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연사는 나를 괴롭히는 필라테스 선생님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통대 입시를 공부하기 전까지, 어떤 시험에 붙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통대입시를 준비했던 시간, 그 강의실의 분위기, 선생님들이 해주시던 말씀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 같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몇 가지 명언을 떠올려 보자면 다음과 같다.
"이거 공부하다가 외대 통대 못 간다고 인생 망하는 거 아닙니다. 외대 나오면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고 그런 거 아니에요. 많이들 모르지만 스트레스 진짜 많이 받는 직업이에요. 조선시대에도 역관은 양반이 아니라 중인이었잖아요? 통역사의 슬롯적 지위는 그 정도입니다."
저 말을 듣고 10년이 지났다. 저기서 선생님이 하신 말 200% 다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 통번역대학원 진학은 거의 유일하게 가망이 있어 보이는 진로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그때의 내 상태로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거나 다른 회사 취업을 시도했으면 안 됐을 것이다. 다른 도전과는 달리, 오로지 '영어실력' 하나만을, 그것도 자체 평가 방식으로 평가해서 뽑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유리한 시험이었다.
통역사 지망생들은 공부의 특성상 계속 말을 하고, 말한 내용을 누군가에게 피드백을 받는 것이 필수다. 또한 정해진 문제집 같은 것이 딱히 없기 때문에 학원에서 준 자료를 공부하거나, 그것도 부족하면 서로 스터디 자료를 만들어 와서 교환해야 한다.
스터디를 하려면 서로 하는 통역을 귀 기울여 듣고 피드백을 줘야 하기 때문에 독립된 스터디룸이 필요하다. 토즈 2인실같이 1평 남짓한 공간에서 2시간 동안 지문 두세 개만 통역해도 각자의 언어 밑천이 탈탈 털린다. 바로 여기서 가끔 분위기가 미묘해지기도 한다. 상대방에게 받은 자료가 통역하기 매우 까다로운 지문이거나, 생소한 분야라 한 번 듣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지문일 때 그렇게 된다.
다음의 예문을 읽지 않고 듣기만 했을 때, 바로 이해하고 한국어로 다시 요약해서 말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미 방산 스타트업 ‘미스릴 디펜스’가 개발한 ‘캠퍼스 가디언 엔젤’ 프로그램은 소형 드론을 교실 천장에 매립된 충전 박스 안에 배치했다가 비상시 원격 조종하는 방식이다. 이 드론은 시속 약 160km의 속도로 비행하며 사이렌과 섬광, 후추 젤 분사를 통해 총격범의 움직임을 지연시키도록 설계되었다.
기억할 디테일도 많은 데다가, 당혹스러운 단어들이 등장한다. 내가 수험생일 때 이 지문을 들었더라면 뇌정지로 어버버 했을 게 분명하다.
위의 지문을 듣고 바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평소에 뉴스나 신문을 꾸준히 읽으면서 시사를 잘 팔로업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까 입시생은
1) 듣고 지문을 완벽 이해하고 2) 이해한 내용을 올바른 어휘와 표현을 사용하여 영어로 다시 말해야 한다.
보통 이런 지문을 가져온 파트너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 1번 부류는 친절하게 이 지문의 주제와 특정 키워드 간단히 알려주며 '예령'를 주는 사람, 2번 부류는 아무런 설명 없이 냅다 지문을 읽어준 뒤, 파트너의 통역을 적극적으로 경청하는 사람.
나는 첫 번째 유형. 친절한 파트너였다. 그 이유는, 생소한 지문을 읽어주고 시켜봤자, 그 사람이 모르는 분야라서 키워드도, 표현도 몰라서 통역을 망쳤다면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한국어가 모국어라고 해서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의 이야기를, 그 업계의 언어로 정확한 어휘와 표현을 써 가며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어떤 사람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토익과 토익 스피킹 만점을 받았지만, 야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치자. 이 사람에게 "A는 안정된 제구력을 가진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투피치 사이드암 투수"라는 말을 통역해 달라고 하면, 그 사람은 영어로 제대로 통역을 할 수 있을까? 이른바 '브로큰 잉글리시'로 단어 몇 마디 던지면서 의사소통은 할 수 있을 테지만, 올바른 표현과 단어로 문장을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만나는 파트너들이 모두 나 같은 건 아니다. 머리가 하얘지고 아 저 이거 못하겠어요.라는 말이 나온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못 하겠다고 파트너 앞에서 '기권'을 하는 나의 심정은 그냥 참담했다. 어떻게 10년을 살다 왔는데도 이런 지문을 영어로 옮기질 못하지? 어떻게 이 표현을 모르지?라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이를 악물고 표현을 다 받아 적고, 동일한 주제를 구글링 해서 기사에서 레퍼런스 표현을 찾아 입력하고 나면 현타가 또 왔다. 이거 공부하긴 했는데, 어쩌면 몇 개월 동안 다시는 말할 일이 없는 표현인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시험날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주제가 나와서 교수님들 앞에서 새하얗게 질려서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표현을 못해서 기권하는 장면이었다. 그러니까, 학교 시험처럼 서적을 n차 회독 하거나, 기출문제를 미친 듯이 푸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미지의 영역을 접하고 또 좌절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수강생들 사이에선 종종 괴담도 돌았다. 대부분 누구와 스터디를 했는데 별로였다-는 얘기였다. 파트너가 지문을 읽어줬더니 '이런 걸 왜 가져온 거냐, 엿 먹으라고 가져왔냐'라고 버럭 역정을 내면서 나가 버리는 사람도 있고, 우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포기하지 않고 꾸역꾸역 어떻게든 통역을 했는데 지문을 가져온 파트너(a.k.a. 심사위원)가 실실 웃으며 '대박, 너 이렇게 망하는 거 처음 본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나도 여러 번 극악의 지문에 마치 루킹삼진 당하듯 장렬히 망한 적이 셀 수 없지만, 나와 공부했던 파트너들 중에선 저런 기행을 보이는 분들이 없었다. 수험생활이 간절함을 넘어서 절박한 상태로 장기화되면 모두 어딘가가 조금씩 이상해지는 것 같다.
사실 익숙한 것만 하면 세상 편한 게 통역이기도 하다. 별다른 전문용어나 배경, 표현을 공부할 필요가 없는 통역 환경도 있다. 그런 경우는 마음도 편하고 말도 부드럽게 나온다. 퍼포먼스는 모든 것이 멘털과 연결된다. 내가 편하게 인식하는 환경에서는 말도 부드럽게 나온다. 반면 긴장으로 위축된 환경에서는 말도 잘 생각이 안 나고, 목소리도 불안하게 흔들리기도 한다.
지난 3월 WBC에서 노병의 투혼을 보여주며 극찬을 받은 SSG의 노경은 투수는 84년 3월생이다. 연고지 최고의 유망주를 뽑는 1차 지명을 받은 선수이지만, 커리어의 우여곡절도 많았던 선수다. 부진으로 은퇴 선언, 은퇴 번복, 트레이드 후 방출, FA 미아로 인한 공백 등 그의 선수 생활은 결코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그런 노경은 투수가 중앙일보의 폴인과 인터뷰하면서 다음의 이야기를 했다.
"전 제가 못했을 때 경기는 다시 안 봅니다. 방향을 바꿨어요. 그만 들여다보자. 문제를 머리에서 아예 지우자. (못했을 때의) 영상도 보지 않았고, 신경 쓰지도 않았어요. 대신, 좋았을 때의 몸 상태로 돌아가려고 했어요. 그때 했던 운동, 컨디션 관리, 루틴을 그대로 다시 가져왔죠. 힘이 붙더니 조금씩 나아지더라고요."
나는 이 말이 통역사들에게 참 필요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통역사들은 자기가 못한 부분, 못 하는 부분에 신경 쓰다가 슬럼프를 겪기 쉽기 때문이다. 전에 통번역사협회 모임에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봤는데, 통역 망했을 때 어떻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느냐는 질문에 '마인드 컨트롤 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나간 것이니 잊어버린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못한 것이 기억이 나서 계속 몸부림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후자다.) 나도 이 일로 경력이 쌓일수록 점점 자신감을 쌓기는 커녕 위축되어서 간절히 전직을 하고 싶었던 적이 무수히 많았다. 통역이 잡히면 나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되뇌고 있었다. '너는 정말 처참하다. 통역사면서 이런 표현도 모르네. 아직도 작은 회의 하나 들어가면서 망할까 봐 불안해 미치겠지? 창피하다. 다른 사람들이 너의 실체를 알면 얼마나 비웃을까?' 제미나이는 나의 이런 행동을 가면증후군이라는 말로 표현하더라.
그래서 노경은 선수의 인터뷰는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내가 못 써먹을 통역사였다면 나는 통대도 가지 못했을 텐데, 그래도 아직까지 통역으로 벌어먹고 산다는 건, 내가 잘하는 부분이 있는 거겠지. 그러니까 못 하는 부분에 매몰되어서 허우적거리지 말고 잘했을 때를 기억하고 그 루틴을 반복해 보자.'라는 다짐이 나왔다.
우린 어쩔 수 없이 comfort zone 안에 있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새로운 개념이 소개된다. 전문가도 아닌데 다양한 업계의 사람들을 만나고, 업계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의 말을 자연스럽게 통역해야 한다. 말을 어렵게 하는 연사를 만나면 머리에 '쥐가' 난다는 말이 이해 된다. 희한하게 말하는 연사의 말을 들으며 최대한 이해하려고 애쓰다 보면 뇌에게 가혹한 스트레칭을 시키는 필라테스 선생님 같다. 그럴 때마다 난 비루한 내가, 왜 나 따위가 통역사가 됐을까 이를 바득바득 갈기도 한다. 에휴 씨, 얼른 때려치워야지 제기랄. 그래도, 그래도 그토록 괴로웠던 스트레칭이 끝나면 다음 통역은 한결 편안하게 된다. 그러니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지문을 가져오는 파트너를 원망할 필요가 없다. 별 희한한 방식으로 괴롭게 하는 연사를 만나면 머리와 마음이 누더기가 되지만 그래도 괜찮다. 내가 듣는 모든 말은, 어쨌든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으니까.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 프리드리히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