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는 고통에 비례하지 않는다

대기업 퇴사 후 산티아고로 떠난 숨고르기 청년의 순례길 #11

by설읽은

의도치 않게 도착한 그라뇽은 정말 작은 마을이었다. 식당이라고는 알베르게가 위치한 성당 맞은편 한 곳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주일 행사로 모든 성당의 교인들이 모였는지 꽉 차 있었다. 작은 구멍가게조차 없는 이 마을에서 점심을 해결할 방법은 자판기 하나였다. 컵라면을 하나 먹으려고 돈을 넣고 버튼을 눌렀더니 동그란 레일이 앞뒤로 움직이더니 컵라면이 아래로 툭 떨어진다. 아니, 떨어지다 말았다. 정말 묘하게도 컵라면은 유리창과 선반 사이에 껴서 내려오질 않았다. 6~7살로 보이는 아이들이 자판기 앞에 모이더니 안쓰럽다는 듯이 날 쳐다보고는 본인들이 먹을 젤리를 뽑고 나갔다.


그렇게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비상식량으로 가방에 쟁여놓았던 먹다 남은 과자를 꺼내 먹을 요량으로 다시 숙소로 향했다. 아침부터 하늘이 흐리더니 급기야는 우박이 내리기 시작했다. 어찌나 두꺼운 알맹이가 하늘에서 쏟아지는지 온 살갗이 아파 뛰어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각이 한시쯤이었는데, 알베르게 주인은 어딘가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호주인 V만 난로 앞에 조용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이 전 마을인 나헤라가 꽤나 거리가 있는 편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도착하려면 아직 2시간은 족히 남았다. 이미 카페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V와 이야기를 나눠 더 이상 이야기할 거리가 남아있지 않아 차마 난로 쪽으로 자리를 옮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숙소 가운데 길게 놓인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바쁜 일이 있는 척 휴대폰을 꺼냈다. 사진첩을 뒤적거리며 일주일 넘게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기도 하고,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찾아보기도 했다. 그렇게 이 길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게 생각에 잠겼다.


나는 왜 구태여 이 힘든 길을 걷고 있는지 그 이유는 순례길을 걷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했다. 거기다 오늘은 힘들여 걷던 길에서 편법을 써가며 남들 고생할 때 혼자 이곳에 왔다는 사실은 불쾌감을 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문득 어제 호주인 친구 B가 버스를 타고 왔다는 소식에 건넨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이 순례길에서 버스를 탔다고 한 달 순례길이 모두 부정당하는 것은 아닐 거라고. 거기다 나처럼 온몸이 부어 한 발 한 발 힘들게 떼가며 걸어온 나에게 고작 하루 버스를 탔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순례길에 있을 리 없다. 순례길에서의 본질은 고행이 아니라 순례 그 자체에 있으니까.


그렇다. 나는 지금까지 순례가 아니라 고행을 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서울에서 바쁘게 하루를 보낼 동안 나는 이 먼 곳까지 도망쳐와 아무 계획도, 고민도 없이 노닥거리고 있다는 죄바카라감에 나를 학대하고 있었다. 인내심도 없이 회사를 때려치운 나 자신을 원망하면서 스스로를 처벌함과 동시에, 이렇게 고생하고 있으니 나는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내 잠재의식은 안도하고 있었다. 신발을 신고 벗을 수 없을 정도로 발이 부어올라 새로 신발을 사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동행들의 조언에도 신발을 바꾸지 않은 건 사실 그 이유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맞지 않는 신발로 괴로워하는 나를 볼 때마다 회사가 나와 맞지 않는다고 그만두었던 나 자신이 떠올라 신발을 바꾸지 않는 것이 멋진 거라고 자기 최면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2~3일 전부터는 첫날부터 쭉 같이 걸었던 S가 가방이라도 동키(목적지 마을까지 짐을 미리 택배로 보내는 서비스)로 보내보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했지만 내 두 발로 내가 모든 짐을 짊어지고 걸어내겠다고 우겼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또한 그게 정말 순례길이라고 생각해서 우겼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런 약한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던 내 깊은 내면에 닿으니 이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혼자 난로 앞에 있는 V에게 가 동키 서비스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다. 왜냐하면 오늘 아침 V가 숙소 1층으로 미리 본인의 짐을 보내놓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본인이 가방에서 미리 준비해 둔 봉투를 꺼내더니 혹시 몰라 한 장을 더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나를 위한 것이었나 보다, 하며 동키 서비스를 보낼 때 가방에 묶어두는 봉투를 건넸다. 그렇게 그녀의 도움을 받아 내일은 동키 서비스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야만 내 순례길이 시작될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V의 도움을 받다 보니 어느새 아르헨티나에서 왔다는 알베르게 주인(나중에 알고 보니 기부제 알베르게는 주로 봉사자들로 구성되고, 일주일이나 한 달 주기로 바뀐다고 했다. 봉사자로 운영되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내는 숙박비도 없다.)도 왔고, 아침 일찍 길을 떠났던 동행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어제 스치듯 숙소에서 마주쳤던 한국인 아저씨도 보였고, V의 남편 B도 도착했다.


저녁 시간쯤 되니 벌써 서른 명 가까이가 모였다. 주방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준비됐다는 간이식탁을 펴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모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더구나 3월 말 비수기에는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왔다는 봉사자 아주머니는 오랜만에 솜씨를 뽐낼 수 있어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큰 냄비를 식탁으로 가져왔다. 봉사자들은 일사불란하게 각자 자리에 앉아 아주머니가 음식을 그릇에 담을 때마다 옆으로 넘겼다. 그렇게 스무 번 가까이 그릇을 옆으로 넘기니 내 차례가 왔다. 잘게 썰린 소면처럼 보이는 요리였다. 그렇게 얼른 한 입 먹으려고 하자, 어디선가 큰 소리가 들렸다. 바로 그라뇽 성당 알베르게만의 특별한 식전기도였다. 알베르게 벽 한편에 감사 식전기도문이 여러 나라 말로 적혀있었다. 봉사자 아주머니 크게 선창 하기 시작하자 너나 할 것 없이 바카라상을 박자에 맞춰 두들기며 자기 나라 말로 크게 기도문을 읊었다. 줄곧 영어로만 소통하다가 이렇게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는 것을 보니 새삼 다양한 곳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게 느껴졌다.


처음 먹어보는 요리였지만 제법 맛있었다. 내 맞은편에는 프랑스인 친구 J와 호주인 친구 B가 앉았다. 역시 둘은 단짝이다. 식성마저도 닮아가는지 둘은 우리가 먹는 요리 대신 채식주의 식단을 미리 부탁해 놓았고, 수프를 먹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식사를 마치고 나니 가장 기억에 남는 설거지 시간이 되었다. 봉사자 아주머니는 갑자기 건장한 남자 두 명만 주방으로 오라고 부르더니 물이 담긴 큰 대야를 옮기라고 시켰다. 그렇게 대야 몇 개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사람들을 일렬로 세웠다. 첫 번째 사람은 음식물을 모으고, 두 번째 사람은 물로 한번 헹구고, 세 번째 사람은 세제로 한번 닦는다. 네 번째 사람은 덜 닦인 곳을 닦고, 다섯 번째 사람은 물로 헹궈낸다. 여섯 번째 사람은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는 식이었다. 그렇게 다들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래 박자에 맞추어 순식간에 접시 수십 개를 닦았다. 이 장관은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설거지를 마무리하자 누군가가 준비했다는 듯 스피커로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을 틀었다. 어디서 흘러나오는지도 모르는 음악 선율에 하나둘씩 사람들이 일어서기 시작하더니 박자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잘은 몰라도 4분의 3박자 왈츠를 따라 사람들은 제각기 파트너를 찾아 손을 잡기 시작했다. 이태리 아저씨 A는 앉아있는 프랑스인 중년부부 앞으로 가 정중하게 인사하더니 프랑스인 아주머니 P에게 한 손을 내밀었다. 프랑스인 아저씨는 기꺼이 허락한다는 미소를 띠더니 아주머니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태리 아저씨는 한 손으로 P의 허리를 감싸더니 능수능란하게 춤사위를 주도했다. 그 아저씨뿐만 아니라 이 사람이 일어나 춤을 추겠나 싶었던 이들도 일어나 스텝을 밟아가며 춤을 추었다. 아무도 웃긴 말을 한 사람은 없었지만 그날의 피로가 모두들 싹 가신 듯 입가에 미소가 번지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렇게 춤추고 노는 모습을 지켜보니 어느덧 저녁 여덟 시 반이 다 되었다. 그때 누군가 계단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아침에 가장 늦게 출발했던 미국인 친구 V였다. 8시 반에 숙소를 떠났으니 장장 12시간을 걸어온 것이었다. 같이 걸었던 멕시코인 D에게 들어보니 자신은 남은 시간 동안 이곳에 걸어오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 5시쯤 버스를 탔다고 했다. 해가 곧 질 시간이라 이전 마을에서 같이 버스를 타고 오기로 했는데, 버스에 탑승하기 직전에 V가 말을 바꾸어 자신은 끝까지 걸어가 보겠다고 했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두 시간이면 올 수 있는 거리를 4시간을 걸어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도착했단다.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길에 혼자 걸으니 무서웠다며 조금은 후회했단다. 자초지종을 듣고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V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하루 종일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가 꽉 찼을지도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걷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V가 짐을 풀고 씻고 나오자 아주머니는 우리를 모두 계단 쪽으로 불렀다. 라푼젤 성에 올라가는 것처럼 캄캄한 곳을 나선형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직원들만 들어갈 수 있을 법한 문이 하나 보였다. 알고 보니 오늘은 손님이 많아 작은 방을 하나 더 내어놓았다고 한다. 이미 몇 명 짐이 풀어진 그 방을 들어가 보니 한쪽으로 문이 하나 더 나있었다. 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오전에 들렀던 성당으로 이어졌다. 내가 머물던 곳은 성당의 다락방이었고, 계단을 타고 내려오니 예배당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난간이었다. (불이 꺼져있어 매우 어두웠던 데다가 가톨릭 문화를 잘 모르는 탓에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오르간을 놓는 자리였거나, 성가대가 있을 법한 곳이었다.) 아주 작은 불빛을 따라가다 보니 벽에 붙어있는 의자가 보였고,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리에 앉으니 오른편에 각자의 자리를 비추는 작은 초가 보였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탓인지 봉사자 아주머니의 영어 억양은 매우 강해서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각자의 언어로 순례길에서의 생각과 포부를 나누는 시간 같았다.


한 명씩 돌아가며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자기의 이야기를 짧게 내어놓았다. 그곳에 앉아있는 사람들 중 그 모든 언어를 알아듣는 아무도 없었지만 모두들 서로가 어떤 말을 하는지 알아들은 것 같아 보였다.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는 것일까. 슬슬 내 차례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데 바로 내 앞 순서인 멕시코인 D가 말 대신 성가를 불렀다. 성당의 벽을 타고 울리는 소리는 계속해서 퍼져나가면서 메아리쳤다. 뛰어난 솜씨를 지닌 음색은 아니었지만, 떨리는 목소리는 아름답게 성당 안에서 울리면서 그 진심을 사람들 마음속에 전해주었다. 한국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몇 없지만 내심 긴장하고 있었는데, 그 소리를 들으니 조금은 긴장한 마음이 누그러들었다.


내가 순례길을 완주하고 나면 내가 왜 이 길을 걸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기를, 그리고 진정한 순례의 의미를 깨닫기 원한다는 소망을 나누었다. 내 안에서도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었지만 알아듣는 사람이 몇 없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는지 용기를 내어 입 밖으로 내뱉어보았다. 아직은 이 길이 왜 나를 불렀는지, 내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길의 끝에서 꼭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장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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