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들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위안
냉장고 문을 열면 쏟아지는 차가운 빛.
그 안에는 조금 시들해진 깻잎과 끄트머리가 말라버린 당근, 물기가 마른 두부가 웅크리고 있습니다.
구석에 밀려나 서서히 생기를 잃어가는 그 초라한 조각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문득 그 안에서 지쳐있던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무기력에 빠져 스스로를 방치했던 시간들, 이리저리 치여 상처받고 물러져 버린 내 마음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초라한 조각들을 기꺼이 도마 위로 불러냅니다.
상처 나고 물러진 곳은 칼끝으로 다정하게 도려내고, 시든 잎은 찬물에 담가 다시 푸른 숨을 불어넣습니다. 쓸모없어 보이던 부분을 덜어내고 씻어내는 과정은, 어쩌면 내 마음속의 곪은 상처들을 꺼내어 다듬고 어루만지는 시간처럼 느껴집니다.
차갑게 굳어버린 두부 역시 양손으로 물기를 꽉 짜내어,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단단하고 쫄깃한 결을 다시 살려냅니다.
다듬고, 썰고, 볶아내는 이 단순한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어지러운 세상의 소음은 사라지고, 내 마음에 잔잔한 평온이 찾아옵니다.
이윽고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 위로 재료들을 조심스레 밀어 넣습니다.
타닥타닥,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채소들이 볶아지는 동안 제각기 상처 입고 초라했던 조각들은 뜨거운 기름과 열기를 만나 전혀 새로운 윤기와 빛깔을 띄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내가 진정으로 바랐던 나 자신의 모습도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들고 다쳤던 어제의 허물을 벗고, 따뜻함을 머금은 채 내가 원하는 단단하고 생기 있는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눈부신 과정.
냉장고 구석에 방치되었던 익숙한 조각들이 내 손끝을 거쳐 온전하고 근사한 한 접시로 만들어지는 순간. 그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무너졌던 내 일상을 다시 세워 올리고 온전히 회복시킬 힘이 내 안에 있음을 스스로 깨닫는 일이었습니다.
화려한 식재료나 주방도구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상처 나고 시들해져 구석에 남겨진 것들조차 애정 어린 손길을 거치면, 불 위에서 다시 뜨겁게 살아나 우리를 일으켜 세울 단단한 위로가 됩니다. 당신의 식탁 위에도 스스로를 보듬어 낼 따뜻한 한 그릇이 놓이기를 바랍니다.
상처 입고 지친 당신의 오늘이,
당신의 손끝에서 마침내
찬란한 내일로 피어나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