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타고 터널을 달릴 때면, 사방을 감싸 안는 주황색 조명빛이 유독 가슴 깊은 곳을 찌르고는 한다. 매끄러운 아스팔트 위를 구르는 타이어 소리가 콘크리트 벽면에 부딪쳐 웅웅 거리는 소음으로 되돌아올 때, 나는 오래전 보았던 영화 한 편을 떠올린다. 평범한 일상을 지나던 주인공이 갑작스러운 붕괴로 암흑 속에 갇히고, 생과 사의 경계선 위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던 처절한 이야기. 그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스크린이라는 안전거리 밖에서 관람하는 타인의 재난일 뿐이었다. 그러나 삶의 천장이 무참히 내려앉았던 그 모진 계절을 온몸으로 통과하고 난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그것은 가상의 재난이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 지나게 되는 삶의 터널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것을. 인간은 누구나 태어남과 동시에 자신만의 터널 속으로 들어선다.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따뜻한 어둠을 빠져나온 순간부터 우리는 저마다 다른 터널을 지나며 살아간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운명인지 우연인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저마다에게 주어진 고유한 터널을 묵묵히 걸어가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지나던 터널이 무너져 내렸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평범하고 소박하게 행복을 누리던 시절이었다. 교단에 서서 분필 가루를 날리며 아이들과 눈을 맞추던 평온한 일상, 퇴근길의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들던 아내의 따스한 그림자, 그리고 매일매일 소소한 기쁨을 수확하던 그 나날들 속에서 불행은 소리 소문 없이 스며들었다. 처음에는 마음에 그늘이 지는 듯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과 슬픔이 나를 잠식해 들어왔다. 우울증이 찾아와 영혼을 갉아먹기 시작할 때, 아내에게 난치병 진단이 내려졌다. 의학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병마는 아내의 육신을 매일 조금씩 허물어뜨렸다. 침대 머리맡에서 야위어가는 아내의 손을 잡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적을 바라는 기도는 번번이 차가운 병실 벽면에 부딪쳐 허공으로 흩어졌고, 끝내 아내는 낙엽 지는 소리도 없이 내 곁을 떠나 영원한 잠에 들었다.
가장 커다란 기둥이 뽑혀 나간 집안은 순식간에 온기가 증발했다. 아내를 잃은 슬픔과 충격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아들에게로 번졌다. 어머니의 부재라는 상실을 감당하기에 아들의 영혼은 너무나 여리고 유약했다. 어느 날 밤, 불 꺼진 아들의 방 문틈으로 흘러나오던 거친 숨소리와 억눌린 흐느낌을 들었을 때의 절망감을 나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문을 열었을 때, 방안에는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처럼 멍하니 조각난 벽지만 바라보고 있는 아들이 있었다. 초점을 잃은 아들의 텅 빈 눈동자는 내 가슴을 날카로운 가위로 베어내는 듯했고, 내가 걸어온 모든 생의 궤적이 실패작처럼 느껴져 숨이 막혀왔다. 원망 섞인 질문만이 차가운 방바닥을 뒹굴 뿐, 사방을 둘러보아도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의 미동조차 보이지 않는 고독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인간의 영혼은 상처투성이가 될지언정 쉽게 바스러지지 않는 복원력을 지니고 있었다. 길고 깊고 어두웠던 그 고립의 터널을 온몸으로 기어 나오며, 나는 이전에 결코 알지 못했던 삶의 다른 이면을 보기 시작했다. 아들의 지친 어깨를 감싸 안고 함께 밤을 지새우던 어느 새벽, 알루미늄 창틈 사이로 새벽빛이 가늘게 스며드는 것을 보았다. 그 미약한 빛 한 줄기가 어찌나 눈물겹도록 고맙던지, 나는 아들의 뼈마디가 만져지는 손을 꼭 쥔 채 한참을 울었다. 역설적이게도 그 모진 암흑의 세월은 나에게 전보다 훨씬 더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심성을 선물해 주었다. 세상의 모든 아픔과 슬픔 앞에 나의 오만했던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고, 살아 숨 쉬는 모든 존재를 향한 겸손함을 배웠다. 내가 겪은 아픔의 깊이가 깊었기에, 길가에 위태롭게 피어난 작은 풀꽃 하나, 지하철역에서 스쳐 지나가는 이웃의 지친 어깨조차도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고통의 밑바닥을 더듬어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타인의 슬픔을 먼저 알아보는 슬픈 예민함이었다.
지나고 보니 알겠다. 눈이 멀 것 같이 환하고 매끄러운 순간보다, 발을 헛디디며 비틀거렸던 어둠 속에서 나는 진짜 인생의 깊은 맛을 느꼈다. 암흑 속에서는 감각이 극도로 투명해진다. 작은 바람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고, 사소한 온기에도 온 영혼을 다해 감사하게 된다. 세상 사람들은 높은 자리와 많은 것을 가진 이를 부러워하고 동경한다. 그러나 온몸으로 슬픔의 바닥을 치고 올라온 지금의 나는 안다. 화려한 불빛은 때로 인간의 눈을 멀게 가려, 삶의 진짜 얼굴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환상 속에 갇힌 사람들은 대개 그 빛이 영원할 것이라 착각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조명은 없다. 낮이 지나면 밤이 오고, 밤이 깊어지면 다시 새벽이 찾아오는 것처럼, 삶의 명암 역시 끊임없이 자리를 바꾼다. 우리는 그저 온전히 그 순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자동차의 속도가 올라갈수록 차창 밖을 흐르는 주황색 불빛들이 하나의 긴 선으로 연결되어 잔상을 남긴다. 문득 옆자리를 돌아본다. 어느덧 마음의 터널을 씩씩하게 빠져나와 단단해진 모습으로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아들이 있다. 우리가 함께 달리고 있는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결국 모든 길의 끝에는 죽음이라는 종착지가 기다리고 있다. 그 사실을 알기에 오늘의 길은 더욱 소중하다. 영원하지 않기에 비로소 아름다운 것이다. 어두운 구간을 지날 때는 낙담하는 대신 그 안에서 마음의 평수를 넓히고, 밝은 구간을 지날 때는 자만하지 않고 주변의 그늘을 살필 줄 아는 지혜. 그것이야말로 이 긴 여행을 지나가는 가장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싶다.
차창 밖으로 저 멀리 푸른 하늘과 함께 출구가 보인다. 하얗고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그 통로를 향해 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나아간다. 어둠이 깊었기에 눈앞에 펼쳐질 하늘과 대지가 더욱 선명하고 아름답게 다가올 것을 나는 안다. 내 남은 생의 여정이 앞으로 얼마나 더 길게 남아 있는지, 또 얼마나 더 어두운 그늘을 마주하게 될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는 두렵지 않다. 어둠은 끝이 아니라 다음 빛을 준비하는 긴 터널이었다. 나는 오늘도 아들의 손을 잡은 채, 내게 주어진 터널을 묵묵히 지나간다.
*같이 보면 좋은 글
이 글의 행간에 다 담지 못한 더 많은 그림과 소박한 기록들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언제든 편히 들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