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열림 버튼

사십구재를 이틀 앞둔 목요일 오후, 팀장이 그를 회의실로 불렀다. 회의실 탁자 위에는 서류 한 장이 놓여 있었다. 팀장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말했다. “다음 달 인사에 주임으로 올라갈 거야. 미리 알고 있으라고.” 그는 잠깐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네. 감사합니다.” 그 말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일어났다.

자리로 돌아오니 메신저 창에 옆자리 대리의 축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소문은 그보다 먼저 사무실을 한 바퀴 돌았던 모양이었다. 그는 짧게 고맙다고 답하고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화면 속 숫자들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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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식탁에는 어머니가 새로 담근 김치가 올라와 있었다. 부엌 창가의 탁상 달력은 한 장이 넘어가 있었다. 할머니가 미리 적어둔 ‘반찬 하는 날’, ‘경로당’ 사이로, 토요일 칸에 어머니의 글씨가 한 줄 끼어 있었다. 사십구재. 어머니가 국을 뜨며 “회사는 별일 없고?” 하고 물었다. 그는 “네” 하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며 밥을 먹었다.

할머니가 앉던 자리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의자는 식탁 안쪽으로 반듯하게 밀려 들어가 있었다. 그는 그 의자 쪽으로 반찬 그릇을 조금 밀어놓았다가, 다시 제자리로 가져왔다. 진급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말할 사람이 한 사람 모자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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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퇴근 무렵, 장례식장에 왔던 그 신입이 보고서 한 부를 들고 머뭇머뭇 다가왔다. “저, 이거 한 번만 봐주실 수 있을까요? 팀장님께 올리기 전에요.” 표 하나의 합계가 맞지 않았다. 행 하나를 빼먹고 더한 것이었다. 그는 빨간 펜으로 그 칸에 동그라미를 쳐주었다.

신입은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몇 번이나 봤는데.” 그는 펜 뚜껑을 닫으며 말했다.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말을 하고 나니 그 말이 어디선가 들어본 말처럼 입에 익었다. 신입은 보고서를 가슴에 안고 꾸벅 인사한 뒤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뒤, 그의 바카라상 위에 작은 초코바 하나가 놓였다. 포스트잇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진급 축하드려요”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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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 할머니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어머니가 방바닥에 앉아 상자에서 꺼낸 할머니의 옷을 개고 있었다. 내일 절에 가져갈 옷이었다. 어머니 옆에는 큰 종이 가방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는 문을 조금 더 열고 들어가 어머니 맞은편에 앉았다.

어머니가 밤색 털조끼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단추 하나가 다른 색 실로 달려 있었다. 그는 그것을 무릎 위에서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접어 가방 안에 넣었다. 어머니가 “그건 할머니가 집에서 늘 입으시던 거야” 하고 말했다. 그는 “알아요” 하고 대답했다. 둘은 가방이 다 찰 때까지 말없이 옷을 갰다. 다 개고 나서 어머니가 불을 끄고 먼저 나갔다. 그는 어두운 방 안에 잠깐 더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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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그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걸음을 멈췄다. 새 슬리퍼와 헌 슬리퍼가 여전히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는 신발장에서 종이봉투 하나를 꺼내, 밑창이 다 닳은 헌 슬리퍼를 그 안에 넣었다. 새 슬리퍼는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았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버지가 운전을 했다. 라디오는 꺼져 있었다. 어머니는 조수석에서 옷을 담은 종이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두 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뒷자리에서 그는 슬리퍼가 든 봉투를 발밑에 내려놓았다. 동생은 아침 일찍 집에 와서 그의 옆자리에 탔다. 출발하자마자 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잠이 든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자, 차창 밖으로 단풍이 들기 시작한 나무들이 지나갔다.

할머니가 다니시던 절은 시내에서 한 시간쯤 떨어진 산 아래에 있었다. 법당 안에는 할머니의 영정이 놓여 있었다. 주민등록증 사진을 옮긴 그 얼굴이었다. 스님의 염불이 길게 이어지는 동안, 네 식구는 나란히 앉아 절을 올렸다. 그는 무릎을 꿇을 때마다 법당 바닥의 나뭇결을 내려다보았다.

염불이 끝나고, 스님이 할머니의 옷가지를 태울 테니 따라 나오라고 했다. 법당 뒤 마당 한쪽에 화로가 놓여 있었다. 어머니가 챙겨 온 할머니의 옷 몇 벌이 먼저 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종이봉투를 들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스님이 봉투 안을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헌 슬리퍼를 불 위에 올려놓았다. 고무 밑창이 오그라들며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동생이 그의 옆으로 와 섰다. 둘은 그 연기가 산 쪽으로 흩어질 때까지 아무 말 없이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조금 떨어져 서서 담배를 꺼냈다가, 불을 붙이지 않고 도로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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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아래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먹었다. 그릇을 반쯤 비웠을 때 아버지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그에게 물었다. “회사는 다닐 만하냐.” 그는 숟가락을 들던 손을 멈췄다. 언젠가 텔레비전 광고가 나오던 사이 할머니가 묻던 말과 거의 같은 말이었다. 그때 그는 “그냥 그렇지 뭐” 하고 넘겼었다.

“다음 달에 주임 달아요.” 식탁이 잠깐 조용해졌다. 어머니가 먼저 “어머, 잘됐네” 하고 말했다. 동생이 “오, 오빠 축하해” 하며 물컵을 그의 컵에 살짝 부딪쳤다. 아버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말했다. “어머니가 아셨으면 좋아하셨겠다.”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이고 남은 비빔밥을 마저 떠먹었다.

식당을 나서기 전, 그는 계산대 앞에 먼저 가 섰다. “제가 낼게요.” 아버지가 뒤에서 그의 손을 지갑째 밀어냈다. “됐다. 다음에 내라.” 아버지가 카드를 내미는 동안 그는 한 걸음 물러서서 아버지의 등을 보았다. 검은 양복 어깨에 향 냄새가 배어 있었다. 식당 문을 나서며 아버지가 그의 등을 한 번 툭 쳤다.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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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동생은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차가 산길을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오르자, 동생이 창밖을 본 채로 작게 물었다. “오빠, 나 회사 그만두면 이상할까?” 그는 고개를 돌려 동생을 보았다. 동생은 여전히 창밖만 보고 있었다.

그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네가 하고 싶으면, 안 이상해.” 동생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댔다가, 금방 떨어졌다. 운전석의 아버지도, 조수석의 어머니도 그 대화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앞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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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잠들기 전, 그는 핸드폰 캘린더를 열었다. 오늘 날짜에 “사십구재”라고 적혀 있었다. 화면을 몇 달 앞으로 넘기자, 지난번에 설정해둔 알림이 그대로 있었다. 할머니 생신. 매년 반복. 그는 그 알림을 지우지 않았다. 화면을 끄고 불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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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회사 엘리베이터 앞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는 맨 앞에서 엘리베이터에 올라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히려는 순간, 복도 끝에서 신입이 서류 봉투를 안고 뛰어오는 게 보였다. 그는 손을 뻗어 열림 버튼을 눌렀다. 닫히던 문이 다시 천천히 열렸다.

신입이 숨을 몰아쉬며 들어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는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는 버튼에서 손을 떼고, 숫자가 하나씩 바뀌는 걸 올려다보았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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