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들어온 타인의 체취

bybeyond juri


대중교통이나 엘리베이터와 같이 밀집도가 높은 공간에서 인간은 냄새로 존재를 증명받는다. 가로 1미터 남짓한 열차 안에서 붙여 앉은 옆 승객은 이름, 나이, 직업을 알 리 없다. 오직 후각으로만 그 사람을 엿본다.


취향의 언어


샤넬 No.5. 에르메스. 아니면 적은 용량으로 조향한 니치향수. 향수의 종류만으로도 사람은 자신이 속한 취향과 계층, 세대와 자기표현의 방식을 짐작할 수 있다. 샤넬 No.5. 오래된 품격과 안정된 취향을 선택한 사람이다. 유행보다 검증된 이름을 믿고, 자신의 취향을 설명하기보다 브랜드가 대신 말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에르메스 향수. 로고를 과시하기보다 소재와 완성도를 중시하고,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경제력과 문화 수준을 표현한다.


요즘은 아트페어에 가면 니치향수를 가끔 구매한다. 니치 향수는 남들과 같은 향을 피하고 자신의 고유성을 강조하려는 사람이다. 향을 신분의 표식보다 취향의 언어로 사용한다.


취향이라고 해서 사람이 입은 향이 늘 선택의 결과는 아니다. 향수는 고르는 것이지만, 체취까지 고른다고 하기는 좀 뭣하다. 샤넬 No.5인지 니치 향수를 뿌릴 것인지 취향의 문제지만, 오래 입은 외투에서 밴 땀 냄새와 지하철 계단을 급하게 올라온 몸에서 올라오는 냄새는 취향과 무관하다.


호텔향, 공간의 질서에 몸을 길들이는


여기서 냄새는 취향에서 계급의 언어로 넘어간다. 향기와 악취는 냄새와 성분만으로 나뉘지 않는다. 코에 들어온 냄새는 기억과 경험, 욕망과 혐오의 감정을 통과하면서 하나의 의미로 확정된다. 요즘 호텔향이 난다,는 표현도 의미의 결정권은 향이 아닌 호텔이라는 공간에 있음을 말해준다.


정돈된 로비, 반짝이는 대리석, 잘 다려진 침구, 조용한 음악, 무엇보다 비싼 가격이 호텔을 럭셔리한 향으로 기억하게 한다. 즉 향 자체보다 향을 둘러싼 맥락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잠시 일상의 바깥에 들어와 있다는 감각, 호텔향은 공간이 생산한 취향이다. 후각은 공간을 기억하는 감각이면서, 동시에 공간의 질서에 몸을 길들이는 조용한 규율이다.


지하철이나 열차는 다르다. 지하철은 후각을 방임한다. 놓치지 않으려 뛰어들은 승객의 체취, 비오는 날 올라오는 눅눅한 냄새, 누군가 급하게 뿌린 향수까지 과하게 불협화음을 낸다. 휴먼스케일이 전혀 지켜지지 않은 밀집공간에서 서로의 삶이 냄새로 침범한다.


특히 1미터 남짓한 열차 안, 사적 영토를 경계로 서 있는 타인의 체취는 그냥 생물학적 부산물이 아니다. 그가 삶을 영위하는 그만의 지문이다.


사생활이 없는


이렇게 냄새는 사적인데, 또 공적이다. 체취는 은폐 불가능한 존재의 실체다. 눈을 감거나 귀를 막으면 어느 정도 타인을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호흡을 멈출 수 없는 인간에게 후각은 타인의 삶을 강제로 수용하게 만드는 가혹한 명령이다. 피로에 지친 입에서 나는 팀원의 단내는 개인의 정보를 전혀 보호하지 않는다.


냄새에는 사생활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가 없다. 냄새야말로 공개된 개인정보다. 타인의 체취를 맡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그 삶의 격전을 읽게 된다. 그가 견뎌낸 치열한 노동의 시간, 눅눅한 일상의 무게, 서둘러 이동해야 했던 삶의 긴박함이 고스란히 폭로된다.


거리에서, 호텔에서, 지하철에서 교차하는 개인정보들은 각자의 삶을 짋어진 채, 짧게 스쳐지나가는 우리 모두의 투명한 초상이다. 타인의 냄새를 들이마시면서 상대의 고단함에 문상해도 괜찮다. 그가 누렸던 파티의 흔적에 공감해도 좋다.


타인의 삶이 내안으로 불쑥 걸어들어 오는 이 거친 방식에 우리는 대항할 수 없다. 숨을 참아도 결국에는 들이마셔야 하고, 깊이 흠향해도 허용하기는 마찬가지다. 이것이 향기. 이것이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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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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