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서 만난 야생화

몽골의 초원

by복기령 I can do it

열트산으로 오르는 길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몽골의 초원만 생각했던 내 앞에 뜻밖의 풍경이 나타났다. 발밑으로 작은 야생화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머, 여기 꽃 좀 봐.”


누군가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에델바이스가 보였다. 조금 더 걸어가니 패랭이꽃이 피어 있었고 물매화도 눈에 들어왔다. 이름을 아는 꽃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이 더 많았다. 하얀 꽃, 노란 꽃, 보랏빛 꽃들이 초록빛 풀 사이에서 저마다 작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누가 가꾸어준 것도 아닌데 어쩌면 이렇게 예쁠까.


거센 바람이 불고 추운 겨울을 견뎌야 하는 몽골의 땅에서 작은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화려한 꽃밭처럼 한꺼번에 시선을 빼앗겼다. 한 송이 한 송이 들여다볼수록 발걸음이 멈추었다. 함께 오른 일행들과 열트산을 오르는 일이 자꾸만 느려졌다.

몇 걸음 걷다가 꽃을 발견하면 멈추고, 다시 몇 걸음 가다가 또 다른 꽃 앞에 쪼그려 앉았다.


“여기서 사진 찍어요.”


우리는 야생화를 배경으로 나란히 섰다. 누군가는 꽃 가까이 얼굴을 가져가 향기를 맡았다. 나도 따라 몸을 낮추어 보았다. 코끝에 전해지는 풀과 꽃의 향기. 몽골의 바람까지 더해져 기분이 좋아져 미소가 절로 났다.


카메라를 들고 꽃을 담아보았다. 넓은 풍경을 담을 때와는 또 다른 마음이었다. 작은 꽃 한 송이를 바라보기 위해 몸을 낮추고 렌즈를 가까이 가져갔다.

사진을 찍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세상은 자세히 바라보는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구나.


그저 산을 오르는 데만 마음을 두었다면 이 작은 꽃들을 얼마나 많이 지나쳤을까. 목적지만 바라보았다면 열트산은 그저 힘들게 올라야 하는 산으로 기억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자꾸 멈췄다.

꽃을 보고, 이름을 궁금해하고, 사진을 찍고, 향기를 맡고, 서로 웃었다.

그 덕분에 열트산으로 향하는 길은 목적지를 향해 걷는 길이 아니라 몽골의 자연을 하나씩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다.


에델바이스와 패랭이꽃, 물매화 그리고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수많은 야생화.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햇빛과 바람을 받아 피어 있는 그 모습이 참 좋았다.

크고 화려하지 않아도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빛깔로 피어있는 야생화.

몽골의 야생화는 우리에게 자신만의 빛깔로 살아가라 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열트산을 오르며 몇 번이나 생각했다.

‘몽골에 또 오길 참 잘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몽골에서 또 무엇을 만나게 될지 알지 못했다. 첫번째 왔을때의 광활한 초원과 푸른 하늘을 기대했지만, 정작 내 마음 깊숙이 들어온 것은 발밑에 피어 있던 작은 야생화였다.


여행은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보고 싶었던 것을 만나러 떠났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


열트산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오르던 길에서 만난 작은 꽃들에게 반해 더이상 올라갈 수 없었다.

몽골의 바람에 살랑거리던 하얀색, 노란색, 보랏빛 야생화들이 내 마음속 깊숙히 다가왔다.


그 꽃들이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걸어가라고.

가끔은 멈추어 발밑도 바라보라고.

당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이

바로 그곳에서 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꾸 목적지만 바라본다.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마음에 길가에 피어난 작은 꽃 한 송이를 지나치기도 한다.

하지만 삶의 행복은 정상에만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잠시 걸음을 늦추어 보자. 그리고 내 곁에 피어 있는 작은 것들을 바라보자. 평범해서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하루, 곁을 지켜주는 사람,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어쩌면 우리의 야생화인지도 모른다.


몽골 열트산을 오르던 날, 나는 발밑의 작은 야생화들에게서 배웠다.

삶은 얼마나 빨리 도착했느냐보다, 가는 길에 무엇을 느끼고 발견했느냐가 더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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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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