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서울역에서 인천공항까지

대기업 퇴사 후 산티아고로 떠난 숨고르기 청년의 순례길 #17

by설읽은

서울역에서부터 인천공항까지 직선거리가 얼추 50km 내외라고 한다. 공항철도 직통열차를 타더라도 1시간 걸리는 거리니 가까운 듯하면서도 꽤나 거리가 있다. 누군가 내게 서울역에서 인천공항까지 걸어서 가라면 절대 할 수 없다고 고개를 내저었겠지만, 순례길을 걷다 보면 때로는 50km가 별것 아닌 것 같은 날이 온다. 레온으로 가던 날이 딱 그랬다. 아침에 출발할 때도, 심지어 점심을 먹을 때조차도 한참을 걸을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말이다.


기부제 알베르게의 장점이자 단점은 아침밥을 준다는 것이다. 보통 기부제 알베르게의 아침 식사는 일곱 시에 제공이 되는데, 아침을 먹고 나면 일곱 시 반이 넘고 그제야 준비하고 가방을 싸기 시작하면 여덟 시까지는 서둘러야 한다. 아무리 비수기라지만 여덟 시에 출발하는 것은 꽤나 여유로운 출발인데, 두 번이나 만실에 다음 마을까지 갈 뻔했던 나로서는 여덟 시에 출발하는 게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 나름대로 나만의 순례길을 걸어 나가는 것이라 생각하게 된 탓인지 '될 대로 되어라'는 여유가 생겼다. 방이 꽉 차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어떤 마을이든 빈 침대 하나쯤은 있을 터다.


닭죽과 비슷한 맛이 나는 뽀얀 국물의 파스타와 샐러드를 먹고 2층으로 올라가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없다. 아무래도 식사하기 전에 준비를 다 해놓고 떠난 모양이었다. 호스트에게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아 얼른 준비를 하고 여덟 시가 되기 전에 부리나케 알베르게를 빠져나왔다. 걷다 보니 여느 메세타 평원이 그랬듯 끝없이 드넓은 들판이 나를 반긴다. 한참을 걸어도 걸어도 긴 직선도로만 나온다. 차도 옆 흙길을 따라 걷다가, 흙길이 차도가 되면 오른쪽으로 붙어 걸어가다가 꽃밭도 구경하고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가는 것도 구경했다. 한참을 걸어도 특별한 풍경이 펼쳐지지는 않았다. 간간이 유채꽃처럼 보이는 꽃밭이 유일한 볼거리였는데 그마저도 그리 넓지 않아서 한 스무 발자국이면 지나쳐버리는 곳이었다. 중간중간 마을에 들러도 더 이상 스페인의 작은 마을이 새롭게 느껴지지 않은 탓일까 잠시 벤치에 앉아 쉴 뿐 마을을 둘러보지 않고 그대로 빠져나왔다.


그렇다고 해서 순례길이 지루하다고 느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왜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힘들게 이 순례길을 걷고 있는지 신세한탄하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그저 길 위에 나와 조우하는 시간으로 온전히 순례길을 채우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 위에서 나 자신과 대화했다. 과거를 돌아보지도, 미래를 그려보지도 않았고 그저 두 발로 걷고 있는 그 길 위의 나 자신에게만 말을 걸었다. 내 안에 계속해서 올라오는 생각들, 아니 걱정들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물어보기도 했고, 동행 없이 혼자 걷고 있는 마음이 외로움인지 아니면 대견함인지 그 심정을 들추어보기도 했다.


메세타 평원이 끝나갈 즈음 이어서일까, 아니면 내가 묵었던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까미노가 사람들이 많이 묵지 않는 곳이어서 다들 내 앞이나 뒤에서 걷고 있는 것일까, 걷는 내내 정말 보이는 사람 한 명 없었다. 그나마 캐나다 아저씨 M과 어제 대화했던 슬로베니아 할머니 세 분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뭔가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자전거가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순례길에서는 항상 누군가가 지나치면 '부엔 까미노'하며 인사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았기 때문에 자전거가 지나갈 때 인사를 건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애매한 타이밍에 다시 뒤를 돌면 한참을 지켜보게 되거나, 타이밍을 놓치면 제대로 인사도 못한 채로 자전거를 떠나보내야 하니 5m 이내로 가까워졌다는 확신이 들 때 확 고개를 젖혀야 한다. 새로운 사람들을 한 명도 마주치지 못한 아쉬움과, 새로운 사람을 드디어 만났다는 반가움을 담아 고개를 확 돌렸다. 그 순간 자전거에 탄 사람이 나를 쓱 훑어보고는 바로 지나쳤다. 나는 '부엔'까지만 입 밖에 꺼내고 인사를 채 끝내지 못했다. 가까이에서 얼굴을 스치고 보니 분명 한국인 아저씨였다. 같은 날 출발했던 한국인들은 내가 전부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필시 다른 날 출발한 순례객이었다. 얼굴을 보고도 인사를 받지 않고 지나쳐버린 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나중에 이 아저씨를 다시 만나고 나서 안 사실이지만, 이 아저씨는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사를 하는 문화에 대해 잘 몰랐었단다.)


아저씨를 지나치고 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만시야 데 라스 무라스에 도착했다. 대략 오늘 아침 숙소로부터 25km 정도 떨어진 마을이기도 하고, 벌써 시간은 오후 2시가 되어 원래대로라면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하고 식사를 해야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기운이 남기도 했고, 3주 가까이 나를 괴롭혔던 발목 통증도 싹 가셔서 걸음 속도도 빨라진 덕분이었을까 숙소에 들어가 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근처에 식당에 들어가 파스타를 시키며 조금 더 걸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고 나면 2시 반 정도가 될 텐데 남은 거리는 18km 정도였다. 중간에 쉬어가더라도 얼추 저녁 시간 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컨디션이 괜찮은 만큼 오늘 하루 조금 더 고생하고, 내일 레온에서 하루 종일 쉬면서 도시를 둘러보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식사를 하고 나오니 어느새 하늘이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옷을 적실 정도는 아니어서 그대로 한참을 걷는데, 우비를 꺼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비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잠시 비를 피할 수 있는 정자 밑에 들어가 우비를 꺼내고는 비가 조금 사그라들 때까지 기다렸다. 정자 바로 앞에 집 대문에 덩치가 산 만한 개가 나를 보고는 10분 넘게 으르렁대며 문이 열리면 바로 달려들 기세였다. 대문은 잠겨진 것 치고는 틈 사이가 꽤나 벌어져있어서 개가 조금만 힘을 주면 틈으로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달리 피할 곳도 없고 두려움에 직면하는 것 또한 나의 순례길에서 중요한 순례의 일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침착하게 앉아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앉아있으니 개도 지쳤는지 그대로 짖는 것을 멈추고 집 안으로 사라졌다. 내 안의 많은 두려움들은 사실 저 개처럼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짐승과도 같은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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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조금씩 보슬비로 바뀌어가기 시작하자 다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더 이상 지체하기에는 도착 시간이 많이 늦어질 것 같았다. 발걸음을 재촉해 아무도 없는 시골길을 혼자 비를 맞으며 걷는데 나 자신이 처량하기보다는 뿌듯한 마음이 내 안에 가득 찼다. 나는 언제나 혼자되기를 겁냈던 데다가, 남들보다 뒤처지기도 두려워했었는데 이제는 누구의 걸음도 신경 쓰지 않고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혼자서 힘차게 걸음을 내딛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만 했다. 갈비뼈 부상과 발목 통증으로 버스를 타고 부르고스로 갔던 것이 불과 일주일 전이었는데, 이제는 레온까지 걸어서, 그것도 평소에 걷던 거리보다 2배나 되는 먼 거리를 하루 만에 걸어내는 나 자신이 대견했다. 그렇게 레온까지 두 발로 걸어낸 내 하루는 무력감에 젖어있던 나에게 그 자체로도 위로와 앞으로 걸어갈 순례길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해가 지고 깜깜한 레온의 밤거리에 들어설 때 나는 실패와 좌절로 얼룩진 내 일상 속에서도 때로는 그것을 넘어서 꿋꿋이 앞으로 나아가는 나 자신이 위로가 되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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