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의 덕을 품고 있는 감태와 매생이

어릴 적 햇살 좋은 겨울날이면 외할머니는 중문 앞에서 김을 만들곤 하셨다. 세숫대야 정도 크기의 고무 대야에 물을 받고 대나무 김발을 놓는다. 그 위에 뻥 뚫린 사각 나무틀을 올려놓고 전날 바닷가에서 뜯어 온 김 한 뭉치를 김발에 올려놓고 손을 휘젓는다. 그럼 봄날 아지랑이가 피어나듯 하늘에 실구름들이 흘러가듯 뭉쳐 있던 김이 펼쳐지고 흩어져 자리를 잡는다. 허공에 손을 휘저어 마법을 부리는 요정 같은 손놀림에 순식간에 김 한 장이 만들어진다. 까칠까칠한 할머니의 손에서 그렇게 부드러운 손놀림이 나오는 건 평생을 해 온 일이라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나 싶었다. 바닷속에서 새 생명이 탄생하듯 대야에서 김이 만들어지는 모습이 신기했던 나는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바라보곤 했었다. 지금도 문득 햇살 좋은 겨울날이면 그 생생한 풍경과 함께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리워진다.

할머니가 김을 하실 때마다 눈이 가는 놈이 하나 있었다. 한쪽 구석 대나무 바구니에 담겨 처박혀 있던 파란 감태였다. 김을 채취할 때 따라오는 놈이었다. 김 만들기가 끝나야 녀석의 차례가 온다. 그때까지 천덕꾸러기처럼 구석에서 기다려야 했다. 왠지 모르게 난 그 감태에 신경이 쓰이곤 했다. 감태도 김 만들듯 하지만 김처럼 촘촘하게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감태는 얼키설키 짜인 실타래같이 만들어진다. 겨울 햇살에 잘 말린 김은 100장씩 묶어 장에 내다 팔아 농가의 부수입이 됐지만, 감태는 대부분 집에서 반찬으로 먹었다. 아궁이에서 갓 구운 감태를 손으로 찢어 입에 넣으면 솜사탕 녹듯이 사르르 혀에 감긴다. 어릴 적에는 쌉쌀한 맛보다는 그 촉감이 좋아 먹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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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귀한 대접을 받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태는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었다. 감태가 대중에게 알려진 건 방송의 힘이다. 충남 태안과 서산, 전남 장흥과 무안 등 서해안 지역에서 주로 감태김이나 초무침으로 먹는 감태는 식용 녹조류로 정식 명칭은 ‘가시파래’다. 깊은 바닷속에서 서식하는 다시마와 비슷한 갈조류의 감태와는 다른 것이다. 억지로 이름을 뺏을 수는 없지만, 달 감(甘)자에 이끼 태(苔)를 써 ‘감태(甘苔)’라고 하니 쓴맛 나는 다시마과의 감태보다 단맛 나는 가시파래가 감태라는 명칭에 더 잘 어울리지 않나 싶다. 다시마과의 감태는 요오드, 칼륨 등의 영양소가 풍부해 건강식품으로 활용될뿐더러 전복의 주 먹이이기도 하다. 이런 감태의 쓰임과 이름으로 인해 대중에게는 가시파래와 감태에 대한 정보의 혼선이 심하다. 인터넷에 보이는 제주산 감태 추출물로 만든 건강식품은 갈조류 감태이니 우리가 김으로 먹는 감태와 혼동하지 않길 바란다.


감태와 가시파래가 이름으로 인한 혼선이 있다면 생김새가 비슷해 헷갈리는 일도 있다. 매생이, 파래가 그렇다. 매생이는 순우리말로 “생생한 이끼를 바로 뜯는다”라는 말이다. 매생이는 허영만 작가의 『식객』에 나오면서 인기를 끌었으니 대중에게 알려진 지 오래되지 않은 음식 같지만,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누에가 만든 비단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촘촘하여, 검푸른 빛깔을 띤다.”, 맛은 “국을 끓이면 연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그 맛은 매우 달고 향기롭다.”라고 했으니 조선 시대 조상들도 매생이를 식용했음을 알 수 있다. 왜 우리에게 오랜 세월 잊혔는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과음한 다음 날 매생이굴국 한 그릇이면 속 쓰림이 풀려 다시 저녁에 술 약속을 잡을 마음이 생길 정도로 해장에 특히 좋다. 그뿐만 아니라 칼로리가 낮고 식이섬유와 비타민이 풍부해 다이어트와 피부 미용에도 좋다. 예전에는 김 생산에 방해된다고 염산 세례를 받을 정도로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남도의 특산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매생이로는 국밥, 부침개, 무침 등으로 먹고 최근에는 라면과 파스타에도 활용되고 있다.


파래는 갈파랫과에 속하는 해조로 검은빛이 나고 특유의 향이 강하다. 파래는 볶음이나 무침 등으로 섭취하며 식물성 섬유소가 풍부해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다. 가시파래나 매생이와 달리 파래는 오염에도 강한 편이다. 줄기의 굵기로 보면 파래가 가장 굵고 감태, 매생이 순이다. 그래서 매생이에는 “미운 사위 매생잇국 준다.”라는 속담이 있다. 섬유질이 촘촘해 팔팔 끓인 매생이는 김이 많이 나지도 않고 쉽게 식지도 않아 미운 사위가 오면 매생잇국으로 골탕을 먹였단다. 지금은 상황이 역전돼서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건강식이 됐다.

김 생산에 방해된다고 갖은 구박을 받던 감태, 매생이, 파래는 이제 김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으며 지역의 명물로 환영받고 있다. 그 이유는 웰빙 바람을 타고 건강식품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감태(가시파래)에는 항산화 작용과 노화 방지, 혈당 수치 개선 및 항당뇨 효능이 있고 심혈관 건강을 돕는 효과가 있다. 미역이나 다시마에 비해 10배 이상 많은 폴리페놀 성분을 함유한 감태는 중추신경계의 안정 효과를 가져와 불면증 개선뿐만 아니라 불안과 경련 완화에도 효과가 있다. 또 식도염, 위궤양, 소화성궤양 예방에 좋고 간 기능 강화에도 효과적이며 빈혈 개선과 동맥경화 예방 등에 효과적인 건강식품이다.
매생이 또한 대표적인 겨울철 건강식품이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매생이는 우리 몸의 독소 배출에 도움을 주고 소화 흡수가 잘돼 다이어트에 좋다. 철분과 칼슘 성분도 다량 함유되어 있어 빈혈과 골다공증에 좋다. 특히 매생이에는 아스파라긴산이 다량 포함되어 있어 숙취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 파래에도 칼륨, 요오드, 칼슘, 식물성 섬유소 등 우리 몸에 좋은 성분이 골고루 함유되어 있어 성인병이나 비만 예방에 도움을 주는 건강식품이다. 파래의 메틸 메티오닌(Methionine) 성분은 니코틴 해독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구강 내 세균과 구취를 제거해 줘 치주염 예방에 도움을 준다.


구박받고 천대받던 감태, 매생이, 파래가 이젠 건강식품으로, 지역 특산물로, 계절 별미로 당당히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김도 감태나 매생이에 밀리는 듯하지만 고려인삼과 더불어 한국 최고의 특산품으로 대우받으며 전 세계 국가에 수출되고 있다. 언제 다시 감태의 가치를 넘어설지 모를 일이다.
세상에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 난 학창 시절부터 다양한 모임의 회장·총무직을 맡았었다. 하지만 철이 들면서 ‘그동안 내가 모임을 정말 잘못 운영했었구나.’를 깨닫고 지금은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있다. 예전에 난 내 마음대로 모임을 끌고 가려고만 했다. 내 생각이 모임의 운영 방침이고 규칙이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회원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했다. 이런 운영 방식 때문인지 내 신상의 변화나 변심으로 모임이 축소·변경되거나 해체된 일도 종종 있었다. 독단적이었고 교만함의 결과였고 모임 사람들에게 죄송스럽고 미안한 일이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가 겸손이다.”라고 하며 겸손한 마음을 강조했다. 겸손은 교만을 물리치고 자기 자신을 높이거나 낮춤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한다. 바다의 생명력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김, 감태, 매생이, 파래들이 지금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건 있는 그대로 자기 모습을 지켜 왔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겸손은 평화를 가져오는 힘이고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러기에 감태나 매생이가 품은 겸손처럼 그런 마음을 키워 나간다면 언젠가는 소통하며 같이 발전하는 모임을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혹시라도 그런 날이 나에게 다시 주어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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