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아이를 만난 날

by소여

토리를 직접 만나기 전, 남편이 찍어온 영상을 보며 토리가 생각보다 덩치가 있었고 팔다리도 잘 움직이는 것을 보고 조금은 안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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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막상 마주한 아이의 모습은 영상 속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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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kg의 작은 몸은 손에 쥐면 부서질 듯 왜소했으며, 폐가 미성숙해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위태롭게 들썩이는 광경에 나는 가슴이 미어지는 통증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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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이렇게 작아도 되는 거야…?” 라고 묻고 싶었으나, 슬픔과 아픔이 뒤섞여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던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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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는 인큐베이터라는 유리 벽 안에서 호스에 의존한 채 간신히 생명을 붙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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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품어 주지 못한 미안함과 자바카라이 밀려와 숨이 막힐 무렵, 아이는 가느다란 팔 다리를 꿈틀거리며 마치 ‘나 여기 있어요.’라며 나를 다독이는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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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은 몸짓이 눈물겹도록 애처로워 나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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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짧은 면회시간이 끝나고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병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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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 후 젖이 돌면 모유가 나올 테고, 그 초유가 아이에게 그렇게 좋다던 말을 떠올리며 내 몸은 언제쯤 모유가 돌까, 막연히 기다리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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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내 몸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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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서야 나는 혹시 출산을 했어도 모유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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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간호사는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했다. 그래도 모유가 나오지 않는다면 너무 이른 출산으로 인해 몸이 아직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것일 수 있다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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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초유 한 방울이라도 먹이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달리, 너무 이른 출산을 맞닥뜨린 내 몸은 아직 모유를 만들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인지 아무런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결국 초유를 먹이겠다는 소망은 이루지 못한 채 가슴속에만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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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나는 토리에게 모유 한 방울조차 나누어주지 못한 무력한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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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중에는 매일 토리를 볼 수 있었으나, 퇴원하고 나니 일주일에 세 번, 30분이라는 짧은 면회 시간만이 간신히 허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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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30분 조차 내게는 너무나 애틋하고도 소중한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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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중환자실은 고요함이 곧 희망이었으며, 울리는 연락은 언제나 가슴 철렁한 소식을 예고하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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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적을 깨고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언제나 내 심장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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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아이에게 서맥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고, 의료진이 아이의 심박수와 산소포화도를 면밀히 살피며 대처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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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순간, 혹시 토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불안에 휩싸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 작은 아이가 과연 무사히 퇴원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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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이는 기적처럼 고비를 넘기고 안정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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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이 소식이 궁금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더이상 내 전화벨이 울리지않도록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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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이 오지않는편이 신생아중환자실에선 가장 좋은 소식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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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에 대한 상태는 매일 문자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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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중환자실 [토리] 금일 아기 체중은 1.57kg 금식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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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중환자실 [토리] 금일 아기 체중은 1.41kg 입니다. 금일부터 식이 시작하여 1회 수유량(분유) 3ml 입니다.(하루8회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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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중환자실 [토리] 금일 아기 체중은 1.62kg 입니다. 식이 양을 5ml로 증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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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줄어든 몸무게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기도 했지만, 조금씩 올라가는 수치에 안도하며 남몰래 눈물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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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토리가 잘 버텨주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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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보며 나 역시 무너지기보다는, 이른둥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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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아기들은 자궁 안에서 웅크린 채 충분히 머물다 태어나지만, 이른둥이는 그 과정을 채 마치지 못한 채 세상에 나오기에 자세 유지와 발달을 돕는 ‘말아주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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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영상으로 말아주는 방법과 집에서 할 수 있는 재활 운동법을 찾아보며 매일 밤 연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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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입원한 토리를 맞이 할 준비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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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입원시간동안 서맥과 신생아 동맥관 개존, 신생아 호흡곤란 증후군 등 여러 가지 고비가 이어졌지만 토리는 씩씩하게 이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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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토리의 퇴원날짜가 잡혔고,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수유연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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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무럭무럭 자라난 토리는 통통해진 볼살과 함께 한층 건강해진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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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 세사람은 행복한 일상을 돌아갈수있을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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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교수님께선 생각지도 못한 말을 조심스레 건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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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의 뇌 초음파와 MRI를 촬영해 본 결과, ‘백질연화증’이라는 진단을 내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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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백질연화증이라는 말을 난생 처음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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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목소리로 교수님에게 물었다. 백질연화증이 어떤 병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후유증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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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한숨과 함께 시작된 교수님의 설명은 매우 친절했으나, 그 내용은 차마 마주하기 힘든 잔인한 현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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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백질은 신경 신호가 오가는 중요한 통로인데, 이 부분에 손상이 생기면 앞으로 운동발달이나 인지발달 등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정상적인 발달을 따라가는 경우도 있지만 운동발달이 늦어지거나 근 긴장도의 이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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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설명만으로도 눈앞이 아득해지는데, 이어지는 말은 더욱 가혹했다. 심한 경우 뇌성마비나 운동장애로 이어질 수 있으며, 현재로서는 어떤 후유증이 남을지 누구도 확언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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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눈물부터 터져 나오며 생각 없는 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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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잘못이군요. 제가 조금만 더 아이를 품고있었다면 아이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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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결코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순간의 나는 모든 죄바카라감에 짓눌려 속수무바카라으로 무너져 내리면서 그런 말을 뱉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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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옆에서 나를 다독이기는커녕 오히려 차갑게 쏘아붙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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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울어봤자 아이가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왜 스스로를 괴롭히느냐며, 울음을 그치고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방법부터 찾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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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냉혹한 말 속에는 아버지로서의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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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그가 하는 말이 맞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가운 현실 앞에 서 있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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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비극적인 순간들을 지나 시간은 흘러 토리의 퇴원 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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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는 퇴원 절차를 설명하며 외래 날짜와 주의사항을 꼼꼼히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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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ml씩 하루 8번 수유할 것, 그리고 수유 뒤에는 꼭 트림을 시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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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함에 떨고 있는 나를 향해 간호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말로 나를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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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토리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도 제일 씩씩한 아기였어요. 분명 잘 해낼 거예요.” 그 다정한 응원에 힘입어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토리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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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 세 사람, 나와 남편 그리고 토리의 평범하지만 조금은 특별한 나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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