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이 건넨 부활절 선물

대기업 퇴사 후 산티아고로 떠난 숨고르기 청년의 순례길 #14

by설읽은

나에게는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하며 알게 된 독일인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매년 4월이 되면 부활절 연휴를 잘 보내라며 연락이 온다. 이 친구 덕분에 유럽에서 부활절이 꽤나 큰 명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부활절은 일부 종교인들에 국한된 행사이지만, 유럽에서는 많은 나라들이 부활절을 공휴일로 지정할 정도로 중요한 날이다. 찾아보니 스페인도 성금요일은 연휴, 그리고 목요일도 연휴로 지정된 지역이 있었다. 나는 여행에 가기 전 여행지의 연휴와 겹치지 않는지를 확인하는 습관이 있는데, 순례길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 문득 순례길을 걷는 기간과 사순절이 겹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톨릭의 3대 성지인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가는 순례길에서 보내는 부활절은 그 의미가 더 남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기대했던 것처럼 순례길을 걷는 내내 부활절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로그로뇨에서는 타파스 거리를 지나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인파에 휩쓸려 성주 간 행렬에 동참했었고, 작은 마을의 성당에 들어갈 때마다 부활절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멕시코 원주민의 혈통을 지닌 미국인 V는 행렬의 의상이 KKK를 연상시키고, 그것의 원조라며 행렬을 볼 때마다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렇게 기괴한 문화가 아직까지 이어지는 게 말도 안 된다면서 분노했다. 멕시코의 많은 전통문화가 스페인에 의해 사라졌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녀의 분노가 이해가 갔다.


그리고 바로 부활절을 앞둔 성금요일에 카스트로헤리스에 도착했다. 아무리 휴일이라고 하더라도 가게는 열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 착오였다. 그 큰 마을에 연 마켓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식당조차도 간단한 타파스를 파는 곳 하나 밖에 열지 않았다. 마을 입구에는 한국인 순례객들에게 유명한 한식집이 있었지만, 도저히 거기까지 걸어갈 체력은 되지 못했다. 간단하게 요깃거리라도 사려고 타파스 집에 가는 길에 체육관처럼 보이는 곳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부활절 행사였던 것 같다. 백 명은 족히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음식을 차려놓고 한 사람씩 받아가고 있었다. 내가 숫기가 있었더라면 혹시 어떤 행사인지 물어보며 한 입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를 떴다.


다행히 부활절 당일에 머물렀던 까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는 생각보다는 많은 식당과 마켓들이 열려있었다. 아무 데도 열려있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마침 숙소 가는 길에 한 식당이 열려있어 그날 처음 마주친 한국인 친구와 함께 식당에 들어가 간단한 점심 식사를 했다. 토르티야와 제로콜라 한잔을 시켜 놓고 가만히 쉬고 있었더니 밖에서 시끄러운 악기 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창밖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을 보니 부활절 행렬이었다. 당장이라도 호그와트로 날아갈 것 같은 검은 망토를 두른 열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웅장한 소리와 함께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소리가 점점 커지자 가게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가게 밖으로 나갔다. 주인아주머니도 하던 일을 놔두고는 사라지셨다. 그리고는 한참 뒤에 돌아오더니 엠파나다 수십 개가 올려진 철판을 들고 다니며 한 사람씩 빵을 나눠주기 시작하셨다. 이미 토르티야를 먹은 후라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선의를 차마 거절할 수 없어 한입에 꿀꺽 삼켰다.


한 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점차 시끌벅적한 소리가 멀어져 가자 자리에서 일어나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구글맵으로 찾아보니 오늘은 두 시까지만 운영한다고 되어있었다. 마켓 안으로 들어가니 두시 전에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계산대 직원은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쉴 새 없이 바코드를 찍어댔다. 유럽에서는 세월 가든 말든 천천히 계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줄에 직원도 위기감을 느낀 탓이었을까.


그렇게 장을 보고 숙소에 돌아와 쉬고 있는데 S에게서 연락이 왔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 남는 감기약이 있는지 묻는 메시지였다. 마침 파리에서 사놓았던 감기약이 있어 1층에서 만나자고 답장했다. 한 5분쯤 뒤에 1층으로 내려가 입구 앞에 서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S가 나타나지 않아 다시 연락을 했더니, 자기도 1층에 있단다. 분명 자신은 산타 마리아 알베르게에 먼저 가있을 테니 오후에 만나자고 했었으니 같은 숙소에 있을 터인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대로변으로 나가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나는 산타 마리아가 아닌 산타 클라라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했던 것이었다. 지친 마음에 빨리 짐을 내려놓고 쉬고 싶어 지나가는 길에 비슷한 이름만 보고서 들어왔던 거였다. 설마 같은 동네에 이름이 비슷한 곳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이미 체크인을 해버린 탓에 숙소를 옮길 수도 없고, 구태여 같은 숙소에 묵을 필요는 없으니 약만 건네주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사람이 기운이 빠지니 별 시답잖은 실수를 하는구나 생각하며 피식 웃는데 방으로 한 50대쯤 되어 보이는 백발의 아저씨 M이 들어왔다. 한 방에 세명만 자는 작은 방이었는데, 운이 좋게도 어제도 같은 방에서 묵었던 M 아저씨가 들어온 것이다. 생각지도 않게 다시 만나서 우리는 서로 반갑게 인사했다. 우리가 인사하자 줄곧 구석에서 누워있던 한 할아버지가 일어나셨다. 이 할아버지는 적어도 순례자들 사이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노령에 속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여든에 가까운 연세라고 했다. 이 할아버지는 덴마크에서 온 M이셨는데, 수많은 외국 이름을 들어본 나에게조차 낯선 이름이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1음절짜리 이름인데 내가 아무리 제대로 발음하는 듯 말해도 틀렸다며 몇 번을 고쳐주시더니 이내 포기해 버리셨다.


덴마크 할아버지는 박찬호를 능가할 만한 투머치토커라는 사실을 이때는 아직 몰랐다. 그 탓에 나는 가벼운 자기소개로 마무리될 줄 알았던 대화를 시작해 버렸다. 캐나다 아저씨는 페루에서 대학 교수로 일했던 지식인이었는데, 그러한 배경에 맞게 아주 고급 시사 상식이 많았고, 덴마크 아저씨의 호기심을 풀어주기에 아주 적절했다. 캐나다와 미국의 국제 정세에 대해 논하는가 하면, 그것이 EU와 덴마크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까지 대화가 발전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은 아무래도 좋지만, 방에서 시작한 대화는 누군가 방을 떠나기 전까지 끝내기 애매한 법이다. 캐나다 아저씨는 추운 날씨에 입을 패딩을 사야겠다며 밖으로 나섰고, 그제야 긴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이렇게 부활절에 만난 우리 3인방은 중간부터 후반부까지 함께 걷는 나의 3번째 동행이 되었다. 나의 첫 번째 동행 한국인 친구들은 K가 부르고스에서 하루를 더 쉬겠다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각자의 페이스로 걷게 되었고, 두 번째 동행 외국인 친구들 또한 부르고스에서 속도를 올리는 친구들과 하루를 더 묵는 친구들로 나뉘면서 자연스럽게 나 혼자 떨어져 나오게 되었다. 모든 동행이 그러했듯, 순례길에서의 귀한 만남은 우연에서 시작되고 내가 선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찾아오고 떠나갔다. 지난 친구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에게 잠겨있던 내게 어느 부활절 우연히 함께 모인 3인방의 만남은 한국에서라면 경험할 수 없었던 아주 값진 선물이라는 사실을 이 때는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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