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진짜 그냥 장난이었어요. 괴롭히려던 게 아니고요.”
교실 앞문 옆에서 아이는 억울함에 목이 메어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고 있었다. 툭하면 뒷사람의 의자를 슬쩍 빼버리거나 실내화 가방을 창밖으로 던지며 배를 잡고 웃던 아이였다. 억울해서 어쩔 줄 모르는 아이의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는 시선을 돌려 아침부터 비어 있는 맨 뒷줄 바카라상을 바라보았다. 주인을 잃은 바카라상 위에는 서툴게 접힌 노란색 공바카라 한 권만 덩그러니 얹혀 있었다.
단지 몸살이라도 난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아이가 오늘 학교에 오지 못한 이유가 학급 아이들의 거듭된 괴롭힘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가슴 한쪽에 묵직한 돌덩이 하나가 내려앉았다.
“하는 사람에게는 장난이어도, 견디는 사람에게 아픔이라면…… 그건 이미 장난이 아니다.”
아이에게 낮게 던진 그 한마디는 사실 아이만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서른두 해 동안 아이들을 보아 왔으니, 표정만으로도 마음을 읽을 줄 안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나는 아이를 읽은 것이 아니라, 내가 아는 방식대로 아이를 해석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수많은 백묵 가루를 날리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르쳐 왔지만, 정작 내 아이들의 눈빛 뒤에 숨겨진 그늘을 읽어내는 일에는 나 역시 터무니없이 서툴렀다.
내 말이 떨어지자 교실은 조용해졌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빈 바카라상을 힐끗 바라보았다. 뒤쪽에서 “난 몰랐는데……” 하는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 아침마다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누고, 점심시간이면 짝을 지어 밥을 먹던 친구였다. 하지만 그 아이가 무엇을 견디고 있었는지 눈치채지 못한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그 아이가 견뎌내던 정적을 너무나 쉽게 ‘조용한 성격’으로 치부해 버렸던 것이다.
문득, 내 기억 한구석에 묻어두었던 지난 학기의 한 장면이 뾰족한 가시처럼 튀어나왔다.
체육 시간이 끝난 뒤, 교실 뒤편에서 그 아이가 신발을 갈아 신으려고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때 한 아이가 다가가 친구의 운동화 뒤축을 발로 꾹 밟았다. 아이는 몇 번이나 신발을 벗어 고쳐 신으려 애썼지만, 아이들은 재밌다는 듯 아이가 신발을 신으려 할 때마다 뒤축을 다시 밟으며 킥킥거렸다. 아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끝내 아이가 꺾인 운동화를 억지로 구겨 신은 채 교실을 나설 때에도, 나는 교탁에서 수업 준비를 하며 그 모습을 건성으로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얘들아, 적당히 해라.”
내가 던진 그 건조하고 무심한 한마디. 그것으로 나는 교사로서의 할 일을 다 했다고 믿었다. 아이들의 행동을 그저 그 나이대 아이들이 치르는 철없는 장난 정도로 여겼고, 상처 입은 아이의 어깨를 한 번 따뜻하게 안아주지 않았다. 혼이 날 때마다 아이들이 요긴하게 써먹던 “장난이었어요”라는 그 무바카라임한 방패 뒤로, 어쩌면 나 역시 슬그머니 발을 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아직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그리고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그 균열을 외면해 온 시간들이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교실 창문 너머로 운동장의 흙먼지가 바람을 타고 아득히 날리고 있었다. 텅 빈 바카라상 위 노란 공바카라에 햇살이 잠시 머물다 지나갔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아이가 다시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날, 나는 꺾여 있던 운동화 뒤축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적당히 해라”라는 말 한마디 뒤로 피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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