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카네기홀을 기다리며 Part 1. 다시 펼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또 시작이네. “ 모차르트 소나타를 칠 때마다 나는 늘 그렇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뭐가 그렇게 장난꾸러기 같은지. 깊이 눌렀을 때 건반 아래에서 피어나는 소리의 맛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나이지만, 이상하게도 모차르트를 대하는 순간만큼은 손끝이 자꾸 가벼워진다. 한 음, 한 음에 표정이 생기고, 악보 위를 뛰노는 음표들은 마치 장난기 많은 아이처럼 살아 움직인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10월 카네기홀에서 열릴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시리즈를 앞두고, 유튜브 구독자분들께서 해설 음악회를 열어 달라고 요청해 주셨다. 2주 후인 7월 18일 토요일, 조크 렉처 살롱 음악회. 10월 카네기홀 공연을 기다리는 구독자분들과 함께 모차르트를 조금 더 깊이 듣고 싶은 마음, 그리고 나 역시 조금이라도 더 잘 듣고 싶은 마음으로 다시 악보를 펼쳤다. 처음에는 그저 음악회를 준비하기 위한 공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악보를 들여다볼수록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나는 모차르트를 밝고 해맑은 작곡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웃고 있는 얼굴 뒤에도 쉽게 드러내지 않는 고독이 있었고, 천진한 선율 속에도 삶을 견뎌낸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깊은 그림자가 숨어 있었다. 그 순간부터 연습은 조금씩 달라졌다. 설레는 마음으로 펼쳤던 악보는 어느새 한 음, 한 음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연구의 대상이 되었고, 나는 또다시 같은 실수를 하고 말았다. 모차르트를 분석하려다가, 어느새 모차르트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 피아노 앞에 앉아 있으면 가끔 피식 웃음이 난다. 모차르트를 분석하려다가, 어느새 모차르트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넘어갔네." 분석하려고 펼친 악보가 결국 또 한 사람을 만나게 만들었으니까.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나는 피아니스트다. 작곡가가 남긴 음표를 나만의 감각으로 걸러, 다시 관객의 귀에 전하는 사람. 그래서 내게 더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가가 아니다. 무엇을 들어야 하는가. 그 질문이 오늘도 나를 다시 학생으로 만들고 있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번 다장조 K.279> '왜 이 한 음은 이렇게 웃고 있을까.‘ 그 질문 하나가 결국 한 페이지를 몇 시간이나 붙잡아 두었다. 악보를 펼치기 전까지는 그저 첫 번째 소나타라고만 생각했다. 젊은 모차르트의 밝고 경쾌한 출발. 누구나 그렇게 설명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피아노 앞에 앉아 첫 화음을 누르는 순간, 내가 만난 것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열아홉 살. 답답했던 현실을 벗어나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과 마주하려 했던 젊은 예술가. 잘츠부르크를 떠나 독립된 음악가로 살아가고 싶었던 청년 모차르트의 첫 번째 도전장 이 바로 이 소나타 안에 숨 쉬고 있었다. 첫마디를 여는 다장조의 으뜸화음은 놀라울 만큼 당당했다. 마치 세상을 향해 문을 활짝 열며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나의 음악이다. “ 그 당당함은 거칠지 않았다. 오히려 웃고 있었다. 상행하는 음형은 앞으로 뛰어가고 싶은 청춘의 발걸음 같았고, 양손이 서로 주고받는 짧은 대화에서는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장난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 순간 문득 오래 전의 내가 떠올랐다. 스무 살. 대학교 1학년이 되어 처음 음악대학 교정을 걸어가던 나. 모든 것이 새로웠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시간이었다. 아직 부족한 것도 많았지만 이상하게 두렵지 않았다. 세상은 넓었고, 음악은 더 넓어 보였다. 피아노 앞에 앉으면 마치 나도 누군가에게 작은 도전장을 내미는 기분이었다. '나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서툴렀고, 무모했으며, 그래서 더 아름다웠던 시절이다. 아마 그때의 내 손끝에도 지금 K.279에서 느껴지는 그 당당한 웃음이 조금은 담겨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악보를 따라갈수록 같은 주제가 반복되는 것 같지만 조금씩 다른 표정을 짓고, 갑자기 여려졌다가 다시 환하게 웃는 모차르트를 만났다. forte와 piano가 순식간에 교차하는 몇 마디 안에서 한 사람의 표정이 몇 번이나 바뀌는 것을 보는 듯했다. 처음에는 '고전주의의 균형미' 라고만 생각했던 음악이 사실은 살아있는 한 청년의 이야기 였다. 왼손은 단순한 반주가 아니었고, 오른손도 혼자 노래하지 않았다. 서로 질문하고, 웃고, 장난을 치고, 다시 손을 맞잡으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그래서 이 작품은 생각보다 훨씬 입체적이 다. 겉으로는 환하게 웃고 있지만, 그 웃음은 아무 걱정 없는 사람의 웃음이 아니었다. 자유를 꿈꾸는 청년의 웃음. 불안도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보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사람의 웃음. 악보를 덮으며 문득 깨달았다. 내가 좋아했던 것은 모차르트의 밝음이 아니었다.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 용기 였다. 어쩌면 스무 살의 나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이미 모차르트를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다시 그 악보를 펼친 나는 그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지나왔지만, 이상하게도 첫 화음을 누르는 순간만큼은 다시 스무 살이 된다. 10월 카네기홀에서 내가 듣게 될 것은 화려한 기교가 아닐 것이다. 열아홉 살 모차르트가 세상을 향해 내밀었던 첫인사. 그리고 그 소리를 들으며, 오래전 스무 살의 나도 다시 만나게 될 것 같다. 10월부터 시작될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모차르트 피아노 연주 시리즈. 열아홉 살 모차르트와 스무 살의 내가 카네기홀에서 다시 만난다. ? 〈 조윤미 피아니스트의 귀 〉 ( 멤버십 전용 프리미엄 ) [연습실에서 발견한 한 가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279를 다시 펼치며 가장 먼저 들린 것은 밝은 다장조가 아니었습니다. 열아홉 살 모차르트의 용기였습니다. 첫 화음은 당당하게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당당함은 무겁지 않습니다. 마치 세상을 향해 웃으며 첫인사를 건네는 청년처럼, 한 음 한 음이 앞으로 걸어갑니다. 연습을 계속할수록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같은 프레이즈를 반복해도 매번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은 장난스럽게 웃고, 어느 날은 조심스럽게 말을 걸고, 또 어느 날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 뒤에 작은 외로움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모차르트를 연주한다는 것은 음표를 치는 일이 아니라, 표정을 읽는 일이라는 것을. '이 음은 왜 이렇게 웃고 있을까.' '왜 같은 다장조인데도 오늘은 조금 다르게 들릴까.‘ 그 질문들이 연습 시간을 조금씩 길게 만들었습니다. 아마 카네기홀에서도 제가 가장 듣고 싶은 것은 빠른 패시지가 아닐 것입니다. 한 음이 미소 짓는 이유. 그리고 그 미소가 품고 있는, 아직 말하지 않은 이야기일 것입니다. ? 〈프라이빗 음악 살롱〉 여러분은 모차르트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어떤 표정이 생각나시나요? 밝고 해맑은 미소일까요? 아니면 그 웃음 뒤에 숨어 있는 조금은 외로운 얼굴일까요? 이번 K.279를 다시 공부하면서 저는 오래전 스무 살의 저를 함께 만났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시절. 피아노 앞에 앉는 것만으로도 설레던 시간. 어쩌면 그때 제가 좋아했던 것은 모차르트의 음악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는 한 청년의 용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음악이 있으신가요?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났는데, 그때의 나까지 함께 떠오르게 만드는 음악. 있다면 함께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