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파 껍질을 벗기며
식탁이라는 사각형의 세계 위에
지독하게 둥근 무덤이 놓여 있다
칼날을 들이밀 때마다 서걱거리며 문을 여는 방들,
안쪽으로 도망치며 제 몸을 말아 쥐는 방들
밀고 들어갈수록 벽은 점점 더 얇아지는데
끝내 도달할 수 없는 중심을 향해
손가락들은 매일 붉은 벽을 벗겨내고 있다
어제 건너온 단조로운 산바카라로와
내일도 기어이 서성여야 할 고요한 골목들이
저 겹겹의 곡선 사이에 납작하게 압착되어 있다
다 지워진 기억의 냄새가 매운바람으로 불어와
눈물이 고이는 동안,
나는 이 반복의 주소를 다시 적는다
마지막 한 겹마저 바닥으로 허물어지고
칼끝이 마침내 제 자신의 그림자를 찔렀을 때,
식탁 위엔 둥근 공기 한 줌과
지독하게 하얀 침묵만이 남는다
알맹이가 없다는 것,
중심이 온통 뚫려 있다는 것,
그 빈자리로 세계의 숨이 팽팽하게 드나든다
텅 빈 손바닥 위로 무수한 껍질들이 나비처럼 날아가고
나는 다시 그 무덤의 문을 열기 위해
내일의 칼날을 정성껏 갈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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