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이 아닌, 103번
2014/3/31
교육이 시작되었다.
가입교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교육이 시작하고 나서 처음 4주 정도의 기간은 일반학이라고 불리는 체력/정신력 검증(?) 기간이었다. 교관들은 그 시간 동안 수영, 구보, 체조등을 통해 특수전을 수행할 수 있는 우리들의 기초적인 체력을 배양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단지 체력적인 것만을 키우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거였으면 모든 운동선수가 UDT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뭐 하나 자그마한 실수라도 꼬투리를 하나 잡아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였다.
예를 들면, 체력이 좋은 사람에게는 목소리가 작다고, 동료들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정신력이 좋은 사람들에게는 체력이 좋지 않다거나,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 얼차려라는 명목하에 괴롭히곤 했다. 사실 어떻게든 걸릴 수밖에 없는, 알지만 밟을 수밖에 없는 함정과도 같았다. 이런 얼차려의 종류는 너무나도 많았다.
운동장 좌에서 우로. 140명의 교육생 중에서 10명의 선착순 달리기. 못 들어오면 들어올 때까지 계속 반복.
딥탱크 입수 이후에 끝나지 않는 얼차려(체조, 관물대에 말리기) 더불어, 어떤 훈련이든 항상 포함되어 있는 약간의 폭력.
얼차려조차 일과 중 하나인 보통 일반학때의 오전의 스케줄은 오전 6시 15분. 아침에 일어나서 정렬로부터 시작한다. 뱃고동소리에 아침에 눈을 뜨면, 오전 체력훈련 때문에 긴장이 돼서 가슴 뛰는 소리가 스스로에게 들릴 정도였다.
6시 반.
일과정렬로 이상인원들을 체크하고. 목소리가 작다거나, 옷이 정갈하지 않다는 이유로 꼬투리를 하나 잡혀 딥탱크에 한두 번 정도 빠지고, 선착순을 한다.
그렇게 아침부터 비몽사몽간에 구르다 보면 밥 먹기 전에 턱걸이, 일명 밥걸이를 하는 시간이 온다. 선착순에 맞추어 턱걸이 앞에 8열 종대쯤으로 서있으면 1열씩 호각소리에 맞추어 올라가서, 다음 호각을 불면 그때야 내려오는 것이었다.
당연히 호각 하나에 턱걸이 하나가 아니었다.
만약, 호각을 한번 불었다면, 그냥 봉에 턱을 걸고 기다려야 했고, 군가를 시키면, 그 위에서 군가를 하고, 교관이 담배를 피우고 온다면 그렇게 위에 매달려서 기다려야 했다.
그런 이유로 훈련 첫 주차에는 턱걸이 4개만 하면 밥을 먹을 수 있었지만, 30 개를 하는 친구도 고작 4개를 못해 뺑뺑이를 도는 일이 많았다. 물론 나도 그중에 하나였다. 물론, 가끔은 호각을 빨리 불어주시는 교관님이 계셨지만, 대부분은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밥걸이를 빨리 통과하면, 빨리 배식을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다들 한창 잘 먹을 때라서, 늦게 가면 밥이 없다는 것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밥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다니.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매번 별것 아닌 그것 때문에 매일 아침 점심 저녁에 싸움이 일어나곤 했다. (싸움이 벌어졌던 또 다른 이유는, 정해진 식사 외에 야간 훈련이 없는 날에는 간식이 아예 없었던 것도 큰 이유였다. 그래서 더욱더 식사시간이 간절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전쟁 같은 아침식사가 끝난다.
이후 오전 일과는 체조/구보로 체력 훈련을 진행했었다.
힘들게 외운 UDT체조 순서를 기억해 내서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바로 또다시 얼차려였다. UDT체조는 정말 다양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동작은 기본적인 팔 굽혀 펴기였다.
기억에 남는 이유는 운동장이 날카로운 모래운동장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운동장에서 주먹을 쥐고 팔 굽혀 펴기를 시키니, 정권에 자꾸 상처가 생겼기 때문이다. 까진 정권으로 계속 주먹을 쥐고 푸시업을 하다 보니, 교육생 대부분들의 정권에 고름이 항상 차 있었고 고통스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나는 슬롯에 있을 때도 정권으로 푸시업을 많이 했기에, 주먹에 굳은살이 어느 정도 박여있어서 상처 때문에 힘들어하지는 않았다, 또 아파하는 티를 내는 순간, 바로 얼차려였다)
스쾃, 푸시업등 기본적인 맨몸 체조였지만, 문제는 그 반복 횟수였다. 이미 훈련으로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고반복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자세에서 조금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교관들은 그 틈을 귀신같이 캐치해서 우리들에게 또 얼차려를 주었다(자세가 완벽하더라도 얼굴을 찡그리거나 목소리를 크게 못 내면 얼차려대상이 되었다. 사실 이쯤 되면 이유는 필요 없었던 거 같다) 물탱크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적시고 나오는 것을 시작으로 운동장 구석구석을 얼차려라는 명목하에 '굴러'다녔다.
그렇게 구르고 나면 군복이 운동장 모래에 묻어 노란색이 되는데, 우리는 그 모습을 마치 인절미 같다 그래서 '인절미'라고 하곤 했다.
그렇게 운동장에서 구르던 우리의 모습이 지금도 머리에 선하다.
그렇게 한 시간여 정도 되는 맨몸 운동이 끝나고, 오전훈련의 끝(?)은 구보, 즉 러닝이었다.
러닝은 매번 조금씩 더 길게 뛰었는데,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미 체조와 얼차려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러닝을 시작하는 것이기에, 달리기를 잘하는 친구들도 떨어지기 십상이었다.
게다가 운동장을 하도 굴러서, 온몸(특히 사타구니)과 안 그래도 무거운 군화에는 모래가 가득했고, 물탱크에 한 번이라도 입수하는 날에는 군화, 군복 모두가 물에 젖어 몇 배는 더 무겁게 러닝을 뛰기도 했다(당연히 군복을 털 시간이나, 신발에 있는 모래나 물을 빼낼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가볍게 뛰기 위해 사제전투화를 사기도 하고, 군화에 칼로 구멍을 뚫어서 물 빠지게도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장비가 좋다고 잘 뛰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가벼운 군화와 젖지 않은 군복을 입고 있었도 떨어질 사람들은 떨어졌다. 그게 바로 나였다(세 번 달리기를 할 때 한번 정도는 낙오를 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거나 그렇게 달리기를 시작하면 오와 열을 맞춰서 뛰는데, 심지어 군가까지 불러야 했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냥 달리기도 버거운데 군가까지 부르면서 뛴다는 것은 미친것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나는 너무 힘들어서 군가 때 대부분 불렀지만, 몇 번 립싱크했고, 걸려서 교관님들께 뒤통수 맞은 기억이 아직도 난다.
어쨌든, 처음부터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다. 빌드업 달리기라서 후반부에 속도를 올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구간 200-300m 정도 남기고 교관단이 인터벌을 확 치는데. 그때 만약 낙오한다면 또 얼차려였다.
얼차려 하고 나서 밥을 먹으려면, 또 밥이 없었고, 이후 오후 훈련 때까지 쉬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이는 휴식이 안된 몸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결국 이는 퇴교로 가는 지름길이 되었다.
매번 오전의 체력훈련에서 너무나도 힘들어했던 나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줄어들었었다(물론, 나만 못한 건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못하면, 윽박지르는 교관과, 연대바카라임으로 인한 단체기합. 모든 것이 나를 긴장하게 했고 스스로 힘들게 했다. 그때부터 생각했다. 이곳에서 버텨서 UDT가 돼서 나가려면, 단지 체력적인 성장만이 아닌, 정신적인 성장이 동반되어야 하구나.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나만의 무엇인가가 있어야 되는구나.
그것이 내가 UDT에서 나만의 정신적 방패를 처음 만들게 된 계기이다.
그 방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