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예찬

시간의 증류, 고독을 우아하게 음미하는 법

by아까그놈

위스키는 마시는 술이 아니라 '읽는 술'이다.


오크통 안에서 수십 년간 침묵하며 세월의 결을 몸에 새긴 이 액체는, 우리에게 취기보다 먼저 '사유'를 권한다. 위스키 잔을 흔들 때 일어나는 그 은은한 물결은, 우리가 지나온 시간의 파동과 닮아있다.


위스키를 숙성시키는 동안 매년 2% 정도의 양이 공기 중으로 증발한다. 양조업자들은 이를 '천사가 마신 술'이라 부르며 기꺼이 내어준다. 인생도 이와 같다.


우리가 완벽하게 소유하려 애써도, 시간은 우리의 젊음과 기회를 야금야금 앗아간다.


위스키는 그 증발된 빈자리가 있기에 비로소 맛이 깊어진다. "내어준 만큼 깊어진다"는 이 역설적인 진리는, 무언가를 잃어본 적 있는 어른들에게만 허락된 위로다.


위스키 원액에 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닫혀 있던 향의 분자들이 폭발하듯 피어오른다. 이를 '위스키가 꽃을 피운다'고 말한다. 우리 삶의 강퍅함도 가끔은 이 물 한 방울 같은 '여유'가 필요하다.


40도가 넘는 날카로운 알코올의 장벽을 허물고 나면, 그 뒤에 숨어 있던 바닐라 향, 훈연한 나무 향, 짭조름한 바다의 내음이 비로소 고개를 든다. 위스키는 가르쳐준다. 너무 꼿꼿하게 버티기만 해서는 자신의 진짜 향기를 알 수 없다는 것을.


투명한 얼음 위로 위스키를 따를 때 나는 '딸랑'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고독하고도 우아한 타악기 소리다. 얼음이 녹으며 위스키의 농도가 옅어지고 온도가 변하듯, 우리의 감정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희석되고 무뎌진다.


위스키는 서두르지 말라고 말한다. 차가운 얼음이 위스키의 열기를 식혀주듯, 차분한 이성이 우리의 뜨거운 감정을 다독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혼자 앉아 위스키 잔을 응시하는 시간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직 나 자신과 대화하는 '영혼의 면회 시간'이다.


위스키는 쓰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길고 긴 피니시(Finish)는 달콤하다. 그 단맛은 설탕의 그것이 아니라, 오랜 인내 끝에 얻은 나무의 단맛이다.


우리의 인생도 위스키처럼 익어갔으면 좋겠다.


젊은 날의 독한 치기를 지나, 세월이라는 오크통 속에서 상처를 무늬로 바꾸고, 마침내 누군가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는 깊고 그윽한 향기를 가진 어른으로 말이다.

이전 10화카푸치노 예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