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퇴사 후 산티아고로 떠난 숨고르기 청년의 순례길 #16
순례길에서 보통 2주 넘게 걷다 보면 사하군이라는 중간 마을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중간 마을이라는 건 프랑스길의 시작인 생장과 도착지인 산티아고 대성당을 기준으로 정중앙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순례객 사이에서는 중간 지점을 지났다는 증표를 사하군에서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기념품을 수집하는 데에는 취미가 없어 방문하지는 않았다.
혹자는 중간 지점이라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막상 걸어본 사람들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들 것 같다. 걸어온 절반을 잠시나마 돌아보고 앞으로의 절반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완주한 이후에 내 순례길을 돌아보면 확실히 사하군을 기점으로 많이 달라졌다. 그것이 중간 지점이어서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히 사하군 앞뒤로 걸음 속도도, 걷는 방식도 바뀌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주위 둘러볼 새도 없이 걸었던 초반과 달리 후반엔 주위도 둘러보고 중간중간 마을에도 여러 번 들러 바르에도 가보고, 식당도 자주 갔었다. 발목 통증으로 시속 2km로 느리게 걸었던 초반 2주와는 달리 후반 2주는 빠르면 6km 가까이 되는 속도로 빠르게 걸었다.
그러다 보니 사하군은 순례길의 중간지점이라고 하기에는 소요된 일수가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같은 거리를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하군 이후의 일정은 이틀에서 사흘 정도 앞당겨졌다. 나와 같이 걸었던 순례객들 모두 비슷한 패턴으로 완주를 한 것을 보면 확실히 물리적인 절반은 사하군일지 몰라도 실제 순례길의 중간 지점은 그보다 훨씬 이전이다. 사하군 이후에는 이전보다 산도 더 많이 오르내리는 것을 감안하면 확실히 2주 만에 모두 단련이 되는 것일까 싶은 생각도 든다.
초반부터 같이 걸어왔던 대만 M 아주머니는 매년 방문할 때마다 사하군에서 묵는다고 했다. 건축 양식도 사하군만의 특징이 있고, 나름 마을이 커서 둘러볼 것들이 꽤 있다고 했다. 사하군 근처에 이르니 거대한 석당 두 개가 대문처럼 순례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석상 아래에는 순례길의 지리적 중앙이라는 스페인어가 적혀있다. 석상 앞의 벤치에 앉아 잠시 양말을 벗고 땀을 식히고 있으니 저 멀리서 캐나다 아저씨 M이 보인다. M은 사교성이 좋은 것인지 매일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걷는다. 부르고스에서부터 걷기 시작한 M 아저씨가 어째 생장부터 걷기 시작한 나보다도 아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아저씨를 먼저 보내고 뒤따라가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 사하군 마을이 나타났다. 아주머니가 말한 것처럼 붉은 벽돌로 쌓은 건축물들이 많았는데 마치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마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사하군 성당 앞을 막 지나갈 즈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순례길을 힘들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비다. 일단 가방에서 우비를 꺼내서 입는 일도 번거로운데,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면 우비가 시야를 가려 앞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다. 또 3, 4월의 순례길은 기온이 영하에 육박할 정도로 낮은데, 비에 옷이 젖기 시작하면 온몸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로 추워진다. 설상가상으로 그렇게 젖은 옷은 알베르게에 도착해도 마르지 않아서 건조기를 돌리지 않는 이상 다음 날 마른 상태로 입기가 어려워진다. 나는 그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차라리 손빨래 대신 세탁기를 같이 사용할 사람들을 모아 같이 빨래하고 건조기까지 돌려 리프레시하는 날로 삼았다. 섬유유연제까지 덤으로 주는 알베르게라면 세탁기를 쓰는 기쁨은 배가 된다.
대만 아주머니를 따라 사하군에 묵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13km만 걷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일정이 지체되는 것보다도 일찍 도착해도 그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기 때문이다. 알베르게조차도 1시에나 여는 곳이 많기 때문에 아쉬운 대로 사하군을 지나치기로 결정했다.
부르고스를 지나면서 매일 만나며 대화를 하는 동행들이 여럿 생겼지만, 실상 매일 어느 마을까지 갈지를 이야기하고 맞춰서 걷는 진짜 동행은 처음부터 같이 걸었던 한국인 동행 S가 유일했다. 이 날도 아침에 출발하며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까미노에 묵기로 이야기하고 길을 떠났다. 언제나처럼 S는 나보다 빨랐고, 그 마을에 열두 시도 되기 전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을뿐더러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남는다며 엘 부르고 라네로까지 가겠다고 연락이 왔다.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까미노부터 두 시간 정도 더 떨어진 마을이었다. 나는 그라뇽에서 묵었던 기부제 알베르게의 기억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S를 따라가기보다는 기부제 알베르게가 있는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까미노에 묵기로 결정했다.
황무지 같은 땅도 지나고 드넓은 들판도 지나다 보니 어느새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은 생각보다 작았고 슈퍼마켓이라고는 정말 작은 구멍가게 하나뿐인 곳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있으니 캐나다 아저씨 M이 들어온다. M과는 단 하루도 오늘 어디까지 갈 것인지, 어떤 알베르게에 묵을 것인지 이야기한 적이 없었는데 부르고스에서 레온까지 가는 길에서 나흘동안 같은 마을, 같은 알베르게, 그리고 같은 방에서 묵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노르웨이 할아버지 M도 도착했고, 점점 알베르게 안에 넓은 공간도 채워지기 시작했다.
여느 기부제 알베르게가 그러하듯 저녁시간이 되자 자원봉사자 아주머니는 식사하러 내려오라며 순례객들을 불렀다. 1층 식당으로 내려가니 맛있는 수프와 감자 요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푸짐한 밥상에 모두들 미소를 띠며 장의자에 한 명씩 들어가 앉았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모든 테이블은 각자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앉은 테이블은 앞으로 자주 같이 걷게 될 20대 독일인 L과 슬로베니아에서 오셨다는 할머니 3분이었다. 슬로베니아에서 오셨다는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매우 놀라웠는데, 이 분들은 슬로베니아에서부터 출발해 순례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슬로베니아에서 이탈리아, 프랑스를 거쳐 이곳까지 오셨단다. 물론 수천 km의 거리를 한 번에 걷지는 못하고 일 년 동안 네 번에 걸쳐 구간을 나누어 걷는다고 했다. 아무리 쪼개어 걷는다고 해도 그 연세에 그렇게 긴 구간을 걷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도대체 어떤 원동력이 그분들을 그렇게 걷게 만드는지가 궁금했지만 할머니들 모두 영어로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자세히 여쭤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식사가 한차례 마무리되자 2층으로 올라갈 쉴 사람들은 먼저 올라가고, 남은 사람들끼리 과일을 먹으며 식당에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식탁에 앉았던 5명은 나를 제외하고 하루 종일 붙어있는 동행이 되어 앞으로 길을 함께 걸어 나갔다. 동행이 생기게 되면 내 페이스를 잃을 것 같아 나는 의도적으로 동행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이들 중 독일인 친구 L과는 마지막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함께 걸었을 정도로 꽤나 오래 유지되었던 동행이었다. 이들과의 보름정도 남은 순례길을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긴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