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이 곧 삶의 무게

대기업 퇴사 후 산티아고로 떠난 숨고르기 청년의 순례길 #13

by설읽은

순례길에서 가방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일이 아니다. 그 안에 든 물건들이 아깝긴 해도, 기껏해야 걸을 때 입는 외출복 한벌, 잘 때 입는 평상복 한 벌, 간단한 세면도구와 침낭 정도가 다일테니 말이다. 비수기였던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순례길은 시골길을 걷기 때문에 소매치기가 흔치 않기도 하고 서로를 신뢰하기 때문에 가방을 잃어버릴 염려를 하는 순례객을 본 적은 없었다. 가방을 침대 프레임에 자물쇠로 걸어 훔쳐가지 못하게 한다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귀중품을 숨겨놓는다거나 하는 일은 적어도 내 두 눈으로 목격한 적은 없었다. 애초에 순례길에 귀중품을 들고 오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늘 가방에 자물쇠를 걸거나 귀중품을 남들이 찾지 못하는 곳에 숨겨두는 게 버릇이 되었던 나에게 이러한 순례길의 모습은 낯설었다. 첫 일주일은 긴장 속에 잠시라도 방에 나갈 때면 중요한 물건들을 챙겨서 나갔다. 그러다 어느덧 순례길에 익숙해진 나는 귀중품에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지갑이야 늘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니니 문제 될 것이 없었고, 중요한 물건은 기껏 해봐야 여권 정도였는데 순례길에서 내 여권을 훔쳐갈 만한 사람들은 없었다.


그러나 사실은 매번 들고 다닐 수 없는 물건이 내 가방 안에 하나 있었다. 바로 300만 원짜리 노트북이었다. 가방의 구조를 알지 않고서는 찾기 어려운 가방 안주머니에 늘 넣어놓았다. 등산 가방 특성상 더듬거리며 만져보아도 가방 뒤판 같아 막상 가방을 보아도 찾기 어려웠다. 그래도 늘 안심할 수는 없어 장을 보러 멀리 나갈 때면 늘 작은 가방에 노트북을 넣어가지고 다녔다.


내가 노트북을 꺼내 작업을 할 때면 모두가 나보고 미쳤다고 했다. 순례길에 짐을 줄여도 모자랄 판에 무거운 노트북을 왜 챙겨 왔느냐고 말이다. 노트북 덕분에 나는 13kg에 약간 못 미치는 가방을 가지고 한국에서 출발했었다. 보통 자신의 몸무게의 10퍼센트 정도 가방 무게가 적당하다고 하니 나는 적정무게에 두 배가 넘는 가방을 짊어지고 다닌 것이다. 그러나 나는 노트북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아무런 세상 일 없이 한 달 동안 순례만 하자니 나약하게 현실에서 도망쳐온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현실로 돌아왔을 때의 나를 위해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싶었고 변명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순례길을 걷는 와중에도 저녁마다 노트북을 켜서 회사 공고를 뒤지기도 하고, 자기소개서도 쓰며 구직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문제가 터졌다. 부르고스에서 출발한 지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부르고스에서 푹 쉬고 출발한 만큼 무리하지 않기 위해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에서 카스트로헤리스로 가던 날 한번 더 짐을 부치기로 했다. 전날 미리 짐을 부치겠다고 연락을 남기고 아침에 숙소 입구에 짐을 놓았다. 그리고는 한참을 걸어서 카스트로헤리스에 도착했다. 마을의 입구에서부터 알베르게 입구까지는 체감 상 한 시간은 족히 넘는 거리였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올라가 알베르게 문을 열었다. 언제나 그렇듯 체크인 카운터에 나를 반겨주는 호스트가 앉아있었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나를 맞아주는 그 표정이 여느 때와 사뭇 달랐다. 처음으로 내게 건넨 인사말은 '올라'가 아니었다.


"네 가방은 어디 있니?"


힘들여서 여기까지 걸어왔더니 반갑게 맞아주지는 못할 망정 이상한 표정으로 묻는 저 질문의 의도는 뭐지? 짐을 부치는 한심한 네가 순례자라도 된다고 생각하냐는 유도신문인 걸까? 아니면 지갑과 물통만 담긴 작은 나의 슬링백이 보이지 않는 걸까? 내심 당황하기는 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아침에 이곳으로 짐을 보냈노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여기 네 짐은 없어, 라며 곧장 답이 왔다. 오늘은 조금 일찍 도착해서 짐이 아직 도착하지 않을 걸까? 아니면 내 짐을 누가 이미 가져간 걸까? 떨리는 마음으로 여기 짐이 어디에 모여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호스트 아주머니는 바카라장 앞에 빈 공간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역시나 내 가방은 없었다. 이미 오전에 배달 기사는 다녀갔고 오늘은 따로 짐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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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메신저로 업체에 연락했다. 연락을 받는 담당자와 배달기사는 다른 사람이었는지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만 한참이 걸렸다. 내 짐이 다른 숙소로 오배송이 된 것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전 숙소에 내 짐이 그대로 있다고 삼십 분이 지나고 나서야 답장이 왔다. 이미 배달 기사는 퇴근해서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하더니 그대로 연락이 끊겼다. 언제 다시 연락이 올지 몰라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옷이나 수건도 없어서 씻지도 못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가만히 라운지에 앉아있으니 가여워하는 아주머니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노트북만 들어있지 않았더라면 마음이 그렇게까지 불안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그 노트북에는 내 소중한 추억이 담긴 사진과 아직 백업을 하지 않은 작업물, 그리고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언젠가는 쓰일지도 모를 수많은 파일들이 있었다. 한순간에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우울해졌다.


'이렇게 잃어버릴 줄 알았더라면 노트북을 가져오지 않는 거였는데. 괜히 무겁게 고생만 했네.'


순례길에서는 배낭의 무게가 곧 그 인생의 무게라고들 한다. 수건도 없이 옷 한 벌로만 걷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이고 지며 걷는 사람도 있었다. 몸집보다 큰 것으로 보아 20kg는 돼보였었다. 그런데 순례길을 걷다 보면 점차 그 가방의 무게가 줄어드는 걸 경험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루가 지날 때마다 하나씩 버리기 때문이다. 매일밤 이것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이 맞는지 다시 한번 묻고 또 묻는다. 그렇게 철저한 검증 절차를 넘긴 친구들만 다음날 나와 함께 걸을 자격이 주어진다. 나도 그렇게 한국에서부터 들고 온 짐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옷이며, 세면도구며, 바카라까지 하루에 하나씩 버렸다. 그러나 노트북은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애초에 순례길에 들고 오면 안 되는 물건이었다.


순례길을 와서도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면하겠다는 이유로 가져온 노트북은 사실 나의 방패막이였다. 한국에 남아있는 친구들과 가족들이 나에게 손가락질할까 봐 이곳에서도 열심히 살고 있다고 증명하기 위해 가져온 허울 좋은 핑계였다. 막상 배낭을 잃어버리고 몇 시간을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니 나는 현실을 직시하겠다는 포부와 달리 오히려 언제든 현실로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은 그저 나 자신으로만 서있는 이곳 순례길에서 스스로를 대면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언제든 나는 이런 회사 면접을 보고 있고, 곧 이런 일을 할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합리화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칠 때쯤, 그러니까 연락한 지 두 시간이 지난 시점에 숙소 앞에 도착했으니 배낭을 받으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어찌 된 상황인지, 어떻게 하겠다는지 말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 당황스럽긴 했지만 다행히 배낭을 찾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배낭을 받자마자 손을 집어넣어 노트북을 확인했다. 다행히 노트북은 무사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방을 방 안에 들였다. 그리고는 배낭에서 중요한 물건들을 골라내고 남은 물건들을 모두 버렸다. 그리고 노트북을 다시는 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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