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No.5의 무례함

bybeyond juri

출근길 지하철 1호선, 마릴린 먼로가 탔다.


좋은 향기는 공간을 점령하지 않고, 공간에 조용히 스며든다. 백 리를 간다는 백리향조차 봄바람에 실려야 멀리 닿는다. 타인의 숨결과 섞이지 못하는 향은 그저 혼자 피어오르다 흩어질 뿐이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 1호선은 온갖 냄새의 전장이다.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전날 숙취 냄새, 오랜 밴 땀냄새, 여러 샴푸 냄새, 눅눅한 에어컨 냄새가 뒤섞인다. 비 오는 날은 더 하다. 이 일상 냄새의 소음을 한 번에 독점하며 등장하는 샤넬 No.5.


갓 다린 셔츠향


코코 샤넬은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에게 장미 냄새가 나는 향수가 아니라, 여성의 냄새가 나는 향수를 원했다. 장미나 은방울꽃을 재현하는 향이 아니라, 드레스처럼 인공적인, 즉 만들어진 향수를 주문했다. 조향사 보는 알데하이드라는 합성 원료를 과감하게 넣었다. 비누향과 갓 다린 셔츠향이 섞인 차갑고 반짝이는 냄새가 장미와 재스민을 감싸며 위로 밀어 올렸다.


장미향도 아니고 재스민향도 아니고 비누향도 아닌, 이 모든 것이 섞여 있으면서도 어느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향이다. 자연을 흉내 낸 향이 아니라, 처음부터 인간이 설계한 향이었다. 향수가 처음으로 제품의 얼굴을 한 순간이었다.


이 향에 신화를 입힌 것은 마릴린 먼로였다. 잠자리에 무엇을 입고 자느냐는 짓궂은 질문에 그녀는 샤넬 No.5 몇 방울이라고 답했다. 먼로의 한 마디에 No.5는 향수가 아니라 욕망의 기호가 된다.


1호선의 샤넬 No.5


클래식 명작이라 불리는 이 고귀한 향은 순식간에 지하철 한 칸의 공기를 독점한다. 눈은 감으면 그만이고, 귀는 이어폰으로 막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후각은 다르다. 숨을 쉬어야만 살아가는 인간에게 후각은 선택할 수 없는 감각이다. 들숨과 날숨 사이로 타인의 지극히 사적인 취향이 강제로 틈입하면, 아무리 빼어난 향기라 한들 공간을 침범한 것이 된다.


향기의 예의는 스스로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으며, 다른 이의 숨이 거닐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둔다. 가장 평등한 공간인 1호선 지하철에서 만나는 럭셔리 향수의 아우라는 묘한 엇갈림을 남긴다. 타인의 숨길을 지켜주지 못하는 향은 아무리 고귀한 이름을 품었을지라도 오롯이 혼자만의 세계에 머물 뿐이다.


파우더 향 뒤의 사람


그러다 문득, 짙은 파우더 향 뒤에 숨은 한 사람의 맥락을 가만히 상상해 본다. 자기 상실의 임계점까지 다다른 아슬아슬한 도시에서 독보적인 향수는 스스로를 증명받으려는 쓸쓸하고도 절박한 안간힘일 수 있다. 타인을 배려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거리 조절에 실패했을 뿐이라면, 이는 비난보다는 연민의 시선으로 보아도 되지 않을까.


자신을 지키려는 지극히 사적인 위로가 타인의 호흡을 압박하는 무례가 되어버린 이 역설이야말로 우리가 밀집된 도시에서 마주하는 아픈 단면이다.


매일 차가운 공기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경계선을 겨우 지켜내며 서 있다. 1호선은 매일 아침 서로 다른 삶의 악취와 향기가 부딪히며 도시의 윤리를 시험하는 장소다. 타인의 숨길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일은 이토록 섬세하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지키는 향기였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견뎌야 할 냄새였을 것이다. 아름다움은 이 사이 어디쯤에서 자리를 찾는다. 혼자 빛나는 것과 함께 존재하는 것, 둘 사이의 거리가 오늘 아침 1호선의 밀폐된 공기 속에서도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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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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