임이 있거나, 적어도 수백만 원은 준비를 해두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례길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회사에 장기 휴가를 내고 온 중년이거나, 퇴사 후에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온 젊은이들이 유독 많았다. 그런데 더 실감이 났던 말은 두 번째였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중간에 다쳐서 포기하고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난간이 없는 2층 침대에서 낙상사고를 당해 뼈가 부러졌다거나, 기저질환이 악화되었다거나 하는 소식 말이다. 또한, 길을 걷다 보면 중간중간 십자가 앞에 돌무더기가 쌓여있거나 사진이나 이름이 놓여 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대부분 순례길을 걷다가 불의의 사고로 생을 달리 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니 건강히 순례길을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 한 달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도, 그렇기에 이번 순례길이 내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마지막 인사인지도 모르고 덴마크 할아버지를 앞서 보내고 뒤를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비야프랑카 마을이 나타났다. 아침에 출발한 폰페라다에서 비야프랑카까지는 20km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예상했던 시간에 맞추어 도착했다. 다들 기운이 꽤 남긴 했지만 10km나 더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점심을 먹고 나서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나는 바로 구글맵을 켜서 근처에서 가장 먹음직한 음식을 파는 식당을 찾았다. 애석하게도 시간이 조금 늦었는지 연 곳이 딱 한 군데밖에 없었다. 우리는 마을 초입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강과 다리에서 멀지 않은 식당으로 향했다. 우리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젊은 여자 사장님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때문인지 가게 안에는 손님이 우리뿐이었다. 우리는 순례자 메뉴를 다양하게 시켜 나눠먹기로 했다. 파스타에 돼지고기, 새우, 소고기 등을 시켰다. 이 식당은 순례길에서 먹었던 식당 중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양도 푸짐하고 맛있었다. 모두가 오랜만에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을 먹는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M이 유창한 스페인어로 다들 음식이 너무 맛있었다고 흡족해한다고 전했더니 식당 사장님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는 오늘 이곳 비야프랑카에서 묵느냐고 물어왔다. 조금 더 걸어 트라바델로까지 간다고 하니 그곳에 마을 초입에 알베르게 하나가 있는데 순례자들 사이에서 평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기회가 되면 꼭 가보라고 추천해 주었다. 맛있는 음식을 배 터지게 먹은 덕분에 동행들은 모두 기운을 내고 트라바델로까지 힘차게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트라바델로까지 걸어가는 길은 차도를 따라 걷는 길이 많아 쉬운 듯 쉽지 않았다. 평평하게 길은 깎여있지만 위험하게 빠르게 차들이 지나가는 길을 건너야 할 때도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차도 가장자리로 걷기도 했다. 다행히 차도와 인도가 블록으로 막힌 곳들도 있기는 했지만 내 몸집보다 몇 배는 큰 트럭이 지나갈 때면 괜히 움찔했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나 싶은 구간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구간이 그랬다. 어느 순간부터는 블록으로 안전하게 분리가 되어 있어 그대로 길을 따라서 한참을 걸어갔다. 언제나 그렇듯 걸음 속도가 가장 빠른 S가 제일 앞에 앞장섰고, 그 뒤를 군인 출신답게 기운 넘치는 K가 뒤따랐다. 나는 M과 엎치락뒤치락하며 후발대로 걸었다. 비야프랑카에서 트라바델로까지 한 중간정도 도착했을 때쯤 되니 아주 작은 마을 페레제가 나타났다. 한 시간밖에 걷지 않아서 엄청 힘들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이 마을을 지나고 나면 더 이상 쉴 수 있는 마을이 없기 때문에 벤치가 나오는 곳에서 잠시 쉬었다가기로 했다. 내가 벤치에 앉으니 저 멀리에 덩치 큰 개가 다가오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털이 맨질맨질하고 깨끗한 것을 보니 들개는 아니었지만 어릴 적 개에 물린 적이 있는 나로서는 멀리서만 보고 싶었다. 제발 가까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던 차 앞서가던 S가 어느새 내 뒤로 뒤처져 있었는지 저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S는 개를 보자 반가웠는지 내 벤치를 지나쳐 개에게 다가가 개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덕분에 개는 나에게 다가오지 않고 S와 교감을 나누기만 했다. 이 개는 순례길 위에 살며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자라겠구나 생각이 들어 그 작은 생명이 내심 부러웠다. 개에게 정신이 팔려 시간 가는지도 모르게 쉬다 보니 어느새 20분을 넘게 그 마을에 머물렀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트라바델로를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다시 한 시간 반 정도를 걸었을 때 페레즈만큼 작은 트라바델로에 도착했다. 마을에 들어서니 정말 식당 사장님이 말한 대로 알베르게가 보였다. 호주 국기가 휘날리고 있는 것을 보니 알베르게 주인이 호주 사람인 것 같았다. 며칠 전 폰세바돈 알베르게 주인도 독일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아마 이곳도 순례길을 왔다가 이곳에 반해 알베르게를 차린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가까이 가 열었는지 확인해 보았지만 아쉽게도 불이 꺼져있었다. 부엔까미노 앱으로 확인해 보니 열흘 정도 뒤에 열기 시작한다고 나와있었다. 아마도 준성수기가 시작되는 4월 1일에 생장에서 출발한 순례객들의 타이밍에 맞춰서 여는 것 같았다. 부엔까미노 앱으로도 보니 리뷰가 상당히 좋은 곳이었는데 못내 아쉬웠지만 우리는 마을 끄트머리에 위치한 알베르게로 향했다.


그렇게 들어간 마지막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하려고 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후 6시가 지났다. 알베르게 주인은 4명이 모두 일행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모두 한 방으로 묶어주겠단다. 다시 내려놓은 가방을 메고 올라가니 딱 우리 4명 침대만 있는 아담한 방이었다.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방을 쓸 수 있겠다며 모두들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곧 저녁을 먹을 시간이라 얼른 씻을 준비를 하러 옷가지를 꺼내는데 남녀 한쌍이 지나가면서 우리 방을 들여다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여자는 언뜻 한국인처럼 보이는데 한국인 같지 않은 얼굴이었다. 알고 보니 내가 혼자 메세타 평원 걷고 있을 때 하루 뒤에서 K, M과 함께 걸었던 동행이라고 했다. 국제기구에서 일한다는 여자는 어쩐지 글로벌한 느낌이 풍긴다 했다. 남자는 진한 인상에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종잡을 수 없는 외모였다. 키는 190cm 정도로 문틀 상단에 닿는 장신이었다. 외모는 홍콩 배우처럼 보기 드물게 잘생긴 청년이었다. 나중에 K에게 듣기로는 아프가니스탄 사람인데, 현재는 유럽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K도 처음 보았을 때 중앙아시아나 중동 계열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 스스로 잘생긴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면서 입담과 재치가 뛰어나단다. 둘은 우리를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했고, 얼른 씻고 마을 초입에 있는 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다 먹고 방에 들어오니 어느새 시간은 알베르게 문을 잠그는 열 시에 가까웠다. 별로 이야기를 한 것 같지 않은데 6시 넘어서 체크인을 하니 하루가 더 빨리 지나간다. 내일 힘내서 오르막길을 걸으려면 일찍 일어나서 걸어야 하지 않겠냐며 모두 잠에 들 준비를 했다. 나는 가위바위보에 져서 2층 침대를 쓰기로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아무리 불편한 것이 있더라도 다 받아들일 수 있고, 오히려 그것들을 통해 성장할 수 있어서 좋다고 여기는 편인데, 난간 없는 2층침대만큼은 적응하기가 어렵다. 침대에서 조금만 뒤척여도 그대로 1층 바닥으로 떨어지는 구조인데, 심지어 떨어지면서 잡을 수 있는 바조차 없었다. 잘 때 뒤척임이 많은 나는 이대로는 잡에 들기 어려울 것 같아 가방이라도 옆에 막아두고 잘까 고민이 들었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을 눈치챘는지 상황파악이 빠른 M이 가방에서 혹시 몰라 준비했다면서 난간 대신 묶어서 사용하라고 노끈을 꺼내주었다. 엉성하고 사이로 얼마든지 빠질 수 있지만 부실하게나마 1차 방어막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공사를 마치고 나니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30km를 걷는 일정이라 고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할만했다면서 다들 뿌듯한 하루였다는 후기를 남겼다. 조용한 방에서 다 같이 짧게 자신의 소감을 나누니 참으로 좋았다. K는 오히려 30km를 걸은 오늘보다 20km밖에 되지 않지만 내내 오르막길을 걸어야 하는 내일이 더 걱정이라며 윤종신의 '오르막길'을 다 같이 취침송으로 듣자고 제안했다. 주옥같은 가사를 들으며 지난 순례길과 내일의 순례길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겠다 싶었다. 내가 좋다고 입을 떼기도 전에 K는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었다. '이제부터...'하고 조용하게 가수의 목소리가 시작되자마자 S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하루 종일 걷는 일정에 많이 피로가 쌓인 모양이었다. 나도 얼른 잠에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후렴구까지 듣지 못하고 그대로 잠에 들었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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