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를 직접 만나기 전, 남편이 찍어온 영상을 보며 토리가 생각보다 덩치가 있었고 팔다리도 잘 움직이는 것을 보고 조금은 안심했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아이의 모습은 영상 속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1.56kg의 작은 몸은 손에 쥐면 부서질 듯 왜소했으며, 폐가 미성숙해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위태롭게 들썩이는 광경에 나는 가슴이 미어지는 통증을 느꼈다.
“사람이 이렇게 작아도 되는 거야…?” 라고 묻고 싶었으나, 슬픔과 아픔이 뒤섞여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던 질문이었다.
토리는 인큐베이터라는 유리 벽 안에서 호스에 의존한 채 간신히 생명을 붙들고 있었다.
더 품어 주지 못한 미안함과 자바카라이 밀려와 숨이 막힐 무렵, 아이는 가느다란 팔 다리를 꿈틀거리며 마치 ‘나 여기 있어요.’라며 나를 다독이는듯했다.
그 작은 몸짓이 눈물겹도록 애처로워 나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렇게 짧은 면회시간이 끝나고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병실로 돌아갔다.
분만 후 젖이 돌면 모유가 나올 테고, 그 초유가 아이에게 그렇게 좋다던 말을 떠올리며 내 몸은 언제쯤 모유가 돌까, 막연히 기다리고만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내 몸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때서야 나는 혹시 출산을 했어도 모유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간호사는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했다. 그래도 모유가 나오지 않는다면 너무 이른 출산으로 인해 몸이 아직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것일 수 있다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아이에게 초유 한 방울이라도 먹이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달리, 너무 이른 출산을 맞닥뜨린 내 몸은 아직 모유를 만들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인지 아무런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결국 초유를 먹이겠다는 소망은 이루지 못한 채 가슴속에만 맺혔다.
당시의 나는 토리에게 모유 한 방울조차 나누어주지 못한 무력한 엄마였다.
입원 중에는 매일 토리를 볼 수 있었으나, 퇴원하고 나니 일주일에 세 번, 30분이라는 짧은 면회 시간만이 간신히 허락되었다.
하지만 그 30분 조차 내게는 너무나 애틋하고도 소중한 행복이었다.
신생아 중환자실은 고요함이 곧 희망이었으며, 울리는 연락은 언제나 가슴 철렁한 소식을 예고하는 신호였다.
그 정적을 깨고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언제나 내 심장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한 번은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아이에게 서맥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고, 의료진이 아이의 심박수와 산소포화도를 면밀히 살피며 대처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나는 그 순간, 혹시 토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불안에 휩싸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 작은 아이가 과연 무사히 퇴원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나 아이는 기적처럼 고비를 넘기고 안정을 되찾았다.
매일 아이 소식이 궁금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더이상 내 전화벨이 울리지않도록 기도했다.
연락이 오지않는편이 신생아중환자실에선 가장 좋은 소식이었으니까.
토리에 대한 상태는 매일 문자가 왔다.
[신생아 중환자실 [토리] 금일 아기 체중은 1.57kg 금식 입니다.]
[신생아 중환자실 [토리] 금일 아기 체중은 1.41kg 입니다. 금일부터 식이 시작하여 1회 수유량(분유) 3ml 입니다.(하루8회수유)]
[신생아 중환자실 [토리] 금일 아기 체중은 1.62kg 입니다. 식이 양을 5ml로 증량합니다.]
처음에는 줄어든 몸무게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기도 했지만, 조금씩 올라가는 수치에 안도하며 남몰래 눈물을 닦았다.
나는 토리가 잘 버텨주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 모습을 보며 나 역시 무너지기보다는, 이른둥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보통의 아기들은 자궁 안에서 웅크린 채 충분히 머물다 태어나지만, 이른둥이는 그 과정을 채 마치지 못한 채 세상에 나오기에 자세 유지와 발달을 돕는 ‘말아주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동영상으로 말아주는 방법과 집에서 할 수 있는 재활 운동법을 찾아보며 매일 밤 연습했다.
그렇게 입원한 토리를 맞이 할 준비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긴 입원시간동안 서맥과 신생아 동맥관 개존, 신생아 호흡곤란 증후군 등 여러 가지 고비가 이어졌지만 토리는 씩씩하게 이겨냈다.
그리고 마침내, 토리의 퇴원날짜가 잡혔고,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수유연습을 했다.
그동안 무럭무럭 자라난 토리는 통통해진 볼살과 함께 한층 건강해진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그렇게 우리 세사람은 행복한 일상을 돌아갈수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교수님께선 생각지도 못한 말을 조심스레 건네셨다.
토리의 뇌 초음파와 MRI를 촬영해 본 결과, ‘백질연화증’이라는 진단을 내리셨다.
나는 백질연화증이라는 말을 난생 처음 들어봤다.
떨리는 목소리로 교수님에게 물었다. 백질연화증이 어떤 병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후유증이 있는지…
깊은 한숨과 함께 시작된 교수님의 설명은 매우 친절했으나, 그 내용은 차마 마주하기 힘든 잔인한 현실이 있었다.
‘뇌의 백질은 신경 신호가 오가는 중요한 통로인데, 이 부분에 손상이 생기면 앞으로 운동발달이나 인지발달 등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정상적인 발달을 따라가는 경우도 있지만 운동발달이 늦어지거나 근 긴장도의 이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그 설명만으로도 눈앞이 아득해지는데, 이어지는 말은 더욱 가혹했다. 심한 경우 뇌성마비나 운동장애로 이어질 수 있으며, 현재로서는 어떤 후유증이 남을지 누구도 확언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나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눈물부터 터져 나오며 생각 없는 말을 내뱉었다.
“제 잘못이군요. 제가 조금만 더 아이를 품고있었다면 아이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이건 결코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순간의 나는 모든 죄바카라감에 짓눌려 속수무바카라으로 무너져 내리면서 그런 말을 뱉어낸 것이다.
남편은 옆에서 나를 다독이기는커녕 오히려 차갑게 쏘아붙이며 말했다.
당신이 울어봤자 아이가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왜 스스로를 괴롭히느냐며, 울음을 그치고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방법부터 찾으라고.
그 냉혹한 말 속에는 아버지로서의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하는 말이 맞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가운 현실 앞에 서 있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렇게 비극적인 순간들을 지나 시간은 흘러 토리의 퇴원 날이 왔다.
간호사는 퇴원 절차를 설명하며 외래 날짜와 주의사항을 꼼꼼히 일러주었다.
60ml씩 하루 8번 수유할 것, 그리고 수유 뒤에는 꼭 트림을 시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불안함에 떨고 있는 나를 향해 간호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말로 나를 다독였다.
“어머니, 토리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도 제일 씩씩한 아기였어요. 분명 잘 해낼 거예요.” 그 다정한 응원에 힘입어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토리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우리 세 사람, 나와 남편 그리고 토리의 평범하지만 조금은 특별한 나날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