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퇴사 후 산티아고로 떠난 숨고르기 청년의 순례길 #12
아침에 이렇게 산뜻하게 일어난 것은 오랜만이었다. 짐을 부치고, 어깨 가벼이 하루 동안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긴 여정도 부담스럽지 않았던 덕분이었다. 호주인 아주머니 V가 어제 미리 방법을 알려준 덕에 메신저 앱으로 접수를 해놓았고, 정해진 위치에 아주머니와 함께 가방을 두었다. 우리가 체크아웃하고 목적지 마을까지 가는 동안 택배차가 와서 짐을 싣고 짐이 접수된 모든 마을 알베르게마다 들러 짐을 옮겨준다고 한다. 7유로라는 가격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억지 부리며 자학하고 있는 나에게 하나씩 포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지금 내게 주어진 숙제라는 생각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짐을 부치기로 했다.
같이 걷던 한국인 K는 원래 어제 산토 도밍고까지만 걷기로 해서 내일이나 다시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기부제 알베르게 이야기를 했더니 조금 더 걸어보겠다며 어제 무리해서 그라뇽까지 왔다. 그 탓인지 아침부터 걷는 K의 폼이 심상치 않았다. 신발을 신을 수 없는 상태라며 쪼리 슬리퍼를 신고 길을 나섰다.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니 남들 보기에 내가 이런 모습이었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K는 나보다도 더 상태가 심각해 보였는데 거의 한쪽발은 끌다시피 걷는 것처럼 보였다. 항상 K는 나보다 두 시간은 늦게 출발하고도 중간 지점에서 나를 앞질러 숙소에 먼저 도착하던 친구였는데 상태가 영 아니다.
그렇게 K를 뒤로한 채 한참을 걷다 보니 호주인 친구 B와 프랑스인 친구 J가 보였다. 단짝 아니랄까 봐 오늘도 둘은 같이 걷고 있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두 갈래 길이 나왔다. 따로 안내 표지판은 없으니 직선 길을 따라가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애초에 지도 앱으로 보아도 직진을 하는 것이 맞았다. 왼쪽 길은 한참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는 데다가 지도 앱으로는 나오지도 않는 길이었다. 그러나 J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걷고 싶다며 왼쪽 언덕길을 향해 걸어갔다.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고, 다시 되돌아와야 할 수도 있는데 위험을 감수하는 모습이 잘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그렇게 B와 걷다 보니 내 속도가 늦어졌고, B는 결국 나를 앞질러갔다.
그렇게 두 시간을 걸었을까, 앞에 J가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다른 길로 빠졌던 데다가 돌아가는 길이어서 나를 앞지를 수도 없었을 텐데 어떤 샛길로 빠져나온 것인지 어느샌가 나타났다. 지친 기색도 없이 나를 보더니 씩 웃어 보였다. 동행 중 가장 가녀린 몸이지만 가장 씩씩한 그녀는 그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참 신기했다. 그리고 다시 한 시간을 걷다 보니 마을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어 바르에 잠시 들러 간단하게 배를 채우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J에게 물었다. 안 그래도 대차게 넘어졌던 날 카페에서 음료도 사주고 상처 소독하는 것도 도와줬던 기억이 나 은혜를 갚을 차례였다.
그렇게 J와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저 아래로 B가 지나갔다. 내가 언제 B를 앞질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B까지 셋이서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을 먹었다. 그러다 나는 문득 프랑스어 관련된 이야기들을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J에게 스텔라 장의 "L’amour, les baguettes, Paris"을 들려주며 가사가 어떤지 물어보았다. J는 발음이 프랑스인이라며 놀라는 한편, 가사가 왜 이러냐며 웃었다. "Camino, Tapas, Madrid"랑 똑같은 거 아니냐며 웃어젖혔다. 프랑스어라서 고급스럽게만 들렸던 그 제목이 듣고 보니 웃겼다. 웃긴 얘기를 한참 하다 보니 바르 옆으로 이태리 아저씨 A도, 미국인 친구 V, S도 지나갔다.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이 더 이상 오지 않는 것 같을 때쯤 자리에서 일어나 알베르게로 향했다.
벨로라도 공립 알베르게가 별로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탓에 나는 사립 알베르게로 향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외국인 동행과 떨어져 사립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니 어제 만났던 호주인 V도 있고, 팜플로나에서부터 같이 걸었던 대만 아주머니 M와 어제 처음 그라뇽에서 만난 미국인 대학생 C도 보였다. 역시 순례길은 어딜 가나 아는 사람을 다시 마주치는 법이다.
이 사립 알베르게는 2층에서 식당도 운영하며 순례자 메뉴도 제공하는 곳이었다. 한국인 동행 S는 외국인 동행들이 공립 알베르게에서 파티를 벌이며 너무 시끄럽다며 내가 있는 알베르게에서 같이 저녁 식사를 했다. 식당은 4명씩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있었다. 나는 한국인 동행들과 함께 대만 아주머니 M과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했다. M 아주머니와 제대로 대화를 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름 정도 간단한 자기소개는 이미 했었지만,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떻게 순례길에 오게 되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오다가다 마주치면 미소 짓는 정도였달까.
아주머니는 이번 순례길이 6번째 순례길이라고 했다. 은퇴하고 나서 2019년부터 거의 매년 봄에 와서 걷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숙소가 요리하기에 좋고, 조용하고 좋은지 등 잘 안다고 했다. 매번 똑같은 길을 걷는 것이 지루하지는 않은지 여쭤보았는데, 매번 만나는 사람들이 다르고 몸과 마음이 충전되어 대만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좋단다. 못해도 40대 후반에서 50은 넘어 보였는데, 홀로 젊은이들의 속도에 맞춰 걷는 아주머니가 멋져 보였다. (아주머니는 나보다도 먼저 출발하신 적이 꽤 있었다. 한국인 동행 중에 아주머니가 일어나 준비하는 모습을 본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어떤 사연으로 이 길을 걷게 되었는지까지는 깊게 여쭤보지 못했지만 아주머니의 따뜻한 심성만큼은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음 날 나는 절뚝거리며 걷던 한국인 동행 K와 함께 부르고스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사실 여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벨로라도에서 새로 신발을 사고 가벼운 마음으로 계속해서 걸음을 이어 나가보려 했다. 인터넷으로 미리 찾아보니 벨로라도에 제법 큰 신발가게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라도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대부분 가죽신발을 파는 곳이었고, 운동화는 오래 걷기에는 부적합한 단화에 가까운 신발들 뿐이었다. 고민 끝에 부르고스에서 제대로 충전을 하고 새로운 순례길을 걷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버스를 타고 중간 마을을 건너뛰었다.
그렇게 다른 동행들이 이틀을 걷는 동안 나는 부르고스 시내를 구경하기도 하고, 순례객들의 성지 데카트론에 가서 신발도 하나 새로 장만했다. 내게 가장 잘 맞는 신발이 무엇인지 느긋하게 모든 신발을 시착해보았다. 신발 하나 바꾼다고 크게 달라지겠냐는 희의감을 가지고 신발을 샀다. 믿을 수 없겠지만, 이 신발을 신고 걷기 시작한 지 3일이 되던 날부터 급격하게 발 컨디션이 좋아지더니 시속 6km까지도 보행 속도가 올라갔다. 모두들 네가 이렇게 걸음이 빠른 사람인지 몰랐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정도였다. 순례길을 떠나는 분들이라면 반드시 본인에게 잘 맞는 신발을 찾기를 권한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나니 동행들이 하나둘씩 부르고스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나는 간단한 저녁거리를 사서 공립 알베르게 1층에 있는 라운지로 갔다. 그곳에 갔더니 노르웨이인 커플 S와 E가 보였다. 이들은 몇 번 길에서 마주친 사이었었는데, 북유럽 출신답게 다른 이들과 스몰 토크는 하지 않고 조용하게 다니곤 했다. 그렇게 조용하게 수행하듯 걷는 그들이 내심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먼저 말을 걸어 몇 마디 했었다. 먼저 말을 걸어줬던 것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는지 이번에는 E가 내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이제 노르웨이로 돌아갈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서 내일부터는 속도를 올려 빠르게 걷는단다. 그래서 앞으로는 다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며 사진이라도 남기도 싶다며 말을 걸어온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이별이었지만 서로의 앞길을 응원하며 인사를 건넸다. 이것을 시작으로 부르고스부터는 정말 많은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정확히 말하면 작별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헤어졌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부르고스에서부터는 속도를 더 올리는 무리와, 나처럼 보통 속도로 걷는 무리, 부르고스에서 더 머물며 쉬었다가 가는 무리로 나뉘기 때문이었다. 부르고스는 순례길에서는 손에 꼽히는 대도시이기 때문에 할 거리가 많기 때문일 것이었다.
프랑스인 J도 우리보다 이틀은 더 빨리 도착을 해야 파리로 돌아갈 수 있다면서 이제는 먼저 가겠다고 작별인사를 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떠난 J 뒤에 남겨진 호주인 친구 B의 표정은 어두웠다. 왜 어둡냐고 물어보니 자신은 이 순례길을 더 즐기면서 걷고 싶은데 J와도 계속 같이 걷고 싶단다. 동행의 막내다운 고민이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귀여워 보여 놀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것이 바로 순례길이지."
이렇게 말을 건넸더니 무슨 소리냔다. 순례길에서 우리는 항상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데 포기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순례길이고, 선택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순례길이라고 말했다. B는 그게 무슨 개똥철학이냐며 웃어 보였지만 이내 생각에 잠겼다. 내가 건넨 말이 꽤나 마음에 박혔던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자기가 포기하는 것도 자기 자신에게 큰 깨달음을 줄 것 같다며 깔끔하게 포기하겠다고 했다. 내가 아주 잘했다고 칭찬하니, 선생님 행세하지 말라며 귀엽게 발끈한다. 그 뒤로는 뭘 먹어야 할지 고민에 빠지거나 이런저런 질문을 할 때면 "그것이 바로 순례길이다"라며 서로 놀려댔다.
처음에는 나도 우스갯소리로 건넨 개똥철학이었는데, 몇 번 입 밖으로 내뱉다 보니 새삼 맞는 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아쉬운 것도, 기쁜 것도 이 모든 것이 순례길 위에 있기 때문이었다. 어떠한 일도 초연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길로 묵묵히 걸어 나가는 것이야말로 순례길인 것이다. 그 뒤로는 어떠한 일이 내 눈앞에 벌어지더라도 이게 순례길이지, 하며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게 나의 순례길 후반부의 큰 나침반이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