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레이싱팀
현대의 스키는 점점 고급 스포츠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리프트 이용권부터 스키와 부츠, 바인딩, 폴, 헬멧 등 장비를 모두 갖추려면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든다. 현대식 스키장이 생기고 스키가 대중화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스키를 타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등식이 점점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대관령에서만큼은 그런 관념을 깨뜨리고 싶었다. 눈과 산이 가까운 이곳의 아이들이 경제적인 형편 때문에 스키를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관령이 한국 스키의 역사를 이어 온 고장이라면, 그 전통은 박물관에 전시된 오래된 스키와 사진으로만 남아서는 안 되었다. 그 역사를 이어 갈 아이들이 있어야 했다.
당시 스키 명문으로 알려진 도암초등학교와 횡계초등학교, 도암중학교에서는 크로스컨트리 스키의 명맥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알파인스키 선수는 가뭄에 콩 나듯 그 수가 적었다. 같은 스키인데도 알파인스키를 배우고 선수로 성장할 기회는 충분하지 않았다. 나는 이 현실을 바꾸고 싶었다.
1990년 11월 14일, 횡계초등학교 스키선수단을 발족하고 무료 꿈나무 스키학교인 ‘대관령 스키레이싱팀’을 창단했다. 아이들이 돈 걱정 없이 스키를 배우고, 좋아하는 스키를 계속 타며 자신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이들을 스키장까지 데려다주는 것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봉고차에 횡계초등학교 스키선수단 마크를 새기고, 매일 아침 아이들을 태워 스키장으로 향했다.
사실 나는 지도자로서 준비가 되어 있던 사람은 아니었다. 전문 선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지도하는 방법을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사람의 단점보다 장점을 먼저 보는 성격이었다. 아이들의 나쁜 습관을 찾아내 바로잡고 엄격하게 훈련시키는 일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했다. 누구보다 먼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스키를 탔고, 마지막까지 슬로프를 지켰다. 4시 30분, 마감을 알리는 아리랑 노래가 흘러나오면 사람들이 모두 내려간 것을 확인하고, 아이들과 함께 활강하며 신나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지금 생각하면 전문적인 훈련과는 거리가 있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이 무엇보다 스키를 재미있어하기를 바랐다. 스키가 힘들고 두려운 훈련이 아니라, 내일도 다시 타고 싶어지는 즐거운 운동이 되기를 바랐다. 아이들과 함께 넘어지고 웃으며 슬로프를 누비는 시간이 쌓이자 아이들도 스키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스키를 타는 즐거움 속에서 조금씩 팀을 만들어 갔다.
다행히 용평스키장에서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시즌권을 무료로 제공해 주었다. 점심은 학부모님들이 돌아가며 준비해 주셨다. 아이들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음식을 마련해 주시면, 우리는 잠시 스키를 멈추고 함께 밥을 먹은 뒤 다시 슬로프로 나갔다.
그렇게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아이들을 훈련시킬 수 있었다. 나는 혼자서 6년 동안 무료 스키레이싱팀을 운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선수들이 늘어났다.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벅찬 규모가 되었고, 아이들의 실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지도와 안정적인 지원이 필요했다. 나는 지역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코치 선생님들을 영입하고 후원회를 결성했다. 혼자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여러 사람이 함께 아이들의 꿈을 키워 가는 팀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여러분들의 후원과 응원 덕분에 훈련 여건이 좋아졌고, 선수들의 기량도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한때 우리 선수단이 전국체전에서 획득한 메달 수가 37개에 이를 정도였다. 처음에는 경제적인 부담 없이 스키를 타게 해 주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아이들은 그 기회를 발판 삼아 놀라운 성장을 보여 주었다.
특히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 횡계초등학교에서 선수단을 발족했을 당시에는 크로스컨트리 선수를 중심으로 육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알파인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우리 알파인팀 성적만으로 전국 초등학교 스키대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우승기를 높이 흔들며 카 퍼레이드를 하던 순간의 감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흘린 땀과 주변 사람들의 노력이 하나의 결실로 맺어진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알파인스키도 제대로 된 기회와 지원이 주어진다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었다.
선수들에게는 훈련만큼이나 장비도 중요했다. 스키는 장비가 없으면 시작하기조차 어려운 운동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서 다이내믹 스키를 수입하던 이대희 사장님과 유성철 사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 선수들에게 스키 장비를 무료로 지원해 주겠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스키와 부츠, 바인딩, 폴, 고글, 헬멧까지 무려 70여 대 분량의 장비를 한 차 가득 싣고 내려오던 날, 나는 마치 천하를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동안 장비가 부족해 마음 졸였던 아이들에게 마음껏 훈련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더욱 감사한 것은 두 분의 지원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후에도 무려 7년 동안 장비 후원을 이어 주셨다. 한 사람의 선의가 얼마나 많은 아이의 꿈을 지켜 줄 수 있는지 그때 절실히 느꼈다. 지금도 그 고마움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재미있는 것은 내 아이들도 다른 선수들과 똑같은 혜택을 받았다는 점이다. 나 역시 도움을 받은 셈이었다. 특히 딸 주영이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스키 장비 걱정은 없었으니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영이는 선수시절 내내 일등을 별로 놓쳐 본 적이 없는 선수이다. 그래서 기량에 따라 코치들이 딸에게 스키를 한 대라도 더 챙겨주려고 하면 나는 그것을 다른 아이들에게 주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아이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감독의 자녀라고 해서 괜한 특혜를 받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때는 그것을 그렇게 섭섭해하였으나, 세월이 지나 성장해 보니 아빠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더라라고 하여 기특하다는 생각도 하였다.
내가 대관령에서 아이들을 육성하기 시작하자, 고성 알프스스키장의 정인섭 선생님도 비슷한 방식으로 스키장 주변 지역의 선수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관령과 고성을 중심으로 한 두 축이 형성되었고, 지역의 어린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도 넓어졌다.
그 아이들이 자라 각종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마침내 2018 평창동계올림픽 무대에 서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어릴 적부터 스키를 타던 아이들이 세계의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함께 걸어온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선수 시절을 지나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지금은 훌륭한 지도교사나 데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이들을 볼 때면 더욱 그렇다. 후배들을 가르치고, 그 후배들이 또 다른 세대로 이어질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역사가 된다.
나는 그 연결고리의 한 부분에 함께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