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치료와 재활

by소여

토리가 퇴원한 뒤, 나는 인터넷과 이른둥이 엄마들의 SNS를 뒤지며 우리 동네에서 소아 재활이 가능한 곳을 찾아다녔다.

토리가 퇴원한 곳과 거주하는 지역이 달랐던 탓에, 우리 동네에는 소아 재활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 그리 많지 않았다.

출생 병원에서 가져온 검사 결과지들을 하나하나 챙겨 인근 대학병원에 진료 기록을 등록했고, 다행히 빠른 협조 덕분에 토리는 예상보다 일찍 재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한참 작았던 토리를 보며, 재활을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작은 몸으로 온 힘을 다해 움직이는 아이를 마주하자, 걱정은 이내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나는 떨리는 염려를 꾹꾹 눌러 담아 응원으로 바꾸기로 했다.

아이의 작은 손을 꼭 맞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토리야, 조금만 더 힘내보자."

첫 재활을 마친 뒤, 나는 이 작은 발걸음들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 토리가 스스로 목을 가누고, 기고, 마침내 걷게 될 날이 올 것이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아이의 성장은 정체된 듯 멈춰 섰고, 나의 간절했던 믿음마저 조금씩 흔들려 갔다.

매일 밤, 잠든 아이의 여린 다리를 어루만지며 나는 소리 없는 기도를 올렸다.

제발 내일은 오늘보다 아주 작은 변화라도 일어날 수 있기를…

그때의 나는 그저 조금 느릴 뿐, 언젠가는 뒤처진 시간을 메울 수 있으리라 스스로를 속이며 희망의 끈을 놓지 못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검사 때마다 마주하는 무심한 수치들은 토리의 상태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것을 잔인하게 입증할 뿐이었다.

시간은 흘러 토리가 태어난 지 열 달 남짓 되었을 무렵, 생후 3개월부터 사용 가능하다는 범보의자를 알게 되었다.

재활을 잘 견뎌온 토리에게 작은 진전이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이제는 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의자를 준비했다.

머릿속으로 토리가 의자에 잘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를 범보의자에 앉혀보았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토리의 몸은 힘없이 옆으로 쏠리며 자꾸만 바닥을 향해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럼에도 나는 포기하지 못하고 다시 한번 토리를 앉혀보았다.

그러나 토리는 마치 뼈가 없는 인형마냥 맥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아니, 사실은 그 작은 몸으로 어떻게든 버텨보려 한 모습이 보였다.

힘겨운 몸짓이었지만, 토리는 그 가녀린 목을 필사적으로 치켜세우며 저항하고 있었다.

그 애처로운 몸짓을 차마 더는 지켜볼 수 없어, 나는 서둘러 토리를 의자에서 들어 올려 내 품에 꼭 안았다.

토리가 단지 성장이 더딘 것일 뿐 모든 것이 정상일 거라는 믿음과, 10개월이면 3개월 정도의 발달은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나는 차마 떨쳐내지 못했던것이다.

내 품에 안긴 토리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엄마를 위로하려는것인지 해맑게 웃어주었다.

그 천진난만한 미소가 내 마음을 더 아려왔다.

이 아이는 이 아이만의 고유한 속도가있는데 나는 그걸 조급한 마음으로 재촉하고 있었던 것이 너무 미안했다.

그날 이후, 아무리 교정일이 흘러가도 토리의 속도에 발을 맞추기로 했다.

주 2회 대학병원 재활 치료를 병행하며, 정기 검진 일정에 맞춰 아이의 성장을 세밀하게 기록해 나갔다.

심장 잡음이나 미숙아 망막병증의 진행 여부를 살피며, 나는 매 순간 떨리는 마음으로 아이의 안녕을 기도했다.

간절한 기도가 닿았던 걸까.
다행히 토리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는 생각보다 양호했다.

그저 운동 발달이 조금 더딜 뿐, 아이는 잘 먹고 잘 웃으며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아이의 느린 발걸음과 결핍에만 매달려 있었다.

‘왜 우리 아이만 이토록 고생일까.’
‘왜 교정일이 지나도 제자리일까.’

그런 질문을 되풀이하는 동안, 정작 토리가 하루하루 일궈내고 있던 성장은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1.56kg의 작은 몸으로 시작해 9kg에 이르기까지. 토리가 일궈낸 성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적이었다.

나는 비로소 아이의 작은 변화에 눈을 맞추고 함께 기뻐하는 법을 배워갔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서툴고 막막했지만,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 또한 함께 자라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속도로, 천천히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희망을 품고 하루하루를 채워가던 어느 날이었다.

아직 의자에 앉기 힘든 아이를 바구니 카시트에 조심스레 담아 카페에서 잠시 쉬어가던 중이었다.

그때 한 어르신이 토리를 유심히 살피더니, “애가 저만큼 컸는데 왜 저런 카시트에 앉혀놔? 딱 봐도 뛰어다닐 몸집인데… 쯧, 애가 어디 아픈가 보네!”라며 날카로운 말을 내뱉었다.

그 한마디에 나는 순식간에 얼어붙고 말았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왜 저 사람은 우리에게 이토록 날 선 상처를 던지는 걸까.

아무 대꾸도 못한 채 고개만 떨구고 카페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러다 문득 섬뜩한 생각이 스쳤다.

지금은 아이가 저 말들을 이해하지 못해 넘어가지만, 언젠가 인지가 발달해서 저 날 선 말들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면 얼마나 상처받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장애를 향한 시선이 예전보다 부드러워졌다 해도, 우리 슬롯의 그늘진 곳에는 여전히 날카로운 편견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 시린 시선들로부터 토리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섰다. 눈물이 차올랐지만, 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토리의 작은 손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어떤 모진 바람이 불어와도 토리의 세계를 지켜낼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겠다고. 비록 작은 목소리일지라도 끊임없이 내어, 세상을 짓누르는 날 선 편견들을 조금씩 깎아내며 나아가겠다고.

며칠 후, 재활을 마치고 귀가하던 택시 안에서 무거운 정적이 흐르던 중 기사님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셨다.

혹시 아이가 이른둥이였냐는 질문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또다시 날 선 시선과 마주하게 될까 봐, 나는 본능적으로 겁이 났다.

기사님의 물음에 나는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담담히 답했다.

“네, 이른둥이로 태어났어요. 처음엔 1kg뿐이었는데, 지금은 9kg이나 되었답니다.”

그러자 기사님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허허, 정말 대단한 아이네요! 기적이 따로 없구먼. 그거 알아요? 이른둥이들은 나중에 훨씬 더 멋진 어른이 된다오. 그 험난한 고비를 이겨낸 강한 생명력이 있으니까! 지금은 비록 힘들어도, 훗날엔 이 모든 게 행복한 추억이라 회상할 날이 올 거예요. 내 말을 믿어봐요. 일흔 평생을 살아보니 어른들 말은 틀린 게 없더라고!”

그 말은 가족도 아닌 이에게서 얻은, 뜻밖의 다정한 첫 위로였다.

기사님의 다정한 선의에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나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

세상에는 모진말을 던지는 이도 있지만 이렇게 예기치 못한 따스함을 건네는 이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사님의 말처럼 이 순간을 훗날 웃으며 추억할 날을 꿈꾸며, 토리를 돌보는 일에 더욱 마음을 쏟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은 흘러 돌을 앞둔 토리와 함께 재활의학과 외래를 찾았다.

부단한 노력으로 조금씩 목을 가누는 토리의 변화를 마주하며, 나는 내심 기분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곧장 무너졌다.

교수님은 토리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무거운 한숨과 함께 조심스레 입을 떼셨다.

“재활을 일주일에 네 번으로 늘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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