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안의 자식'이라고 했던가. 딸아이는 어느덧 엄마, 아빠와 같이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더 좋아한다. 방학이라 일찍 학원 수업이 끝난 딸아이가 친구들과 놀고 오겠다며 연락이 왔다. 제 딴에는 다 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부모 마음은 아직도 물가에 내놓은 갓난아이처럼 불안하기만 하다. 특히 요즘처럼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폭력이나 살인 예고 등 슬롯 분위기가 흉흉할 때면 걱정은 더 커진다. 당연히 어디서 뭘 할지 딸아이에게 물어봤다. 기다렸다는 듯 점심으로 마라탕을 먹고 노래방에 간단다. '마라탕 -> 코인 노래방 -> 인생 네 컷'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요즘 10대들의 필수 일정이다. MZ 세대를 넘어 알파 세대가 즐기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예전만큼 폭발적인 전성기는 아닐지 몰라도, 여전히 마라탕은 매운 떡볶이와 함께 아이들의 소울 푸드(soul food)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네 골목의 마라탕 집에 가보면 혼밥족부터 삼삼오오 모여 커다란 마라탕 그릇을 앞에 두고 즐겁게 머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는 다양한 마라탕 즉석요리가 판매되고 마라 부대찌개, 마라 족발, 마라 치킨 등 마라 소스를 이용한 음식들도 유행이다. 특히 마라 떡볶이는 포털 사이트 연관 검색어 최상다에 올랐을 정도로 인기였다. 아이들, 특히 여학생들이 왜 이토록 마라탕에 열광하는 걸까? 사뭇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알파 세대의 딸을 둔 아빠로서 그 인기의 비결을 이해해 보고자 직접 마라탕을 먹어 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궁금증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마라탕(麻辣燙)의 한자음은 ‘마랄탕’이다. 마라는 중국 사천 지역의 향신료로 마라의 麻(마)는 “마비되다”라는 뜻이 있고 辣(랄)은 “맵다”라는 의미니까 ‘마라’는 혀가 얼얼하게 마비될 정도의 매운맛을 가졌다는 뜻이다. 중국 서부 내륙지역 쓰촨의 길거리 음식인 ‘마오차이’에서 유래됐다는 마라탕은 2010년 중반부터 우리나라에 알려졌고 매운맛을 즐기는 젊은 여성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면서 대중화되고 있다. 대부분 마라탕 식당은 탕 재료를 뷔페 형식으로 진열해 놓고 손님이 그릇에 먹고 싶은 걸 담아 무게를 달아 계산한다. 주방에서 사골 육수에 재료를 넣고 끓여 완성해 주는 형식이고 매운맛의 단계를 선택할 수 있다. 마라탕에 사용되는 주요 재료는 쇠고기, 양고기, 납작 당면, 건두부, 어묵, 연근, 목이버섯, 팽이버섯, 청경채 등 다양하다. 마라탕이 인기 있는 이유는 얼얼한 매운맛도 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재료만을 적당량 골라 먹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기 개성이 강한 MZ, 알파 세대들의 취향에 딱 부합하는 음식이다. 또 음식을 고르고 각자의 마라탕을 맛보고 하면서 친구들과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유대감을 형성해 간다. 이래저래 마라탕은 요즘 세대 취향 저격 음식이다.
‘맵다’라는 건 짜고 달고와는 달리 맛의 개념보다는 통증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매운맛은 우리 머릿속에 강한 인상을 남기고 오랫동안 기억된다. 그 잔류하는 기억이 익숙함을 가져와 매운맛에 중독되는 것이다. 기성세대의 떡볶이가 그랬고 지금의 마라탕이 그렇다. ‘맵부심’을 부리는 이들이 많은 것도 통증을 이겨 내야 하는 음식이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맵부심이 강한 사람들은 마라탕 4단계를 먹는 인증 사진을 찍어 자신의 위대한(?) 도전을 만천하에 알리고 자부심을 느낀다. 전 세계가 K-POP을 중심으로 한류에 열광하는 지금, 유독 우리나라 젊은 친구들이 중국 음식에 빠져 있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이 또한 문화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중국 쓰촨의 마라탕은 우리나라 음식과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음식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옛날 떡볶이로 학업 스트레스를 덜어내던 기성세대처럼 MZ 세대는 마라탕으로 입시 경쟁의 중압감과 학원 스트레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자 하는 듯하다.
고통을 통증으로 달래는 거라 안쓰럽긴 하지만 젊은 세대들의 매운맛에 대한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계속될 것 같다. 지금의 젊은 세대처럼 기성 세대도 젊은 시절엔 삶이 힘들고 버티기 어려웠으며, 그때도 매운맛은 인기를 누렸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만 남아 있는 것 같지만 돌이켜보면 내 10대, 20대 시절도 죽을 것처럼 힘들었던 일들이 많았고 역시나 매운맛이 필요했던 것 같다. 앞으로 매운맛의 유행이 또 어떻게 바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음식에는 미래 우리 젊은 세대들의 고민과 힘듦이 반영될 것이다. 언제나 그들에게는 입시, 친구, 사랑, 취직 등 극복하고 버텨 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에.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 마라탕을 먹으며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낄수 있다면! 그 시간만이라도 아무런 걱정 없이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바랄 뿐이다.” 로망스 드빌레르는『모든 삶은 흐른다』에서 인생을 제대로 산다는 건 쓸데없는 걱정으로 나 자신을 가두지 않는 것이라며 우리에게 자유를 미루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한편으론 힘들고 고달픈 젊은 세대들이 음식으로나마 자유를 마음껏 즐겼으면 하는 마음이다.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 마라탕을 먹으며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시간만이라도 아무런 걱정 없이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바랄 뿐이다.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건 타인과 소통을 위한 신뢰를 보여 주는 것이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윌리 웡카가 움파룸파족의 신뢰를 얻기 위해 그들의 음식인 쐐기벌레를 먹는다. 몇몇 부모들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마라탕을 먹고 노래방에 가는 걸 탐탁지 않게 보기도 한다. 하지만 어른들의 그 근거 없는 걱정은 자신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탈출구 없는 방에 가두는 것과 같다. 음식은 문화고 문화는 변화한다. 학창 시절 우리가 매콤한 떡볶이를 먹으며 담임 뒷담화를 했던 것처럼 젊은 세대들도 얼얼한 마라탕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
MZ 세대, 그리고 딸아이와 같은 알파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마라탕뿐만 아니라 그들이 즐기는 음식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된장찌개와 삼겹살이 더 친숙한 나에게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딸과 소통의 폭을 넓히기 위해 노력해 봐야겠다. 음식은 소통과 신뢰의 좋은 도구 중 하나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