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름을 부르지 못한 오후

by선비천사

오후 세 시,
면회 시간이 끝나고 나서야
병실은 조금 조용해진다


창문으로 들어온 빛이
침대 난간에 한 번 걸렸다가
바닥으로 내려온다


커튼이 반쯤 접힌 채라
빛은 곧게 오지 못하고
몇 번 꺾인 끝에야
아버지의 발등 근처에 닿는다


나는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오다 말고
문 앞에 서서
한동안 들어가지 않는다


문 안에서는
기계가 일정한 간격으로
짧고 마른 숨 같은 소리를 낸다


햇빛 속에서야 먼지가 보인다
가만히 떠 있던 것들이
서로의 자리를 조금씩 밀어내며
천천히 이동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빛이 닿은 자리에서
아버지 손등의 핏줄이
조금 더 푸르게 드러난다


금이 간 것처럼 보였던 얼굴의 주름들이
실은 오래 겹쳐 살아온 시간이라는 걸
나는 자꾸 잊고 있었다


침대 옆 탁자에는
어제 내가 접어둔 신문과
끝까지 읽지 못한 기사 하나


접힌 자국 위로
빛이 잠깐 머물렀다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지나간다


나는 그제야
문을 조금 더 밀고 들어가
비어 있는 컵을 치우고
식어버린 물을 버린다


누워 있는 아버지는
내가 들어온 것을 모르는 것처럼
계속 같은 자세로 누워 있고


나는 “아버지”라고
한 번 불러보려다가
끝내 입을 다문다


잠깐 구름이 창을 덮어도
방 안의 방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조금 전까지
여기에 닿아 있던 것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데도


공기는 이전과 같지 않다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지만
아까와 같은 자리는 아니고


지나간 것들만이
조금씩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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