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보더 라이더(Border Rider)의 통찰]
나의 활동 지도는 주로 중앙아시아의 거친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와 관료주의가 화석처럼 견고한 저개발국의 현장에 묶여 있었다. 활동가로 산다는 것은 정답 없는 질문지에 매일 새로운 답을 써 내려가는 과정이다.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 "지속 가능한 경영과 민주적 의사결정은 과연 한 지붕 아래 공존할 수 있는가?" 이 묵직한 화두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나는 잠시 중앙아시아의 마른 바람을 뒤로하고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거대 협동조합 모델, ‘몬드라곤(MCC)’으로 향했다.
1956년, 호세 마리아 신부의 주도로 단 5명의 노동자가 세운 작은 석유난로 공장은 이제 7만 명의 조합원이 주인이 된 세계 최대의 노동자 협동조합으로 성장해 있었다. 자본주의의 그림자를 걷어낼 유일한 대안으로 칭송받는 이곳에서, 나는 내가 16년 동안 현장에서 씨름해온 문제들의 해답지를 훔쳐보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몬드라곤 대학교와 현지 공장들을 둘러보며 내가 목격한 것은 단순한 경영 시스템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동의 운명'이라는 거대한 배에 기꺼이 몸을 던진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그들은 비즈니스의 실패를 곧 나의 실패로 인식하기 위해 스스로 피땀 어린 거액을 출자한다. 내가 중앙아시아 현장에서 그토록 경계했던 '바카라임 회피'와 '무임승차'의 문제가 이곳에서는 '공동 투자와 연대'라는 장치를 통해 자연스럽게 해소되고 있었다.
강의실에서 전 세계 동료들과 나눈 대화는 뜨거웠고, 때로는 비명처럼 아팠다. 우리의 질문 속에는 현지 직원에게 느꼈던 배신의 상처,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비효율에 빠져 허우적댔던 좌절, 그리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진득하게 배어 있었다. 몬드라곤의 강사들은 날카로운 질문에도 바스크의 와인처럼 유연하고도 묵직한 답변을 내놓았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머릿수를 세어 표를 던지는 행위가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해 마지막까지 함께 바카라임지겠다는 처절한 약속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존재 자체로 증명하고 있었다.
일과 후 마주한 바스크의 붉은 와인은 중앙아시아의 옅은 차(Tea)와는 전혀 다른 맛으로 나를 자극했다. 강변의 빌바오 구겐하임 박물관, 그 기하학적인 티타늄 외벽이 지는 해를 받아 빛나는 거리를 거닐며 나는 보더라이더(Border Rider)로서의 깊은 고뇌에 빠졌다. 오징어 먹물 빠에야의 짙고 짠 풍미를 음미하면서도 내 마음은 자꾸만 타지키스탄의 산골 마을로 향했다.
'이토록 완벽해 보이는 모델이 과연 척박한 내 현장에도 뿌리내릴 수 있을까?'
몬드라곤 모델의 근간에는 바스크인들만의 독특한 문화적 결속력과 단일한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몬드라곤의 가장 큰 힘인 동시에, 외부의 다양성을 포용하기 어렵다는 태생적 한계이기도 했다. 효율성보다 합의를 중시하는 그들의 느린 걸음은, 당장 내일의 생존과 아이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내 현장의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사치스러운 이상향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애잔함이 밀려왔다.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땅에서 내가 내렸던 단호한 결정들은 이곳의 민주적 절차 앞에서 '독단'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결단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던 현장의 비정함이 떠올라 와인 잔을 쥔 손끝이 떨렸다.
하지만 연수 일정을 마치고 함께 연수에 참여한 동료들과 마지막 사진을 찍으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몬드라곤은 우리에게 그대로 베껴 쓰라는 복사본을 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걷는 이 험난한 길 끝에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경영'이라는 목적지가 분명 존재한다는 희망의 증거였다. 그들도 처음엔 단 5명이었다는 사실, 그 미약한 시작이 7만 명의 연대로 이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과 좌절이 있었겠는가.
바스크의 붉은 와인 한 잔에 담긴 공동체의 열망을 가슴에 품고 다시 중앙아시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중앙아시아에서 경험하지 못한 맛과 풍미, 그리고 경영의 본질을 목격한 시간. 나는 이제 내가 머무는 경계의 땅에서 몬드라곤이 뿌린 씨앗을 어떻게 우리만의 색깔로 틔울지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비록 우리의 의사결정은 여전히 고독하고, 현장은 여전히 비효율과 관료주의로 가득할지라도, '함께 바카라임지는 용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의 몬드라곤은 어느 이름 모를 산골 마을에서도 반드시 시작될 수 있음을 믿기로 했다. 16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내가 여전히 이 길 위에 서 있는 이유를, 바스크의 붉은 와인이 가르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