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전도사

나 지금 떨고 있니......

by혜준

2학기 시작이다.

첫 수업을 끝내고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남녀 학생 두 명이 방글방글 웃으며 다가온다.

1학기 때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인데 2학기에도 수업을 신청했다.

난 학생들을 출석부 순서대로 앉히는데,

1학기 내내 이 둘은 앞뒤로 앉아서 서로 가르쳐 주기도 하고,

회화 연습을 할 때면 낄낄거리면서 재미나게 하길래

혹시나...... 했었다.

그런데 역시나......

지금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니 커플이라고 한다.


"너희 CC구나?" 하니

"CC가 뭐예요?" 한다.

"Campus Couple"

내 말에 쑥스러운 듯 서로를 찔러대며 큭큭거린다.

올렐레?

이 청춘들이 어디 스승님 앞에서 꽁냥거리는 거냐!


일본에서는 CC라고 해도 통하지 않는다.

(CC레몬이라는 음료수는 있다)

물론 커플을 의미하는 'カップル'라는 말은 있지만,

같은 대학 내의 커플을 지칭하는 단어는 없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랑스럽게

지금의 남친과 사귀기 전에도 같은 과 CC였다고 한다.

전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바로

지금의 남친과 만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와...... 능력녀일세.


같은 과에서 CC였다가 또 금세

다른 사람과 CC가 되면 좀 거북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내가 엄청 고루한 사람같이 느껴진다.

사실 난 엄청 고루하긴 하다.

젊었을 땐 지금보다 훨씬 더 고루했다.


나는 대학 다닐 때에도

절대 같은 과 CC는 되고 싶지 않았다.

주위에서 CC를 보면 부럽다기보다

혹시 헤어지게 되면 어쩌려고 저러지......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곤 했다.


게다가 난 연애를 하기 전부터

결혼까지의 노정을 상상하곤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좀처럼 누군가를 사귈 수가 없었다.

조건을 보거나 하는 게 아니라

조금 호감이 있다고 일단 사귀어 보자!

가 되지 않았다.

헤어지게 되면 너무 슬플 것 같고,

잊지 못해 괴로울 것 같고,

결국 상처가 될까 두려워 시작도 못했다.


그런데 막상 연애를 해 보니

상대방보다 나 자신을 더 많이 들여다볼 수 있었고

그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나 아쉽게도

처음 연애가 마지막 연애가 되었으니

(앗! 혹시.... 마지막이 아닐 수도....ㅎ),

만약 좀 더 많은 연애를 했다면

지금보단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난 지나간 것에 후회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좋은 시절에 좀 더 마음을 열고

많은 연애를 못 해 본 것이 무척이나 아쉽다.


이 귀여운 CC들은

방학 동안의 근황을 나한테 이야기해 주었는데,

그중에서 내 귀에 쏙 꽂힌 게

여름 방학 때 둘이 여행을 갔다 왔다는

묻지도 않는 자랑이었다.


응?...... 아직 2학년인데 단 둘이 갔다 왔다고?


갑자기 엄마 모드가 된 나는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갔냐고 하니, 그렇다고 한다.

엄마는 흔쾌히 허락했는데, 아빠는 옛날(?)사람이라

'결혼 전에 아가씨가....'

할 게 뻔해서 말을 안 했다나?

"여행 좋았겠네......"

하면서도 내 맘 속은 복잡해진다.


내 딸이라면 난 어떻게 할까?

대학 가서 남자 친구 생겼다고

외박을 하거나 여행을 간다고 하면

난 어떤 얼굴을 하게 될까?

이제까지 생각도 상상도 해 본 적도 없는 질문에

스스로 놀라 흠칫했다.

나도 딸에게 흔쾌히

"응~조심해서 갔다 와아~"

라고 웃으며 배웅할 수 있을까.


지금껏 연애를 많이 못해 본 것을 후회하고,

학생들에게는 틈만 있으면 연애하라고 부추기는

자칭 '연애 전도사'인 주제에,

나는 정작 내 딸에게는 전도를 주저하고 있다.

이 무슨 모순이란 말인가.


연애 적령기의 딸을 가진 엄마들은

과연 어떤 마음가짐으로

딸들을 저 거칠고 광활한 세상에 내보낼 수 있었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나 지금 떨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