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지막 숭고한 열정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누구더라?
아들 친구 엄마 S한테 온 LINE에 답장을 하는데, 그녀의 프사에 올라 있는 멋있는 남자가 날 향해 지그시 웃고 있다.
분명 한국 배우라는 건 알겠는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다시 LINE을 보냈다.
"誰だっけ"(누구더라?)
"キャ~キム・ナムギルさんだよ!"(꺄~김남길 씨야!)
이어서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김남길 씨의 유튜브 링크도 보낸다.
스누피를 좋아하고 키우는 강아지 품종도 코기인 것이 자기와 똑같다며 분명히 '緣'이 있다고 호들갑을 떤다.
내가 누군지 묻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누......
그녀는 김남길 상(さん) 외에도 일본의 밴드 Mr.Children을 고등학교 때부터 40대 중반인 지금까지 사랑하고 응원하고 있는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내가 일본에 처음 왔을 때의 컬처 쇼크 중 하나가 중고등학생도 아닌 성인 여성들이 연예인에게 푹 빠져 자신의 시간과 돈과 열정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었다.
'먹고살 만한갑소......'
이것이 당시 솔직한 내 속마음이었다.
유학생 시절, 슬롯인들을 위한 대학내 강좌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었다.
온라인 게임인들은 퇴근을 하고 나서, 엄마들은 아이들 밥 챙겨주고 난 저녁 7시쯤에 모여 한국어 공부를 했다.
그때 한국의 내 주변 여자 어른들은
미혼의 경우 어떻게든 커리어를 쌓기 위해 자기계발에 열심이었고,
기혼 여성들은 자녀들의 교육에 혈안이 되어 있을 때였다.
이 바쁜 저녁 시간에 한가하게 영어도 아닌(?), 한국어를 자신의 교양을 위해 배우다니.
게다가 그중에는 아이돌의 '推し活'(おしかつ)의 일환으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돌이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해서 자기도 배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오시카츠'는 이젠 한국에서도 '최애'라는 어휘가 있을 만큼 보편화된 현상 같기도 한데, 그 '최애'를 응원하는 활동을 말한다.
연차를 내고 넉넉지 않은 월급을 털어 도쿄 외에도 지방에서 공연을 하면 쫓아다니며 응원을 한다고 하니 참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렇게 할 일이 없나......
이제야 고백하지만 그땐 내심 한심해했다.
'오시카츠'에 쓰는 그 시간과 돈과 열정이 아까웠다.
잘은 모르지만, 일본인들의 '오시카츠'의 특징은 길고 또한 조용한 것 같다.
그래서 아이돌의 인기 수명도 아주 기~일다.
내 눈엔 어디가 아이돌이란 말이냐 할 정도로 아저씨, 아주머니가 되어도 팬들에게는 연령을 초월한 영원한 아이돌인가 보다.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아이돌이 너한테 뭘 해 주는 것도 아니고 널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왜, 그렇게 오래 좋아할 수 있냐고.
그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수줍은 듯 조용히 말했다.
'推し'(최애)에게는 자신의 청춘이 담겨 있다고.
그래서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응원하고 싶다고 했다.
좋아하게 된 동기야 어떻든, 그 사람을 좋아해 온 시간 속에는 어느새 자기 인생도 함께 쌓여 있었던 것이다.
내 시간과 감정을 단순히 소비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과 공유할 수 있음을 기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스토커나 '사생'처럼 상대를 괴롭히면서 자신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강요하지도 않는다.
아...... 이거야말로 찐사랑 아닌가.
나를 알지도 못하고, 나에게 뭘 해주는 것도 아닌 사람을 오랫동안 좋아하고 응원한다.
난 그런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그 시간과 돈과 열정이 아깝다기보다, 그렇게 오래 누군가를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이 조금 부럽기까지 하다.
이참에 나도 손석구나 공유에게 내 중년의 마지막 숭고한 열정을 불살라 볼까?
당신 요즘 '먹고살 만한갑소......?'
그런갑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