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있습니다

"저어......"

by혜준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당신께 질문이 있다.


만약, 전철에 앉아 있는데

맞은편 정면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계신

아주머니와 할머니의 중간 정도의 중년 여성 바지의

앞지퍼가 활짝 열려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성별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겠지만.

난 정말 종점까지의 10분 정도의 시간이

10년처럼 느껴질 정도로 고민했다.


출근 시간이 지나서 전철에는 사람이 적었다.

자리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데,

나보다 늦게 탄 아주머니가 내 맞은편 정면에서 레인코트를 벗었다.

그러고 나서 그분이 관록 있게 자리에 앉는 순간,

내 시선은 한 지점에 정확히 집중되었다.

우리 중년 여성들의 공통된 고민인 아랫배 녀석 덕분에,

그 지점은 더더욱 눈에 띄었던 것이다.

아주머니의 속옷은

화려하지 않은 다소곳한 '살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연스러운 색상이 오히려 나를 더 당황스럽게 했다.


정차할 때마다 승객이 늘어났고,

비어 있던 내 양옆 자리도 채워졌다.

어찌해야 할까......

살짝 일어나

아주머니 앞으로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알려 드려야 하나.

금방 내릴 텐데 내가 갑자기 다가가서 이야기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더 알리는 꼴이 되진 않을까.

짧은 시간에 온갖 데이터를 총동원해 본다.

AI 저리 가라다.


내가 가서 살짝 알려 드리면 깜짝 놀라며

"어머!"

하고 얼른 지퍼를 올린 뒤 발개진 얼굴로

나에게 목례를 해 줄 것 같지 않은 분이라는

느낌적인 느낌도 온다.

하지만 느낌은 느낌일 뿐이라

내 안의 갈등은 점점 더 심해진다.

게다가 여긴 한국이 아니지 않은가.

말을 한다고 해도

어떤 어조로 어떤 어휘를 선택해야

아주머니가 덜 부끄러울까를 생각하다 보니,

결국 전철이 종점에 도착했고

아주머니도 나도 사람들에게 밀려 전철에서 내렸다.


해결되지 못한 내 오지랖은 전철에 남아 있었던 걸까.

마마토모(아이 친구의 엄마)들을 만나서도

아주머니의 만개(滿開)한 바지 앞섶이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당신에게 던진 위의 질문을 엄마들에게도 던져 보았다.


엄마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言わない(말 안 해)"였다.

그중 한 엄마는 일부러 일어나서 말해 주지는 않고,

내릴 때 살짝 귓가에 대고 이야기해 줄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에 다른 엄마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それがいいね(그게 좋겠네)"한다.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주위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아서

아주머니가 무안하지 않아도 되고,

당황하는 아주머니를 봐야 하는

나의 민망함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나이를 먹은 탓일까.

예전에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스스럼없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게 맞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 '당당한 친절'에

어쩌면 상대방은 당황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든다.

언젠가 딸이 자랑스럽게 한 말이 떠오른다.

전철에 옷 가격표를 달고 나온 아주머니가 계셔서

필통에서 가위를 꺼내 가격표를 잘라 드렸다고.

아주머니가 고마워하셔서

자기도 용기를 내길 잘했다고 말했다.

그때는 속으로 '오구오구, 우리 딸 장하네'

하면서 엉덩이를 팡팡 두드려 주었는데,

이제 와 슬금슬금 걱정이 피어오른다.

다시 한번 딸아이에게 물어볼까.

딸아,

넌 어떤 표정과 어조로 아주머니의 옷 가격표를 잘라 드렸니?



"그건 왜? 엄마나 잘해!"

라고 도끼눈으로 쏘아붙일 딸의 얼굴이 떠올라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