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는 질문하지 않는다

bybeyond juri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지하철 1호선에서는 눈보다 코끝으로 사람을 먼저 만난다. 젖은 우산에서 배어 나오는 빗물 냄새, 코트 자락에 밴 서늘한 공기, 가방 사이로 밀려드는 낯선 숨결이 먼저 살에 닿는다. 서 있는 이들의 시선이 손잡이를 향해 이리저리 흔들리는 동안, 앉은 이들은 타인의 존재를 피해 몸을 반으로 접는다.


어디든 1호선은 가장 오래된 노선이다. 오래된 만큼 많은 것이 이곳을 지나갔다. 출근하는 사람과 학교에 가는 사람, 병원으로 향하는 사람과 장을 보러 나온 사람, 오래된 동네로 돌아가는 사람과 처음 가보는 곳으로 향하는 사람이 같은 선 위에 올라탄다. 서로 다른 삶이 몇 정거장 동안 같은 칸에 머문다.


그래서 1호선은 단순히 사람을 실어 나르는 교통수단이 아니다.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체취를 감각하는 공간이다. 이름도 모르고, 사연도 모르고, 다시 만날 가능성도 없는 사람들이 잠시 같은 공기를 나눈다.


코끝의 타인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코끝으로 타인의 삶이 먼저 건너온다. 코를 찌르는 독한 향수, 방금 문을 열고 나온 식당의 기름진 온기, 오래 걸어온 이의 눅눅한 땀, 세탁물에서 나는 섬유유연제가 좁은 열차 안에서 대바카라 없이 포개진다. 어떤 것은 문이 열릴 때마다 바람을 타고 사라지지만, 어떤 것은 옷깃에 들러붙어 몇 정거장이 지나도록 끈질기게 따라온다.


냄새에는 표정이 없다. 말처럼 고쳐 말할 수도 없다. 감추려 해도 완전히 감출 수 없고, 맡고 싶지 않아도 밀려든다. 누군가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코끝이 가장 먼저 일깨운다. 1호선에서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몸이 그렇게 마주친다.


냄새는 사람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냄새를 통해 타인을 설명하려 한다. 어떤 냄새는 깨끗함으로, 어떤 냄새는 가난으로, 어떤 냄새는 늙음으로, 어떤 냄새는 불쾌함으로 번역된다. 냄새 하나가 한 사람의 삶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도 있다.


이름 없는 만남


이 만남에는 이름이 없다.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 않고, 어디로 가는지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잠깐 같은 공기를 나누다가 각자의 역에서 내릴 뿐이다. 얼굴을 기억하는 일은 드물고 대화를 나누는 일은 더 드물다. 하지만 몸은 이 짧은 접촉을 기억한다. 어깨가 닿지 않아도 옆자리의 온기를 느끼고, 시선이 닿지 않아도 누군가의 기척을 알아챈다. 이름도 사연도 모르는 사람이 몇 센티미터의 거리를 두고 곁에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1호선에서 타인은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몸을 가진 채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다. 숨을 쉬고, 땀을 흘리고, 옷에 냄새를 묻히고, 기침을 하고, 잠이 들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본다. 서로의 삶을 알지 못해도 서로의 몸을 피할 수는 없다.


몸은 스쳐도 타인


도시는 사람을 연결하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지하철은 그 연결을 가장 효율적으로 밀어 넣은 장치다. 수많은 사람이 같은 궤도 위를 움직이고, 서로 다른 목적지가 하나의 선으로 엮인다. 그러나 열차 안의 풍경은 거꾸로 간다. 가까이 서 있지만 말을 건네지 않는다. 몸이 스쳐도 눈을 맞추지 않는다. 지독하게 밀착된 채로 완벽한 남이 된다.


시선은 피하면 그만이고, 대화는 거절하면 된다. 이어폰을 끼면 소리마저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감각까지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다. 타인의 존재는 의지와 상관없이 몸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는 사람의 차이도 몸을 통해 드러난다. 어떤 몸은 오래 노동한 흔적을 품고 있고, 어떤 몸은 향수로 자신을 감싼다. 어떤 몸은 병원에서 돌아오고, 어떤 몸은 밤새 일한 뒤 집으로 향한다. 옷과 피부와 냄새에는 말로 설명하지 않은 삶의 흔적이 남아 있다.


1호선은 이 흔적들을 지우지 않는다. 다만 서로의 몸을 잠시 같은 공간에 놓아둔다.


같은 칸, 다른 삶


1호선에는 출근하는 사람, 학교에 가는 사람, 병원에 가는 사람, 장을 보러 가는 사람이 함께 탄다. 오래된 동네로 돌아가는 사람과 낯선 곳으로 향하는 사람의 시간이 같은 칸 안에서 잠시 포개진다. 서로의 사정도 목적지도 모른다. 그저 바짝 붙어 앉거나 서서 몇 정거장을 함께 이동한다.


그 사이에도 냄새는 쉬지 않고 오간다. 병원 냄새를 몸에 묻히고 탄 사람 옆에 갓 구운 빵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앉고, 밤새 일한 사람의 지친 체취가 새벽 운동을 마친 사람의 상쾌한 땀과 나란히 놓인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출근길이고, 누군가에게는 병원으로 향하는 긴장된 아침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 수 있다. 하나의 열차 안에 서로 다른 하루가, 서로 다른 냄새로 아무 설명 없이 겹쳐진다.


1호선이 기억하는 것은 승객의 이름이 아니다. 이들이 남기고 간 체취의 흔적들이다. 냄새와 온기, 말투와 침묵, 오래된 옷과 새로 산 향수, 피곤한 몸과 잠깐의 웃음. 서로에게는 스쳐 지나간 순간이지만, 같은 칸 안에서는 모두 하나의 풍경이 된다.


문이 열리면...


도시의 열차는 사람 사이의 최소한의 거리를 끊임없이 좁힌다. 몸과 몸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더 미세한 규칙을 만들어낸다. 어디를 바라볼 것인지, 시선을 어디에 둘 것인지, 얼마만큼의 기척을 참아낼 것인지. 서로의 사생활을 지켜주기 위해 수많은 침묵의 규칙을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다. 가까이 있는 사람의 존재는 계속 감각된다. 이름을 몰라도 알 수 있고, 말을 섞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1호선은 도시를 다르게 보여준다. 도시를 거대한 건물이나 도로의 집합으로 보는 대신, 서로 다른 삶이 잠시 부딪히고 포개지는 공간으로 보여준다. 이곳에서는 냄새 하나가 한 사람의 시간을 불러내고, 낡은 옷 하나가 지나온 세월을 드러내며, 사라져가는 동네의 냄새가 도시가 지워버린 기억을 붙잡기도 한다.


1호선은 늘 그렇게 달린다. 사람을 싣고, 냄새를 싣고, 몸의 흔적을 싣고, 사라져가는 시간까지 싣고 간다.

문이 열리면 타인의 체취가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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