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토리는 장애전담어린이집에 입소하며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3월부터 본격적인 일과를 시작하기에 앞서, 한 달간 적응 기간을 거쳤다.
1주 차에는 간식 시간까지, 2주 차에는 점심시간까지 머물렀고, 마지막 주에는 하루 종일 어린이집에서 지내는 방식으로 조금씩 시간을 늘려갔다.
아이가 낯선 곳에서 울음을 터뜨리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가슴을 졸였으나, 토리는 놀라울 정도로 잘 적응해 냈다.
선생님들 또한 이렇게 빠르게 환경에 녹아드는 아이는 처음이라며 토리를 예뻐해 주셨다.
토리가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일찍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해 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어린이집 측에서는 아직 음식을 씹는 게 어려운 토리를 위해 별도의 이유식까지 챙겨주는 정성을 보여주었다.
그 세심한 배려 덕분에 토리는 매일매일 즐겁게 성장해 나갔다.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키즈노트를 통해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뭘 했는지 이쁜 사진과 함께 소식을 전해주었다.
사진 속에는 집에서 마냥 누워만 있던 토리가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노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선생님들이 아직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토리 곁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도와주시는 모습도 보였다.
그 사진들을 하나하나 넘겨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뭉클하면서도 대견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내 아이가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큰 위안이 되었다.
처음에는 남편과 나 단둘이서 토리를 돌보며 차가운 현실의 벽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활선생님들과 돌봄 선생님 그리고 어린이집 선생님들 모두가 우리 가족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 따뜻한 연대감이 나를 더 이상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주고 있었다.
토리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먹고 더 밝고 건강하게 성장했다.
어린이집을 다닌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토리는 처음으로 ‘엄마’라고 소리 내 불렀다.
“엄마.”
그 짧고도 선명한 단어 한마디에 나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다.
나는 토리를 품에 안고 눈 맞춤을 하며 “엄마라 했어?”라고 물었고, 토리는 방긋 웃으며 다시 ‘엄마~’라고 대답했다.
그 맑은 웃음소리는 내 삶을 비추는 가장 눈부신 햇살이었다.
예전에 토리에게 내 말을 따라 해보길 유도해 보았으나, 아이는 그저 멍하니 눈만 맞춘 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순간, 단순히 운동 발달만 더딘 게 아니라 인지 발달까지 늦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깨닫던 순간이 있었다.
나는 토리를 안고 토리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머무는 동안,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꼈다.
재활 선생님께서 어린이집에 가서 자극을 받으면 좋아질 거라는 말이 사실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엄마’라는 단 한 마디밖에 못 하지만 나중에 시간이 흘러 토리가 내게 어떤 말을 건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엄마, 사랑해요.” 혹은 “엄마, 고마워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나는 세상의 그 어떤 보상보다도 더 큰 행복을 느낄 것 같았다.
시간이 좀 더 지난 뒤, 한창 장난감 놀이에 빠져 있던 토리가 돌연 나를 향해 “엄마, 시끄러워.”라고 말했다.
“…….”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토리가 처음으로 내뱉은 단어가 ‘사랑해’나 ‘고마워’가 아닌 ‘시끄러워’라는 사실에 어이가 없기도 하고 웃겨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나는 웃으면서 토리에게 “뭐라고…?”라고 되물었고, 토리는 그 단어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방긋 웃으며 “시끄러워.”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다음날 어린이집 선생님께 이 이야기를 전하자, 선생님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씀하셨다.
요즘 반 아이들 사이에서 '시끄러워'가 유행인가 봐요. 토리가 그걸 귀담아듣고 따라 했다니 정말 기특하네요.
그 말에 어제 토리의 해맑은 모습을 되새기며, 나 역시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흐뭇해했다.
토리는 어린이집에서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고 다양한 자극을 받으면서 조금씩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과자를 보면 “까까”, 엄마를 보면 “엄마”, 아빠를 보면 “아빠”라고 말하며 세상을 배워가고 있었다.
그리고 재활을 하다가 내가 옆에서 자꾸 떠들어대자 “시끄러워.”라는 말을 또다시 툭 내뱉었다.
재활 선생님이 “응? 시끄러워? 누가 시끄러워?”라고 묻자, 그게 우연히 나온 말인지, 토리가 정말 의도하고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토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엄마.”라고 대답했다.
재활 선생님과 나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며 “엄마가 시끄러웠나 보네. 이제 입 다물게.”라고 장난을 쳤고, 토리는 그게 즐거운지 다시 방긋 미소 지었다.
토리의 언어가 또래보다 느리다고 해서 소통이 막힌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조금 늦게 피어날 꽃을 기다리는 일이었으며,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을 향해 조금씩 입을 열어가는 중이었다.
집에서는 토리가 하루 종일 엄마 엄마 엄마 라고 하길래, 장난스레 “토리야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었더니 토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아빠”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옆에 있던 남편은 웃음이 터져 나왔고, 앞에서 듣던 나는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토리에게 “아니야, 다시 잘 생각해 봐. 여태 엄마만 불렀잖아.”라며 애원하듯 말했지만, 토리는 천진난만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아빠”라고 못을 박았다.
그 모습에 남편은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나를 장난스럽게 쳐다보았다.
나는 억울함에 남편을 째려보았지만, 남편은 이미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이었다.
토리는 그제야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엄마, 엄마하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내 품에 얼굴을 깊숙이 묻었다.
나는 허탈함이 뒤섞인 헛웃음을 내뱉으며 아이를 꽉 껴안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처지가 우스우면서도, 품 안에 안긴 토리의 온기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남편은 아이를 품에 안은 채 행복해하는 나를 바라보았고, 우리는 아이가 그려갈 미래에 대한 벅찬 설렘을 품은 채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 모든 행복은 토리의 인지 발달을 이끌어준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노고 덕분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토리가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고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으며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장애전담어린이집은 단순히 아이를 맡기는 곳이 아니라 토리가 세상과 마주하며 성장하는 소중한 공간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토리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역시 함께 세상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