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adbottom 44번지
두 번째 수요일에는 세 명이 왔다. 그중 한 명이 전직 교사였던 J였다. J는 늘 창가에 앉았다.
말이 많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들었다. 누군가 이야기를 하다 말을 멈추면, 다음 문장이 나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주는 사람이었다. 가끔 내가 "차 한 잔?" 하고 물으면 "한 모금이면 충분"이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컵을 두 번 채워 마셨다. 영국 사람의 '한 모금'은 한국 사람의 '밥 한 숟갈만'과 같은 단위였다. 나는 그 말과 행동 사이의 작은 거짓말을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몇 해가 지나는 동안 창가의 빛은 계절마다 다르게 그 얼굴을 비췄다. 겨울에는 옅게, 여름에는 길게. 나는 가끔 그 빛의 각도만으로도 계절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하곤 했다. 해를 보기 힘든 이 나라에서는 그것도 꽤 귀한 달력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J는 딸과 가까이 살기 위해 Sheffield로 이사한다고 알려왔다. 마지막 수요일, 여느 때보다 오래 창가에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나는 그 뒷모습을 문 앞까지 배웅했다. 몇 달 뒤 편지가 도착했다. 그곳에서 작은 모임을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44번지에서 배웠어요."
나는 가르친 기억이 없었다. 차를 따르고 비스킷 접시를 앞으로 밀어준 것밖에. 그걸 수업이라 부르기엔 좀 민망했다. 그런데 J는 그저 창가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그것을 배워 갔고, 이 창가에서 받은 온기를 다른 도시의 다른 창가로 옮겨 놓았다.
J가 떠난 뒤 한동안 창가 자리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다들 무슨 예약석이라도 되는 듯 그 앞을 비켜 지나갔다.
그 자리에 처음 앉은 사람이 앨리슨이었다.
앨리슨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늘 가장 먼저 도착해 코트를 벗고, 말없이 그림처럼 앉아 있다가 자리를 뜨곤 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그날 밤, 앨리슨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며칠 뒤, 단체방에 이런 말이 올라왔다. "당신은 앨리슨에게 생명줄이 되어주었어요. 그때가 그녀 삶의 마지막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지만, 44번지의 모두가 그랬죠."
또 다른 한 분이 덧붙였다. "믿기지가 않아요. 지난 수요일에도 그녀가 얼마나 좋아 보였는지 얘기했었는데. 그녀가 우리 마을 극단 연극에서 정말 스타였다는 건 기억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분이 짧게 남겼다. "앨리슨의 인생 이야기는 하루 종일 들을 수 있을 만큼 좋았죠. 부디 편히 잠드시길."
나는 그 대화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내가 이 방을 열며 마음속으로 붙였던 이름, ‘생명줄‘이 몇 년이 지나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그대로 돌아와 있었다.
얼마 뒤엔 앨리슨의 두 딸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당신과 44번지는 제 어머니의 마지막 시간에 생명줄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문장 앞에서 나는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 뒤, 할머니들이 모여 앨리슨이 남긴 그림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논했다. 나는 그중 몇 점을 사서 이 방에 걸어두자고 했다. 그림값은 내가 냈지만, 결정은 다 같이 내린 것이었다.
그 주 수요일, 그림 두 점이 벽에 걸렸다. 그 옆에는 누군가 초록색 카드에 손 글씨로 짧은 글을 적어 붙였다.
"이 그림들은 앨리슨 대븐포트의 작품입니다. 앨리슨은 매주 수요일 아침 이곳에서 모이는 The Drop In 그룹의 소중한 일원이었습니다. 이 그림들은 저희 모임을 이끄는 류정 님이 기증해 주셨습니다. 앨리슨의 재능과 우정을 기억하는 뜻에서 이곳에 걸어두게 되어 기쁩니다."
내 이름이 그 카드에 적혀 있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조금 당황했다. 그동안 나는 이 방에서 늘 주전자를 채우고 문을 열어주는, 뒤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할머니들이 나를 그 카드 위에 함께 세워준 것이다.
창가 자리는 그렇게 두 사람을 거쳐갔다. 한 사람은 그 자리의 온기를 다른 도시로 옮겨갔고, 다음 사람은 그 자리에서 마지막 수요일을 보냈다.
그리고 시계 아래, 또 하나의 자리가 있었다. 그 이야기만은 이 한 편의 글로 다 담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