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량주 예찬

찰나의 불꽃, 모든 잡미를 날려버리는 화끈한 작별

by아까그놈

고량주는 타협을 모르는 술이다.


소주처럼 눅눅하게 젖어 들지도, 맥주처럼 가볍게 흩어지지도 않는다. 고량주는 입술에 닿는 순간 선포한다. "지금부터 네 몸속의 모든 찌꺼기를 태워버리겠다"고.


고량주를 잔에 따르면 가장 먼저 당혹스러운 유혹이 시작된다. 도수는 40도를 훌쩍 넘기면서, 향기는 세상 어느 과일보다 달콤하고 향긋한 파인애플이나 배의 향(청향/농향)을 풍기기 때문이다.


이건 일종의 경고이자 유혹이다. 아름다운 장미에 가시가 있듯, 고량주의 그 향긋한 향기 뒤에는 불타는 칼날이 숨어 있다.


작은 잔에 가득 담긴 그 투명한 액체를 코끝에 가져다 대는 순간, 우리는 잠시 일상의 번잡함을 잊고 이국적인 열대 우림의 한가운데로 소환된다.


향기로 먼저 취하고, 도수로 정신을 차리는 기묘한 이중성의 미학이다.


고량주의 진가는 목 넘김 이후에 나타난다. 꿀꺽, 하고 넘기는 찰나. 뜨거운 불덩이 하나가 식도를 타고 굴러 내려간다.


평소에는 느껴본 적 없는 내 몸의 소화 기관들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그 고도수의 열기가 지나가는 궤적을 따라 선명한 '지도'가 그려진다.


그건 고통이라기보다 일종의 '정화'에 가깝다. 기름진 탕수육과 독한 자존심, 하루 종일 묵혀두었던 텁텁한 감정들이 그 불길에 닿는 순간 순식간에 기화되어 사라진다.


고량주는 뒤끝이 없다. 화끈하게 타오르고 나면 입안에는 오직 향긋한 잔향과 개운함만이 남는다. 미련 많은 사람들에게 고량주가 최고의 처방전이 되는 이유다.


중식당의 둥근 원형 테이블, 붉은색 전등 아래서 고량주 작은 잔들이 부딪힌다. 고량주는 '홀짝' 마시는 술이 아니다. 짧고 굵게, "건배!"를 외치며 잔을 비워야 예의다.


그 뜨거운 술을 함께 나눠 마시는 사람들과는 묘한 동질감이 생긴다. 같은 불길을 견뎌내고 있다는 전우애 같은 것이다.


얼굴이 금세 붉어지고 목소리가 높아지지만, 고량주의 취기는 결코 추하지 않다. 불꽃처럼 강렬하게 타올랐다가, 어느 순간 깔끔하게 사그라드는 그 절도 있는 취함.


고량주는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인생에서 정말 버려야 할 것들은 질질 끌지 말고 화끈하게 태워버려야 한다는 것을.


고량주 한 병을 비우고 밖으로 나오면, 밤공기가 유독 시원하게 느껴진다. 몸 안의 온도가 워낙 높았기에 세상의 추위쯤은 우습게 느껴지는 것이다.


고량주는 우리에게 그런 배짱을 선물한다. "세상이 아무리 차가워도, 내 안에는 타오르는 불꽃 하나가 있다"는 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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