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이라는 필터
쿨럭거리는 기침을 약과 마스크로 틀어막고 아들 학교 PTA 회의에 참석했다.
교실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 회장님이 여전히 오호호...... 애교 만점 엄마랑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고 계신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미열이 좀처럼 내리지 않더니 그 광경을 보니 새롭게 확 발열이 되는 듯하다.
줌을 연결하시는 분, 마이크나 카메라 기기를 운반하시는 분, 바카라상 정리를 하시는 분......
각자 맡은 일을 하느라 분주하신데
회장님과 회계담당 애교 어머니는 눈치 좀 챙기시지?
곁눈질을 하며 나도 내 자리에 앉아 회의 준비를 한다.
내 담당은 서기.
지난번 회의는 15분 만에 끝나서 회의록 작성할 것도 없었는데,
오늘은 며칠 전 제출된 要望書로 인해 회의가 길어질 듯하다고 한다.
오늘 회의록 작성은 난데...... 우뛰……
폰으로 녹취를 하고 집에 가서 천천히 정리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폰을 바카라상 위에 떡하니 놓아두고 여유 있게 메모를 적어가며 경청하고 있었다.
각 위원회의 금후 활동보고가 끝나고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謝礼"([sharei] 사례)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일본 중고등학교 행사의 꽃인 学園祭 ([gakuensai] 축제)를 도와주러 오는 학부모들에게
교통비 대신 사례라는 명목으로 500엔 아마존 카드를 건네던 것을 폐지하자는 의견에 대한 회의였다.
바쁜 축제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인받아가며 카드를 건네는 것도 귀찮거니와
차라리 그 돈을 학생들에게 환원해서 경품을 좀 더 비싼 것으로 준비하거나
과자나 음료수를 사자는 일부 부모들의 의견이 모아졌나 보다.
하긴 5000엔을 준다면 모를까 500엔이다.
500엔 주고받는데 드는 노동력과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푼돈 필요 없으니 그냥 애들 과자나 사주자는 뜻으로 나에겐 들렸다.
혹은 이 500엔으로 숭고한 봉사정신이 매도되는 것 같아 선뜻 받기가 어려운 것일 수도.
물론 이런 말은 절대 아무도 하지 않겠지만......
이를 둘러싸고 유지해야 한다는 측과 폐지하자는 측이 팽팽하게 맞서서 어느 쪽도 양보하지 않는다.
한 시간 하고도 30분이 경과된 후에,
결국 다수결로 올해 예산과 총회의 결의로 바카라정된 금액이 있으므로
이번 연도는 그대로 사례를 전달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작업을 해 놓을 작정으로
집에 와서 회의록 파일을 열어 놓고 녹음해 둔 회의를 다시 들어 보니 참 재미나다.
말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거나 메모를 적으면서 들을 때는 몰랐던 것들이 톡톡 튀어나온다.
청각이라는 감각만으로 들어서일까
녹취록으로 들으니 회의 내용이 더 정확하게 파악되는 것 같다.
물론 회의록을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내용에 집중하는 탓도 있겠다.
하지만 녹취를 들으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는 귀로 듣는 것 이상으로
눈으로도 듣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어, 목소리가 작고 야리야리한 어머니가
자분자분 말을 할 때는 뭔가 코너에 몰린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녹음을 듣고 있자니 상당히 과격하고 공격적인 발언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속으로 꼬롬하게 보고 있던 회장님이
말을 할 때는 반발심이 일어서 왜 말을 저렇게 해? 하고 투덜거렸는데,
가만히 발언을 다시 듣고 있자니
상당히 일리 있는 논리를 조리 있게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 시간 반의 녹음 내용을 다시 다 듣고 나서야 나는
쓸데없이 길었다고 생각한 이 회의가
속으로 내가 '딱따구리'라고 별명을 붙여 두었던 총무부장님이
딴 길로 새는 논점을 적확하게 다시 돌려놓고 정리 정돈해 주신 덕분에
신속하게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에 내가 이 녹음을 듣지 않았다면,
회의에 출석해 끝까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나긋나긋한 어머니는 의견을 묵살당하는 약한 입장의 사람으로
회장님은 쓸데없는 말을 하는 사람으로
딱따구리 총무부장님은 시끄럽게 회의를 방해하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껏 나는 사람의 말을 듣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나는 말을 듣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필터를 통해서.
그럼 난 이제부터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는 눈을 감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아니면 천을 뒤집어쓰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최소한 내 마음과 눈에 붙어 있을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필터를
조금이라도 깨끗이 닦아내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그런 자세가 참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갑자기 불쑥 이런 무서운 생각이 든다.
내가 교단에 섰을 때 과연 우리 학생들은 내 말을 어떤 귀와 눈으로 듣고 있을까?
혹시 나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으로 인해 학습이 방해가 된다면
앞으로는 수업 시간에 모두의 눈을 감기고 귀로만 수업을 듣게 하는 건 어떨까?
내 말을 듣기는커녕 옳다구나 꿈나라로 직행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