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그래도

헐벗은 삼인방의 패션쇼

by혜준

"아이와 언제까지 같이 목욕을 해야 하나"

아이 키우는 일본 엄마들의 스몰 토크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이다.

나와 만나는 엄마들은 이미 아이들이 컸으니 "언제까지 같이 목욕을 했나"로 이야기꽃을 피우지만.


모유를 몇 살까지 먹여야 하나 고민하듯, 여기서는 아이의 목욕을 언제부터 혼자 시켜야 할까도 육아의 중요한 관문이다.

일본의 목욕 문화는 한국과 조금 다르다(시간 있으시면 예전 글 참고하세요).

아! 한국의 대중목욕탕을 생각하면 이해가 더 빠를 수 있겠다.

지금 한국 목욕탕에서는 아이가 몇 살까지 다른 성별의 욕탕에 들어갈 수 있으려나?


여기서 가끔 들리는 귀를 의심할 만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건 성인이 되어도 성별이 다른 자녀가 부모와 같이 목욕을 한다는 것이다.

오해를 하지 않길 바라는 노파심에 말하지만 일본 사람들이 다 그렇진 않다.

대부분은 "헤에~?"하고 뒷걸음질 친다.

내가 들은 이야기 중에는 모자(母子)보다는 딸과 아빠의 경우가 많았는데, 서로 등도 밀어주고 욕조에 같이 들어가서 두런두런 일상 이야기도 하는 힐링타임이라고 한다.


난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뭐 그렇다고 그리 놀랄 처지는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집에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동방예의지국 출신인 우리 집 멤버들은 도대체 예의를 어디다 갖다 버린 것인지 목욕을 마치고 나면 서로 속옷 차림으로 집안을 어슬렁거려서 내가 다 부끄러울 지경이다.

자기애(自己愛)가 충만해서 남에게 관심이 없나?

서로를 너무 가족으로만 봐서 그런가?

상대방의 헐벗은 상태에 놀라지도 않고 당황하지도 않는다.

나만 이들이 왔다 갔다 할 때마다 헉!!! 하면서 눈 둘 곳을 찾아 헤매기 바쁘다.

참다 참다 한 번씩 폭발하면 나만 이상한 변태 취급을 한다. 우뛰......


한국에서도 남자 화장실을 청소하기 위해 아주머니(이모님? 여사님?)께서 불쑥 들어오실 때는 당황스럽다는 글을 어디서 본 적이 있지만, 여기는 예전부터 너무나 자연스럽게 출입을 하시기 때문에 난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

게다가 일본은 화장실 정도가 아니다.

온천이나 목욕탕에서 청소 아주머니들의 남탕 출입은 프리 패스이다.

하지만 아저씨(삼촌? 오빠?)들이 청소를 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일본에는 온천을 파서 한국 찜질방과 같이 커다란 시설처럼 해 놓은 대중 온천이 있는데 거기에 가면 가끔 한국식 아카스리(때밀이) 코스가 있다.

처음엔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쳤다.

온천에 간 어느 날, 남편이 너스레를 떨면서 "오늘 때나 한 번 밀어 볼까?" 하길래,

"그러던지"하고 가볍게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남편을 쳐다보니 얼굴 가득 음흉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지 않은가.

등짝을 서너 대 때리면서 일본에서의 아카스리는 한국 시스템과 다르다는 걸 알았다.

한국처럼 남탕과 여탕에 각자 작업복을 장착하신 세신사분들이 계신 게 아니었다.

이 코스만을 위한 안이 잘 보이지 않는 개인적인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고, 거기에는 여성분들만이 일하고 계신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난 일본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세신사분들을 폄하하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솔직히 내 남편을 폄하하려는 건 좀 있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일본에서는 때때로 성별보다 역할이 앞서는 게 아닐까? 하는 작은 가설이다.

남탕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는 청소 아주머니도, 그 아주머니를 보고 기겁하지 않는 남탕의 여러분들도, 성별을 가리지 않고 아카스리 코스를 운영하는 온천도, 그 순간만큼은 남자와 여자보다 청소하는 사람과 목욕하는 사람, 때를 미는 사람과 때를 미는 손님이라는 역할이 앞서기에 가능한 장면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집에서 성장한 딸이 아빠와 알콩달콩 한 욕조에 들어가 하루의 피로를 깨끗이 씻어낼 수 있는 것도,

어쩌면 그들에게는 親子(おやこ, 부모자식)이라는 역할(관계)이 성별을 뛰어넘기에 가능한 상황이 아닐까.(親子라는 한자를 한국에서는 친아들, 친딸의 개념으로 쓰지만, 일본에서는 한국에서의 父女나 母子와 같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가리킬 때 쓴다)

나한테는 다소 찐(?)하고 조금 징그러운 親子(오야코)의 情이다.


음??

그렇다면 일본 사는 우리 집 헐벗은 삼인방의 속옷 패션쇼 역시, 남녀칠세부동석을 뛰어넘어 親子(부모자식), 姉弟(남매)의 情이 너무 깊은 결과인 것일까.


아무리 그래도

이 사람들아, 제발 파자마 바지라도 좀 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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