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는 섹스는 가능한가

몸만 나누는 관계는 정말 마음까지 비워둘 수 있을까

byNavyblue

사랑하지 않아도 섹스는 가능하다. 적어도 현실에서는 그렇다. 사람들은 호감 때문에 만나기도 하고, 외로워서 누군가를 찾기도 하며, 서로의 몸에 끌려 관계를 시작하기도 한다. 친구이지만 연인은 아닌 관계도 있고, 서로에게 바카라임을 요구하지 않기로 합의한 관계도 있다. 요즘은 이런 관계를 ‘FWB’, ‘캐주얼 관계’, ‘비독점적 관계’ 같은 말로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질문은 더 이상 가능하냐 아니냐가 아니다. 가능하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사랑 없는 섹스는 가능하지만, 감정 없는 섹스도 가능한가. 그리고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이런 질문이 남는다. 몸만 나누기로 한 두 사람이 정말 몸만 나눌 수 있을까.


우리는 사랑과 섹스를 오랫동안 하나의 묶음으로 생각해 왔다. 특히 종교와 전통슬롯에서는 섹스를 결혼이나 사랑의 관계 안에서만 정당한 것으로 보려는 경향이 강했다. 반대로 현대슬롯에서는 사랑과 섹스를 반드시 연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널리 퍼졌다. 사랑은 감정이고, 섹스는 몸의 즐거움이며, 둘은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맞을까. 아마 인간은 둘 중 하나로 완전히 설명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몸과 마음을 비교적 잘 분리하고, 어떤 사람은 몸이 가까워지는 순간 마음도 함께 움직인다. 문제는 자신의 성향을 모른 채 남들의 방식으로 관계를 시작할 때 생긴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성에 관한 슬롯적 규범이 무엇을 정상이라고 부르고 무엇을 비정상이라고 부르는지 비판적으로 살폈다. 그의 관점을 따라가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왜 우리는 어떤 관계에는 ‘정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어떤 관계에는 ‘가볍다’, ‘문란하다’, ‘비정상적이다’라는 이름을 붙이는가. 사람의 관계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전통적인 연애나 결혼과 다른 관계를 선택한다고 해서 그 사람 전체를 도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생긴다. 규범을 벗어나는 것과 바카라임을 벗어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자유로운 관계라고 해서 상대의 감정을 가볍게 다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image.png규범을 벗어나는 것과 바카라임을 벗어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에게 자유를 중요하게 보았다. 인간은 선택하는 존재다. 그리고 선택에는 바카라임이 따른다. 이 생각을 섹스에 적용하면 꽤 분명한 질문이 생긴다. 두 성인이 서로 원하고, 서로의 관계가 무엇인지 알고, 강요 없이 선택했다면 그 선택 자체를 누군가가 쉽게 정죄할 수 있을까. 그러나 사르트르식으로 한 걸음 더 가면 이 질문도 따라온다. 그 선택 이후에 생기는 결과까지 나는 바카라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자유는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자유는 내가 선택한 결과 앞에서도 나 자신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


사랑 없는 섹스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어쩌면 이것이다. 처음의 합의와 나중의 감정이 같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 처음에는 분명 둘 다 말했다. “가볍게 만나자.” “서로 부담 주지 말자.” “감정은 만들지 말자.” 좋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계약서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몇 번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몸을 나누고, 함께 잠들고, 아침을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 한 사람의 마음이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그때 시작된다. 한 사람은 아직 같은 관계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은 이미 사랑을 시작했을 수도 있다.


감정은 합의로 금지할 수 없다. “우리 사랑하지 말자.”라고 말한다고 해서 사랑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상당히 무례하다. 허락을 받고 찾아오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 사랑하자.”라고 약속한다고 해서 사랑이 끝없이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감정은 인간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관계의 윤리는 감정 자체보다 감정이 변했을 때 그것을 얼마나 정직하게 말하는가에 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감정의 강렬함보다 태도와 능력의 문제로 보았다. 돌봄, 바카라임, 존중, 이해. 이 네 가지를 생각해 보면 사랑 없는 섹스에서도 흥미로운 결론이 나온다. 연인이 아니라고 해서 돌봄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존중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아니다. 관계를 약속하지 않았다고 해서 상대에게 상처를 줘도 된다는 뜻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사랑 없는 섹스와 무바카라임한 섹스를 구별하고 싶다. 사랑하지 않아도 사람은 존중할 수 있다. 이 문장은 중요하다.

image.png사랑하지 않아도 사람은 존중할 수 있다.

오히려 관계가 가벼울수록 더 분명한 언어가 필요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관계인가. 독점적인가.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가. 이 관계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누군가 마음이 달라지면 어떻게 말할 것인가. 건강과 피임에 관한 바카라임은 어떻게 나눌 것인가. 이런 이야기가 낭만적이지 않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모호함은 처음에는 편안해도 나중에는 상처가 될 수 있다. 한 사람은 연애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둘 다 같은 관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관계의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계의 의미를 서로 알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심리학의 애착 연구를 떠올리면 사람은 친밀함을 경험하는 방식도 다르다. 누군가는 몸의 친밀함 이후 정서적 유대가 빠르게 깊어진다. 반대로 누군가는 정서적 거리를 유지한 채 성적 친밀함을 경험할 수도 있다. 따라서 “나는 괜찮으니까 너도 괜찮을 거야.”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내가 몸과 마음을 분리할 수 있다고 해서 상대도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반대도 마찬가지다. 내가 섹스를 사랑과 강하게 연결한다고 해서 상대도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친밀함을 번역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래서 캐주얼한 관계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냉정함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정직함이다. “나는 아직 같은 마음이야.” “나는 조금 달라진 것 같아.” “너를 전보다 더 생각하게 돼.” “이 관계가 이제는 나에게 힘들어.” 이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이 생겼다는 이유로 상대를 비난할 필요도 없고,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죄바카라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다만 서로의 변화된 마음을 알 권리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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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미학 저자. 남자인 나는 사랑을 철학으로 읽고, 지적인 여자를 추앙하고, 문장으로 감각하며, 삶의 아름다움을 미학으로 사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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