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가지로 더 단단한 나무가 되어

나를 낫게 한 숲의 위로

by진정


제대로 걷기 전부터 아빠 엄마 품에 안겨 산에 올랐습니다. 유치원 무렵엔 제법 높은 봉우리까지 두 발로 올랐고, 이리저리 뛰어다닐 무렵에는 숲을 놀이터 삼아 온몸으로 흙과 부대끼며 놀았어요. 고등학교 시절에는 등산부에 들어가 주말이면 산을 탔으니, 돌이켜보면 어린시절부터 늘 숲이 제 곁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어요. 기쁠 때도, 슬프고 힘들 때도 공원이나 산을 찾았습니다. 무너진 마음을 안고 나무들 사이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걷다 보면, 어느새 숲의 호흡에 동화되어 그 일부가 된 듯한 묘한 안도감이 들었어요.


가슴속까지 스며드는 나무의 푸름에 마음이 순해지고, 닿을 듯 청명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 막혔던 가슴이 시원해졌습니다.


해를 머금고 반짝이는 물과 뺨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은 "다 괜찮아질 거야"라며 등을 토닥여주는 것만 같아요. 불안한 세상 속에서 언제나 같은 자리를 지키는 숲은 이렇게 저의 믿음직스러운 친구였습니다.


암이라는 병을 겪으며, 자주 숲을 찾아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답답함, 타인에게 받은 상처들. 그 모든 괴로움은 결국 세상이 뜻대로 움직여주기를 바랐던 나의 억지스러운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말없이 서 있는 나무들이 말하지 않고도 알려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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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걸음으로 숲을 거닐다 마주친 작고 예쁜 꽃들은 제게 또 다른 경이로움이었습니다. 차갑고 단단한 돌틈을 기어이 비집고 피어난 여린 꽃잎을 가만히 들여다볼 때면, 그 작은 생명이 뿜어내는 강인한 생명력에 깊은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굳어버린 제 삶에도 다시금 생기가 돌 수 있다고 다정하게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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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어 올리면, 바람에 흔들리는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부서지듯 쏟아져 내렸습니다. 빛무리가 되어 내려앉은 볕은 상처 입고 얼어붙은 제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숲이 내어주는 그 고요하고 눈부신 품. 그 안에 가만히 머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따뜻함으로 차올랐습니다.


자연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제게 위로를 건넵니다.


"해가 뜨면 뜨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살아도 좋아."


더운 날에는 조금 늘어지고 추운 날에는 움츠러들어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나무처럼 나도 땅에 뿌리를 굳건히 내린 채, 하늘을 향해 숨 쉬기를 멈추지 않으면 괜찮을 것이라고요. 그렇게 묵묵히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뿌리는 더 깊어지고, 마른 줄기에서 새잎이 돋아나고, 봄 볕에 예쁜 꽃이 피어나는 날도 올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할 것도, 슬퍼할 것도 없습니다. 모진 비바람에 가지가 부러지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 덕분에 세상에 단 하나뿐인 멋지고 단단한 나무로 자라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더 넓고 풍성해진 제 가지와 이파리 아래서, 언젠가 길을 잃은 누군가가 비와 볕을 피하며 쉬어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상처를 딛고 더 단단하게 뻗어나갈 나의 삶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숲처럼 찬란하고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매일 아침을 밝혀주는 태양과 어둠을 쓰다듬는 달빛만으로도, 우리는 매일 새롭게 행복해질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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