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의학과 교수님은 토리의 재활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토리가 목을 가누는 움직임이 훨씬 유연해졌고, 앉는 자세 또한 여전히 불안정하지만 5초 정도는 버틸 수 있게 된 만큼 분명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에 교수님의 말씀은 살짝 당혹스럽게 느껴졌다.
허탈함이 밀려온 나는 “이 아이가 나중에 일어설 수 있을까요? 아니, 걸을 수나 있을까요? 교수님, 저는 너무 무서워요.”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교수님은 내 질문에 차분한 얼굴로 나를 다독이셨다.
“끝을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미리 포기하지 마십시오. 아이는 제 몫을 다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먼저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할 테니, 토리와 함께 조금씩만 더 힘을 내봅시다.”
그 후 교수님께서는 ‘발달재활바우처’에 대해서도 알려주셨다. 발달 지연이나 장애가 있는 아동이 필요한 재활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에서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라고 했다.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재활치료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가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으니, 관련 서류를 준비해 행정복지센터에 신청해 보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발달재활바우처.’
그 말은 당시의 나에게 한 줄기 빛과도 같은 희망적인 소식이었다.
교수님께서 챙겨준 발달재활서비스 의뢰서에는 ‘뇌병변장애’라고 적혀있었다.
글자를 읽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했다.
언젠가 장애 진단을 받게 될 거라는 예감은 막연히 품고 있었으나, 막상 서류에 적힌 그 명확한 명칭을 마주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그래도 토리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수월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재활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쥐고 있는 내 모습은 초라하기만 했다.
그렇게 발달재활바우처를 신청하고 바우처를 쓸 수 있는 소아재활센터를 알아봤다.
거주 지역 내 소아재활센터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했다. 지금 토리가 재활 중인 대학병원을 더해도 서너 군데가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이른둥이 아이들은 먼 지역까지 발품을 팔아 이동한다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필사적으로 전화를 돌려보았다.
그러나 두 곳은 이미 대기가 너무 길어 언제 순번이 올지 기약이 없었다.
결국 마지막 한 곳만이 남았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그 마지막 희망에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는 전화가 연결되지 않아, 타 지역까지 가야만 하는 건가 싶어 눈앞이 캄캄해지려던 찰나, 그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다른 아이를 재활 중이어서 전화를 못 받았다고, 무슨 일 때문에 전화를 했느냐고 다정하게 물어오셨다.
나는 목이 메어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 아이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센터장님은 잠시 침묵하시더니 다정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많이 힘드셨겠어요. 일단 아이 상태를 제가 먼저 봐야 할 것 같아요. 내일이라도 당장 센터로 방문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 말씀에 안도감이 밀려오며,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나는 감사인사를 하고 내일 토리와 함께 그 센터에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깊은 저녁의 정적 속에서 난 잠든 토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재활의 무게가 무거워질지라도, 우리 토리는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밤이 깊어갈수록 아이를 향한 나의 다짐은 더욱 단단해져만 갔다.
다음날 아침, 나는 토리의 발달검사결과지와 함께 센터를 향했다.
무거운 발걸음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작을 향한 긴장 섞인 기대감이 마음 한구석을 채우고 있었다.
센터에 들어서자 센터장님은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겨주셨다. 곧바로 운동치료실로 안내받으며 토리의 운동 발달 상태를 살피고, 재활 수업이 가능한 시간대를 조율했다.
발달재활바우처를 이용하면 한 달에 6회, 주 2회씩 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그렇게 토리는 월요일 금요일은 대학병원에서, 화요일 수요일은 센터에서 재활 수업을 받기로 했다.
빽빽하게 채워진 일정표를 보니 벌써부터 숨이 차올랐지만, 토리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쯤은 얼마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기나긴 싸움을 끝까지 견뎌낼 수 있을지, 불안감이 마음 한구석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두려움과 기대가 뒤섞여 마음이 일렁였지만, 나는 긍정적인 마음을 다잡으며 토리의 재활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응원했다.
성인조차 고된 운동재활을 토리는 그 작은 몸으로 주에 네 번씩 묵묵히 견뎌냈고, 덕분에 아이의 발달 속도에도 조금씩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돌이 지날 무렵엔 목을 온전히 가누게 되었고, 내 무릎에 앉히면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제법 앉은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토리의 그 경이로운 성장 속도에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간 토리와 내가 치열하게 버텨온 그 작은 몸부림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지난 고통의 시간들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센터장님이 토리의 팔다리를 마사지하다 말고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 거리며 말했다.
“토리는 일반 뇌병변 아이들과는 양상이 좀 다르네요. 경직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서, 꼭 일반 아이를 보는 것 같아요.”
“그럼 좋은 건가요?”
내 질문에 센터장님은 잠시 망설이더니, 형언하기 어려운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경직이 없다는 건 긍정적이지만 발달이 많이 늦은 편이에요. 뭐라 딱 잘라 말하긴 애매해도 토리는 다른 아이들과는 무언가 달라요. 그런데 그게 어떤 점인지는 저 역시 명확히 짚어내기가 어렵네요.”
당시에는 나와 센터장님 모두 토리의 상태를 명확히 알지 못했으나, 지금 와서 생각하니 센터장님이 토리의 상태를 가장 먼저 눈치채셨던 셈이다.
시간이 흘러 다시 방문한 재활의학과에서 토리가 돌이 지나 장애 등록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이미 머릿속으로 여러 번 그려보았던 일이라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이제는 어떤 결과가 닥치더라도 그저 묵묵히 수용하기 로마음 먹은 것이다.
나는 인터넷 검색창을 가득 채운 부정적인 사례들에 매몰되지 않으려 애쓰며, 토리에게는 오직 토리만의 길과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었다.
그렇게 장애 등록 절차를 마친 2025년 12월 8일, 토리는 국가로부터 중증 뇌병변 장애 판정을 받았다.
장애인 등록증에 담겨있는 토리의 증명사진을 보니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결코 이런 식으로 아이의 사진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건만, 나는 그저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장애인 등록증 속 토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사랑스러운 내 아들 토리가 자라날 세상은, 장애를 편견 없이 바라봐 주는 따뜻한 시선으로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지금은 몸을 자력으로 가누지 못할지언정 맑은 두 눈에 눈부신 세상을 담고, 토리의 앞날이 더욱 넓고 풍성한 결로 펼쳐지기를 소망하던 날이었다.
그렇게 토리는 오늘도 미약한 몸짓으로 재활의 과정을 견디며 하루의 첫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