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퇴사 후 산티아고로 떠난 숨고르기 청년의 순례길 #20
순례길에 오르기 전만 하더라도 내게 스페인은 태양이 내리쬐는 정열의 나라였다. 구슬픈 듯 흥나는 음악에 따라 추는 플라멩코를 떠올리면 분명 스페인은 뜨거운 나라였다. 여름에는 40도를 넘나드는 더위가 이어진다고 하니 그리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여름에 40도까지 올라간다고 하니 4월 정도면 이미 초여름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나를 포함해 만나는 모든 순례객들이 하나 같이 하는 말이 이렇게 스페인이 추울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순례길은 종종 1000m가 넘는 고지대를 걷다 보니 기본적으로 기온이 낮은 편이다. 거기다 매일 일출보다 이른 시간에 하루 일과를 시작하다 보니 쌀쌀한 새벽 공기를 맞으며 걸으니 더 춥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내복은커녕 긴팔도 아주 얇은 옷 하나밖에 챙기지 않아 추위에 덜덜 떨며 얇은 재킷 하나에 의지해 걸음을 이어나갔다. 강을 건너다 장갑을 떨군 탓에 아침마다 칼바람에 꽁꽁 어는 손을 입김 호호 불어가며 녹인 지 벌써 3주가 지났다. 이제 4월 중순을 지나가고 있으니 추위는 가시지 않을까 방심하던 찰나에 다시 한번 산 위로 올라가는 코스가 나왔다.
아스토르가에서 폰세바돈까지는 25km가 넘게 걸어 평균보다 긴 코스다. 더구나 600m 오르막을 쉬지 않고 올라야 해서 더욱 쉽지 않았다. 이제는 도착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싶던 생각이 열 번쯤 들었을 무렵 산 꼭대기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빨리 도착해 빠르게 씻고 야외 개수대에서 손빨래를 하려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실내에 달리 빨래를 말릴 만한 곳이 없어 그대로 옷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뒤뜰과 이어져있는 라운지에 가만히 앉아 들어오는 사람들과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비가 점점 거세지기 시작하더니 우박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뿔싸. 한국에서도 본 적 없는 우박이라니.
그렇게 한참이 비와 우박이 번갈아가며 내리기를 반복하다가 해가 질 무렵 다시 조금씩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산 위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저녁을 먹으러 식당이 위치한 옆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당에는 이미 다른 순례객들로 가득했고, 남은 한 테이블에는 한국인 동행 셋이 앉을 수 있는 자리만 남아있었다. 나는 얼른 자리에 앉아 서빙되는 음식을 받았다. 자리에 앉고 보니 우리 테이블에는 대만 커플 남녀와 프랑스인 아저씨 2명이 앉아있었다.
대만 커플은 어떤 말을 하더라도 리액션을 크게 해주는 착한 친구들이었다. 프랑스 아저씨들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해 프랑스어로 이런저런 농담을 했는데, 하나도 알아듣지 못할 텐데 웃기다는 듯 크게 웃어젖혔다. 나는 한두 번 반응을 해주다가는 지쳐서 대만 친구들에게 아저씨를 맡기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저 건너편을 보니 나와 늘 같이 걷던 외국인 동행친구들이 보였다. 역시 말하지 않아도 같은 알베르게에 묵는구나 생각해서 물어보니 숙소는 다른 곳인데, 저녁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아 이 알베르게 식당으로 왔단다. 자신들이 머무는 반대편 알베르게는 너무 추운데도 난방을 틀어주지 않는다면서 이곳에 묵는 내가 부럽단다. 별생각 없이 마을 초입에 보이는 알베르게에 바로 들어온 것인데 뜻하지 않은 횡재를 했다. 노르웨이 할아버지 M은 식당 한편에 걸린 기타를 집고는 서툴지만 느낌 있는 폼으로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익숙하게 흘러나오는 올드팝 반주에 맞춰 다 같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숨 가쁜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 날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기 위해 나는 남들보다 일찍 잠에 청했다. 폰페라다까지 가는 다음 코스가 27km인 데다 줄곧 내리막길이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오르막이 더 힘들다고들 하지만 나는 걷는 방법이 잘못된 것인지 내리막을 조금 걷다 보면 무릎이 아파 빠르게 걷지 못한다. 그래서 내리막에서는 정말 천천히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종종걸음으로 걸어내려가곤 한다. 직선거리가 27km이지만 내리막으로 치면 그것보다 훨씬 더 긴 거리일 테고, 걸음 속도까지 느리니 8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일찍 잠에 청한 탓인지 알람을 듣지 않고도 5시 정도에 눈이 번쩍 떠졌다. 눈을 떠보니 모두가 깊게 잠들어있었다. 아직도 가슴 통증은 심하게 남아있어서 옆으로 돌아서 한참을 낑낑대며 팔 힘으로 일어나야만 간신히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이층 침대에서 내려올 때는 더 심각했는데, 팔을 길게 뻗어서 내려오면 가슴에 힘이 들어가 팔을 접어서 바짝 몸을 계단에 붙이고 조심스럽게 내려와야만 통증을 참을 수 있었다. 통증을 이겨내고 조심스레 가방을 챙겨 1층으로 내려왔다. 불이 꺼져 깜깜한 1층에 후레시로 내가 앉아있는 곳만 간신히 비추어 신발을 갈아 신고, 가방에서 산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따로 짐을 정리할 공간이 없어 남들 자는 방에서 눈치를 보며 조용히 짐을 싸던 곳들을 생각하니 아침 일찍 떠나는 순례객에게 이렇게 별도의 짐을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것은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 10분 정도 짐을 정리하는데 위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 잠시 지나가면서 마주쳤던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이미 위에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내려오셨는지 몇 가지 물건만 확인을 하고는 그대로 뒷마당에 있는 문으로 나갔다. 할아버지가 나가면서 후레시로 밖을 비추고 나서야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었는데 어마어마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날이 추워서 잘하면 눈이 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날씨 앱을 켜보니 아니나 다를까 기온은 영하를 나타내고 있었다. 4월 중순에 눈이 오는 스페인이라니,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할아버지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도 얼른 길을 따라나섰다. 혼자서 깜깜한 새벽길을 많이 걸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이 날 따라 칠흑 같은 어둠이 무섭게 느껴졌다. 눈이 내리는 데다 하늘은 구름에 덮여 달빛 하나 새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었다. 아직 마을을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캄캄하다면 산길을 걸으면 얼마나 무서울까 생각하며 저 멀리 할아버지를 빨리 따라잡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속도를 올렸다. 할아버지는 크게 속도를 내어 걷지 않았던 탓에 마을을 벗어날 즈음 할아버지 뒤에 바짝 붙어 걸을 수 있게 됐다. 혼자 걷고 싶은 할아버지에게는 반갑지 않은 불청객일 수 있겠지만 혼자 걷는 것이 무서우니 어쩔 수 없다며 합리화를 하고는 까만 밤길을 따랐다. 혼자서 후레시를 비추었다면 보이지 않았을 것이 후레시 두 개로 이곳저곳을 비추며 걷다 보니 꽤나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의 불빛만 보면서 문제없는 큰길이라고 생각하며 따라 걷다가 내 옆을 후레시로 비추면 낭떠러지가 있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아찔한 마음을 가다듬고 걷기를 몇 분 지났을까 할아버지가 한 울타리를 지나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혹시나 울타리 밖에 다른 길이 있는 걸까? 잘못 길에 든 걸까? 생각에 앱을 켜보았는데 분명 이 길이 맞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왼쪽으로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거대한 무덤과 같은 돌무더기 위에 십자가가 박혀있었다. 순례길에 오기 전에 모두가 자기가 살던 곳에서 돌을 하나씩 가지고 와서 철의 십자가 앞에 놓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한 달 가까이 걸으면서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철의 십자가였다. 할아버지는 이 십자가 앞에서 긴 기도를 이어갈 생각이었는지 길 한 곳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이제는 할아버지를 방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짧게 기도를 하고는 금방 자리를 떴다.
할아버지와 헤어지고 길을 걷다 보니 점점 눈이 거세졌고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수준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한 삼십 분이 지났을 때 서서히 날이 밝아오며 앞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마치 한라산 정상에 내가 서있는 것처럼 온 세상이 하얗게 덮여있었다. 눈바람에 추위가 손을 시리게 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 눈을 만지고 싶다는 생각에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었다. 지나가는 누군가 이것을 보고 웃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