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마주하는 밥상 위에서 건져 올린 따뜻한 이야기들
"진아, 밥 먹자!"
붉은 노을이 바다를 천천히 물들일 때면 어머니는 늘 학교 운동장으로 날 찾으러 오셨다. 교문 앞에 서서 내 이름을 크게 부르시던 목소리는 지금도 또렷하다.
40여 년 전 바닷가 시골 마을,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곳은 학교 운동장뿐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집에 가방만 던져두고 친구들과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공을 차고 오징어 게임을 하며 해가 질 때까지 정신없이 놀다 보면 밥때를 훌쩍 넘기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날 데리러 오셨다. 조금만 더 놀고 싶다가도 "밥 먹자"라는 한마디에는 군말 없이 집으로 향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온 가족이 함께 밥상에 둘러앉는 것은 우리 집에서 중요한 약속이었다.
어린 시절 밥상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세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자리가 안겨주던 편안함만큼은 선명하다. 부모님은 하루 동안의 일상을 나누셨고, 나와 동생은 학교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경쟁하듯 떠들어댔다. 어머니가 정성껏 차려주신 밥과 가족의 웃음소리가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밥상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자리가 아니었다. 하루를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살피며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매일 차려지고 치워지는 평범한 식탁은, 세상을 마주하기 전 우리 마음을 안아주던 작고 깊은 바다였다. 비록 예전처럼 온 가족이 매일 함께 식사하는 풍경은 희미해졌지만, 음식이 품은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온기를 전한다. 계절이 바뀌고 세상이 변해도 음식에는 언제나 사람의 시간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꼬막을 먹을 때면 자식을 위해 갯벌을 일구던 어머니들의 손길이 떠오른다. 자염을 복원하던 외삼촌의 땀방울을 되새길 때면 '맑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하는 질문을 품게 된다. 각기 다른 재료가 제맛을 지키면서도 어우러져 하나의 음식을 이루듯, 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가만히 되짚어보게 하는 비빔밥은 어떤가. 음식은 늘 사람을 향한다. 식재료 하나에도 오랜 역사와 문화가 스며 있고, 그 너머에는 이름 없이 살아온 수많은 이들의 삶이 숨어 있다. 나는 그 숨은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참 좋다. 음식을 읽는 과정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다. 소가 되새김질하듯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느리게 곱씹는 일. 그것은 결국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보는 방법이지 않나 싶다.
내 이야기는 소박한 밥상에서 출발한다. 밥상 위에 음식 하나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의 삶을 마주하게 된다. 거창한 여정은 아니지만, 늘 가까이 있었기에 오히려 놓쳤던 풍경들을 독자들과 함께 천천히 거닐어보고 싶다. 오늘도 우리는 저마다의 식탁에 앉아 하루를 마무리한다. 글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당신의 식탁에 잠시 머무는 동안, 아련한 추억 하나를 떠올리고 가족의 온기를 다시금 느끼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다정히 바란다.
오늘 저녁, 당신의 식탁에도 따뜻한 이야기 한 편이 정갈하게 오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