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고
아들은 엄청난 편식가이다.
(마치 예술가, 건축가....처럼 거창하게 들린다)
애가 그 지경이 되도록 엄마가 뭘 했냐고 하시면 할 말이 없다.
난 그냥 요리도 엉망인데, 아이가 싫어하는 것을 먹을 수 있게 궁리를 해서 만들어 내길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 아닐 수 없다.(누구 욕심?)
물론 나도 시도는 해 봤다.
그래도 명색이 엄마인데 아들이 채소,과일과 담을 쌓고 사는 걸 어찌 편안히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올롤롤~~ 하면서 정신을 쏙 빼놓고 과일 한쪽을 입에 집어 놓으면 그냥 퉷! 하고 뱉는 게 아니라, 소주 대여섯 병 먹은 사람이 오바이트하는 것과 흡사하게 저 몸 안쪽 깊숙한 곳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거부의 소리와 자세로 과일을 반납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다시 과일과 채소를 아들 입에 넣을 용기나 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유식부터였을까?
딸은 하나에서 열까지 엄청 신경을 써서 신선한 식재료는 물론, 계량컵에 계량스푼까지 동원해 가며 지극 정성으로 만들어 먹였다. 그래서일까?
얘는 뭐든지, 아니 나는 상상도 못 하는 요리까지 과감하게 덥석덥석 입에 넣고 엄지 척!을 하는 만능 식성인이 되었다.
아들은 귀찮아서였는지, 해도 안 먹어서였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이유식 시기를 대충 보내고 밥을 먹였던 것 같다.
고기나 생선은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열심히 어르고 달래서 바나나와 사과는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양배추와 카레에 들어가는 감자, 잘게 다져 놓은 양파 정도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머리 좀 컸다고 놔두었더니 언제부터인가 과일은 아예 입에 대지도 않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장가가서 색시랑 둘이 해 먹는 요리는 맛있다고 와구와구 먹으려나?(제발 그랬으면)
생각해 보니 내가 아들의 편식이 불편했던 이유는, 어쩌면 건강상 이유보다는 남들은 다 먹는 걸 우리 아들만 못 먹는 혹은 안 먹는 게 불안했던 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이렇게나 맛있는 걸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었던 내 욕심이었을 수도 있겠고.
내 불안과 욕심까지 생각이 미치니, 나 또한 편식가(偏食家) 아들 못지않은 편인가(偏人家)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난다.(참, 웃음도 나겠다)
아들은 싫은 걸 싫다고 하는 솔직함이 있기라도 하지, 예전의 난 솔직할 용기도 없었다.
사실은 사람을 엄청나게 가리면서도 누군가를 싫어하면 안 되고 누구하고나 두루두루 잘 지내는 것이 내 인간적 성숙과 평판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 믿고 조금 거북한 사람에게도 티를 안 내고 맞추려고 노력했다.
누군가가 날 싫어하거나 멀리 하는 것 같으면 무척 불안했다.
그리고 누구나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는 욕심이 있었다.
그런데, 일본에 오고 나서는 조금 달라졌다.
여기에서는 내가 처음부터 평가나 평판의 기준에서 살짝 비켜나 있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이방인이라서 그런가.
아웃사이더라서 그런가.
이상하게도 그게 너무나 홀가분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났다.
싫은 사람에게 거리를 두는 것에 죄바카라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게 너무나 편하다.
누군가가 날 불편해하더라도 예전처럼 불안하지 않다.
“싫으면 저렇게 싫고 좋으면 저렇게 좋은가.
어쩜 저러지?“
내가 아들에게 하던 이 말은
실은......
내가 여기서 아주 가끔씩 듣는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