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심연의 독백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 K.491
by조윤미Jun 25. 2026brunch_membership's
"우리는 결코 이런 곡을 쓸 수 없을 것이다. “
- 루트비히 반 베토벤
2026년 6월 13일 저녁.
롯데콘서트홀로 향하는 길, 그날 가장 내 마음을 들뜨게 했던 작품은 단연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 K.491이었다.
모차르트가 남긴 스물일곱 개의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단조로 쓰인 작품은 단 두 곡뿐이다.
그 가운데 하나인 K.491은 그의 기악 작품 전체를 통틀어 보아도 가장 어둡고 격정적이며, 동시에 가장 치밀한 구조를 지닌 걸작으로 꼽힌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단지 c단조라는 조성 때문만은 아니다.
모차르트의 협주곡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관악 편성을 갖추고 있으며,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동시에 편성된 유일한 협주곡이기도 하다.
여기서 목관 악기들은 단순한 반주에 머물지 않는다. 피아노와 팽팽한 긴장 속에서 서로 질문하고 응답하며, 때로는 밀어내고 끌어안으면서 하나의 거대한 드라마를 만들어 간다.
무엇보다 내가 이 작품을 기다렸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K.491은 피아니스트가 홀로 빛나는 작품이 아니다.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으면서도, 다른 성부들과 끊임없이 호흡하고 대화해야 하는 음악이다.
그리고 나는 불과 석 달 전, 보스턴에서 연주된 슈만 피아노 협주곡을 통해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오케스트라와 어떻게 함께 숨 쉬는지를 보았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모차르트가 남긴 가장 깊은 심연 앞에서, 그는 과연 어떤 소리를 들려줄까.
모차르트가 남긴 가장 깊은 심연 앞에서, 그는 과연 어떤 소리를 들려줄까.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자, 내가 마주한 것은 비극보다도 더 깊은 무엇이었다.
그것은 절망도, 격정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도 없는 밤, 자기 자신에게만 조용히 말을 건네는 한 사람의 독백에 가까웠다.
그날의 K.491은, 그렇게 아주 낮은 목소리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마침내 피아노가 첫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세상을 향한 외침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도 없는 밤, 자기 자신에게만 조용히 말을 건네는 독백에 가까웠다.
그날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들려준 첫 솔로는 나에게 굉장히 슬프고 비통했다.
그러나 그 슬픔은 격정적으로 쏟아져 나오지 않았다.
소리는 마치 안쪽으로 스며들 듯, 조용히 사라져 갔다.
첫 꾸밈음이 지나간 뒤 이어지는 하행 음형에서 그의 손끝은 놀라울 만큼 섬세했다.
건반을 깊숙이 눌러 소리를 또렷하게 꺼내기보다, 마치 건반의 표면 위를 스치듯 손가락을 굴리며 음들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음과 음 사이가 무너지지 않으면서도, 하나의 긴 호흡처럼 흘러내렸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다음이었다.
하강을 멈춘 음악은 밖으로 뻗어나가지 않고, 다시 자기 안으로 돌아왔다.
같은 음형이 반복되는데도 두 번째 목소리는 첫 번째보다 더욱 작고, 더욱 낮았다.
마치 누군가가 처음에는 가까스로 말을 꺼내다가, 이내 목소리를 낮추며 자기 자신에게만 조용히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이 음악이 거대한 비극의 선언이 아니라, 한 사람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독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모든 소리 위에는 촉촉한 습기가 감돌고 있었다.
깊게 밟은 페달이 만들어내는 짙은 잔향이 아니라, 아주 절제된 하프 페달이 남겨 놓은 끝소리였다.
그래서 c단조의 어두운 화성은 흐려지지 않았고, 음들은 건조하게 끊어지지도 않았다.
소리는 공기 속에 가만히 머물다가, 천천히 사라져 갔다.
마치 울음을 참는 사람의 마지막 눈물처럼.
생각해 보면 K.491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서 피아노는 화려한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목소리를 낮춘 채, 조용히 내면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리고 어쩌면, 그 낮은 목소리야말로 K.491이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가장 깊은 슬픔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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