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엄마가 엄마를 돌보러 왔다

《딸이 엄마가 된 여름》 6

by이민자의 부엌

영국에 머무는 동안 나는 딸에게 매일 다른 국을 끓여주었다. 하루는 미역국을 끓이고 다음 날은 맑은 황태국을 끓였다. 캐나다에서 가져간 김장김치는 푹 익은 묵은김치였는데, 딸이 갓 담근 김치를 좋아한다는 생각이 나서 서양 마트에서 배추를 사다가 겉절이도 담갔다. 따뜻한 국에 밥을 말아 겉절이를 곁들여 맛있게 먹는 딸을 보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주 오래전 어린 딸에게 밥을 먹이던 때가 떠올랐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라 두 아이를 낳은 어른이고 한 가정의 엄마였지만, 밥 한 그릇을 잘 먹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놓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나는 딸에게 이번에는 꼭 산후조리를 해주러 가겠다고 약속했다. 첫째를 낳았을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한 일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었기에 이번만큼은 따뜻한 밥이라도 내 손으로 해 먹이고 싶었다. 그렇게 산후조리를 해주겠다는 생각으로 영국에 왔지만, 막상 딸의 집에서 생활해보니 그 말 안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이 들어 있었다. 밥을 차려 잘 먹는지 보고,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보이면 얼른 들어가 자라고 하고, 모유를 먹인 아기를 받아 트림을 시키고 재우고, 딸이 잠든 동안 밀린 집안일을 해놓는 일들이 하루하루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둘째 손녀가 보고 싶어 먼 길을 온 것도 맞고 첫째 손주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도 맞았지만, 그보다 먼저 내가 돌보고 싶은 사람은 출산을 하고 지쳐 있는 내 딸이었다. 첫째를 낳았을 때 해주지 못했던 따뜻한 밥 한 끼를 이제야 차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 이번에는 곁에 있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마음도 들었다.


나는 손녀를 보러 온 것만은 아니었다. 엄마가 된 내 딸을 돌보러 왔다.


딸에게 국을 끓여주던 어느 날, 문득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생각났다. 36년 전 내가 첫아이를 낳았을 때는 엄마가 내 산후조리를 해주셨다. 그때 엄마는 날마다 미역국을 끓여주셨는데, 계속 같은 국을 먹다 보니 어느 날 내가 다른 국도 좀 먹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미역국을 많이 먹어야 모유가 잘 나온다며 또 미역국을 끓이셨지만, 그래도 딸이 질릴까 싶으셨는지 하루는 소고기를 넣고 다음에는 조개를 넣는 식으로 재료를 바꿔가며 끓여주셨다.


그때의 나는 엄마가 왜 그렇게 미역국을 고집하는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산후조리를 받는 딸이었고, 엄마가 해주는 밥을 당연한 듯 먹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영국의 딸 집 부엌에서 이번에는 내가 딸을 위해 국을 끓이고 있었다. 오늘은 무엇을 해주면 잘 먹을까 생각하고, 딸이 한 그릇을 다 비우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내 모습을 보면서 오래전 엄마가 왜 그랬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나도 아이를 낳았을 때 엄마의 딸이었다.


캐나다로 이민 온 뒤에도 엄마의 걱정은 끝나지 않았다. 멀리 떨어져 살던 딸에게 엄마는 자주 전화를 걸어 밥은 먹었는지, 잘 지내는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를 물으셨다. 그때는 늘 듣던 말이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다 큰 딸에게 왜 그렇게 밥을 먹었느냐고 묻는지 귀찮게 느꼈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내가 영국까지 와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딸이 밥은 제대로 먹었는지, 잠은 조금이라도 잤는지 자꾸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엄마의 전화 속에 들어 있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한국에 있는 엄마는 캐나다에서 사는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직접 밥을 차려줄 수도 없고 아프다고 해도 당장 달려올 수도 없으니, 전화기 너머로 밥은 먹었느냐고 묻는 것이 엄마가 할 수 있는 돌봄이었을지도 모른다. 살아계실 때 그 마음을 지금처럼 알았더라면 같은 질문에도 조금 더 다정하게 대답했을 텐데 싶어 죄송한 마음과 함께 그리움이 밀려왔다.


한국에 있던 엄마의 딸이었던 나는 캐나다에서 아이들을 키웠고, 이제 그중 큰딸은 영국에서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왔지만 딸에게 밥을 먹이고 싶어 하는 엄마의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영국의 작은 부엌에서 딸의 국을 끓이고 있는 내 모습 뒤로 오래전 나에게 미역국을 끓여주시던 엄마의 모습이 겹쳐졌다.


어느 날 밤에는 둘째가 좀처럼 잠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도 하루 종일 집안일과 아이들을 돌보느라 피곤했는지 깊이 잠이 들어 아기 울음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그러다 휴대전화에 문자가 들어오는 소리에 잠이 깨 화면을 보니 딸에게 온 문자였다.


“엄마, 아기가 안 자서 나는 잠을 못 잤어요. 엄마가 내려와서 아기 좀 봐줘요.”


정신이 번쩍 들어 얼른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내가 아기를 볼 테니 너는 이제 자라고 하고 딸에게서 아기를 받아 안았다. 아기 울음소리도 듣지 못하고 잠들어 있었다는 것이 미안해 다음 날까지도 마음 한쪽이 편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딸이 힘든 순간에 나를 찾았다는 사실이 오래 남았다. 출산 전까지 자기 일을 하고 자기 가정을 꾸리며 잘 살아가던 성인 딸이었지만, 몸도 마음도 지친 그 밤에는 다시 엄마를 찾는 딸이었다.


내가 딸 앞에 놓인 힘든 시간을 없애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따뜻한 밥을 먹이고, 아기를 잠시 받아 안고, 한두 시간이라도 마음 놓고 잘 수 있게 해주는 일은 아직 내가 해줄 수 있었다. 어릴 때처럼 모든 것을 챙겨줄 수는 없어도 딸이 힘들 때 잠시 기대어 쉴 자리는 되어줄 수 있었다.


딸에게 밥을 차려주고 잠든 딸 대신 손녀를 안고 있던 그 시간 동안 나는 자꾸 내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영국에서 딸의 산후조리를 해주고 있다는 내 말을 듣고 뭐라고 하셨을까. 손녀는 잘 있는지, 딸은 몸조리를 잘하고 있는지 이것저것 물으셨겠지만 아마 전화를 끊기 전에는 꼭 한마디를 덧붙이셨을 것 같다.


“너도 밥 잘 챙겨 먹어라.”


그 말을 더는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문득 서글펐다. 평생 엄마의 걱정을 받던 딸이 이제 자기 딸을 걱정하는 엄마가 되어 있었지만, 엄마가 계셨다면 나 역시 여전히 밥을 챙겨 먹어야 하는 딸이었을 것이다.


오래전 엄마가 내게 차려주었던 밥을 이제 내가 딸에게 차려주고 있었다. 그때는 미처 몰랐던 엄마의 마음을, 나는 영국의 작은 부엌에서 딸의 국을 끓이며 뒤늦게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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