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는 치유가 될 수 있는가

상처 입은 몸이 다시 누군가를 믿기까지

byNavyblue

사람은 마음으로만 상처받지 않는다. 몸도 상처받는다. 원하지 않았던 손길. 거절할 수 없었던 관계.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에게 받은 배신. 외모에 대한 조롱. 비교당했던 기억. 질병과 수술이 남긴 흔적. 나이가 들며 달라진 몸에 대한 낯섦. 어떤 사람에게는 거울을 보는 일조차 힘든 시간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다시 몸을 보여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옷을 벗는 일이 아니라 방어를 조금 내려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질문해보고 싶다. 섹스는 사람을 치유할 수 있을까.


먼저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섹스 자체가 치료는 아니다. 좋은 연인을 만나면 과거의 상처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심각한 상처와 트라우마가 있다면 전문적인 도움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오히려 준비되지 않은 친밀함은 과거의 기억을 다시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좋은 섹스를 하면 상처가 낫는다.” 고 말한다면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 다른 질문이라면 대답은 달라질 수 있다. 존중받는 친밀함의 경험은 상처 입은 사람이 자기 몸과 관계를 다시 배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상처받은 몸이 가장 먼저 잃는 것 중 하나는 안전감이다. 몸은 배운다. 가까움은 위험하다. 믿으면 다친다. 싫다고 해도 소용없다. 내 몸은 아름답지 않다. 나는 욕망받을 가치가 없다. 혹은 반대로 누군가에게 욕망받아야만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다. 이런 문장들이 몸 안에 깊게 남을 수 있다. 그러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과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머리는 말한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야.” 그런데 몸은 말한다. “그래도 조심해야 해.”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컷은 인간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상대 앞에서 계속 자신을 방어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자기 모습 그대로 있어도 관계가 무너지지 않는 경험. 나는 이것이 친밀한 관계에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연인은 상대의 상처를 ‘고쳐주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에 가깝다. “여기에서는 네가 너여도 괜찮아.” 이 말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


상처 입은 사람에게 가장 치유적인 경험은 때때로 과거와 다른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예전에는 싫다고 했는데도 무시당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잠깐.”이라는 말에 상대가 정말 멈춘다. 예전에는 몸을 보여주면 평가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대가 흉터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그 사람 전체를 바라본다. 예전에는 거절하면 사랑이 철회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늘은 싫어.”라고 말해도 다음 날 여전히 다정하다. 작은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놀라운 경험이 될 수 있다. 몸이 새로운 문장을 배우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싫다고 말해도 버려지지 않는구나.” “멈춰달라고 말하면 정말 멈추는구나.” “내 몸이 완벽하지 않아도 누군가 나를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구나.” “나는 거절할 수도 있고 원할 수도 있구나.” 과거의 몸이 배웠던 언어와 전혀 다른 언어다. 치유는 어쩌면 상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오래 쌓아 과거의 경험이 유일한 진실이 아니게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몸을 세계와 만나는 방식 자체로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몸의 상처는 피부에만 남지 않는다. 세상을 만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누군가가 가까이 오면 긴장하고, 손길을 의심하고, 사랑을 받아도 쉽게 믿지 못한다. 반대로 안전한 관계 안에서 몸은 세계를 다시 경험할 수도 있다. 손길이 언제나 침범은 아니라는 것. 가까움이 언제나 위험은 아니라는 것. 욕망받는다고 해서 반드시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이것은 머리로 배우는 명제가 아니라 몸으로 다시 경험해야 하는 진실일 수 있다.

506ebace1b687fc963e951406dee96c3.gif몸의 상처는 피부에만 남지 않는다.

그래서 섹스가 치유적일 수 있다면 그 이유는 성적 쾌락 자체에만 있지 않을 것이다. 상대 앞에서 내가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는 경험. 내 몸이 존중받는다는 경험. 내가 속도를 정할 수 있다는 경험. 그리고 원하지 않는 순간 언제든 멈출 수 있다는 경험. 이런 것이 쌓일 때 친밀함은 과거와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타인을 내가 소유할 수 없는 존재로 바라본다. 나는 이 관점이 상처를 가진 사람과의 친밀함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가 있다고 해서 그 상처를 열어볼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나를 사랑하면 이야기해 줘.” “우리 사이인데 왜 숨겨?” 이런 말은 친밀함처럼 들리지만 때로는 또 다른 침범이 될 수 있다. 사랑은 상처의 문을 억지로 열지 않는다. 문 앞에서 기다린다. 상대가 스스로 열 때까지.


누군가의 과거를 알게 되었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의 치료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연인은 치료사가 아니다. 이것도 중요하다. “내 사랑으로 이 사람을 고쳐주겠다.” 이 생각은 처음에는 아름답게 들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상대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상처 입은 사람은 사랑받기 위해 빨리 회복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좋은 사랑은 말한다. “내가 너를 고쳐주겠다”가 아니라 “네가 회복되어 가는 동안에도 나는 너를 한 사람으로 존중하겠다.” 둘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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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미학 저자. 남자인 나는 사랑을 철학으로 읽고, 지적인 여자를 추앙하고, 문장으로 감각하며, 삶의 아름다움을 미학으로 사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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