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고르는 데 십 분이 걸렸다. 같은 카페, 같은 커피잔, 조명만 조금씩 다른 사진 여섯 장 중에서 그녀는 결국 가장 자연스러워 보이는 한 장을 남겼다. 자연스러워 보이기 위해 가장 많이 골라야 했던 사진이라는 사실은, 올리고 나면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요즘 좋은 카페만 다니네” 하는 댓글이 달렸다. 그녀는 하트를 눌렀다. 좋은 카페가 아니라 그냥 회의 전에 십 분 남는 시간에 들른 곳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굳이 정정할 필요가 없는 종류의 오해였다.
*
회사에서 그녀는 언제나 먼저 손을 드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열릴 때마다, 팀장이 담당자를 찾을 때마다, 그녀의 손이 가장 먼저 올라갔다. 그 손이 올라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남들보다 짧아서가 아니라, 망설이는 시간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번 프로젝트도 그렇게 맡았다. 회의실을 나오며 그녀는 수첩에 해야 할 일을 촘촘히 적어 내려갔다. 목록이 길어질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할 일이 많다는 건 적어도 뭔가 하고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자리로 돌아와 그녀는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에 커서가 깜빡이는 동안, 그녀는 몇 번이고 같은 문장을 썼다 지웠다. 완벽하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과, 아무렇게나 시작해도 괜찮다는 걸 아는 마음이 오후 내내 자리를 바꿔가며 그녀를 붙잡았다.
*
저녁에는 지호와 그의 부모님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벌써 세 번째였다. 그녀는 옷장 앞에서 삼십 분 넘게 서 있었다. 너무 화려해도, 너무 수수해도 안 된다는 기준이 어디서 왔는지 그녀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 기준은 늘 그녀보다 먼저 와서 옷장을 뒤지고 있었다.
식당은 지호의 아버지가 예약한 곳이었다. 룸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녀는 테이블 위 식기 개수를 세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포크가 세 개, 나이프가 두 개. 어느 것부터 써야 하는지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안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녀를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요즘 회사 일은 어때요?” 지호의 어머니가 물었다. “재밌게 하고 있어요. 이번에 새 프로젝트도 맡게 됐고요.”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 웃음은 조금 전 옷장 앞에서 지었던 표정과 같은 근육을 쓰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지호의 아버지가 지나가듯 말했다. “우리 지호가 안목이 있어. 참한 사람 만났어.” 그녀는 감사하다고 답했다. 참하다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그녀는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한참을 생각했다. 답을 찾지는 못했다.
*
지호는 그녀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차 안에서 그는 그녀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손을 잡은 채로, 그녀는 지호의 손목에 걸린 시계를 곁눈질했다. 얼마 전 백화점에서 우연히 본 그 브랜드였다. 가격표를 확인하고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던 기억이 스쳤다.
“우리 집에 이번 주말에 갈래? 부모님이 편하게 오라고 하셨어.”
“어, 좋아. 시간 맞춰볼게.”
대답은 자연스럽게 나왔다. 마음 한구석에서 뭔가 조금 오그라드는 느낌이 든다는 걸, 그녀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지나쳤다.
*
집에 들어와 그녀는 화장을 지우며 거울을 오래 보았다. 오늘 하루 몇 번 웃었는지 세어보려다 그만두었다. 숫자는 세지 않았다.
핸드폰이 울렸다. 할머니였다. 그녀는 화면을 몇 초쯤 바라보다가 무음 버튼을 눌렀다. 지금 받으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어떤 목소리를 꺼내야 할지 가늠이 서지 않았다. 나중에,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나중에는 언제나 조금 더 나은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메시지가 하나 왔다. 오빠였다. “할머니한테 전화 좀 드려.” 그녀는 그 메시지를 읽고, 알겠다고 짧게 답장을 보냈다. 답장을 보내고 나니 마치 전화를 이미 드린 것 같은 착각이 잠깐 들었다.
*
주말, 지호의 집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넓고 조용했다.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조차 다르게 느껴졌다. 지호의 어머니가 내온 차를 마시며, 그녀는 이 집 어딘가에 자신이 앉을자리가 있기는 한 건지 잠깐 생각했다. 생각을 오래 하지는 않았다. 창밖 마당에서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지호가 물었다. “우리 부모님 어때? 편하지?” “응, 좋으신 분들 같아.” 그녀는 그렇게 대답하며 창밖을 보았다. 편하다는 말과 실제로 편안했는지는 다른 문제라는 걸, 그녀는 굳이 짚지 않았다.
*
그날 밤, 그녀는 오랜만에 본가 생각을 했다. 정확히는 할머니 생각이었다. 어릴 때 할머니가 끓여주던 김치찌개 맛이 문득 떠올랐다. 언제 마지막으로 먹었는지 헤아려보려 했지만, 정확한 날짜는 나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볼까 잠깐 핸드폰을 들었다가, 그녀는 도로 내려놓았다. 시간이 늦었다는 핑계를 스스로에게 댔다. 사실 지금 이 시간이 아니어도, 그녀는 아마 다른 핑계를 찾았을 것이었다.
SNS 앱을 열어 그녀는 오늘 올린 사진의 좋아요 개수를 확인한다. 숫자는 어제보다 조금 늘어 있었다.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적어도 화면 밖 누군가는 믿어주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숫자를 보는 짧은 순간, 그녀는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