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자타 공인 국수 마니아다. 골목길 국숫집에서 찐한 멸치 육수 냄새를 풍기며 가게 간판을 다 가릴 정도의 하얀 김이 피어오르면 자연스럽게 나는 그 집 문턱을 넘는다. 특히 옷깃을 여미고 시린 손을 주머니에 넣는 날에는 따끈한 국수 한 그릇이 간절하다. 회사 식당에서 면이 나오는 날이면 밥을 아예 뜨지 않는다. 배식하시는 분은 날 보자마자 묻지도 않고 2인분의 국수를 하나로 만들어 주신다. 솔직히 한 그릇 더 먹고 싶지만, 직원들의 시선을 의식해 참는다. 내 국수 사랑은 어릴 적에도 만만치 않았다. 어머니가 점심으로 국수를 하시면 큰 냉면 대접에 최소 3인 분을 담아 주시고 그거에 더해 면 사리를 따로 준비해 주셨다. 또 어머니는 잔치 국수와 비빔국수를 같이 하신다. 보통 5~6인분을 먹고 나서야 젓가락을 놓는다. 그런 나를 닮아 그런지 딸아이도 면 사랑이 보통이 아니다. 딸아이와 라면 3개를 끓이면 마지막 젓가락질에 눈치를 봐야 하고, 나와 같이 잔치 국수와 비빔국수를 나란히 놓고 먹는다. 대를 잇는 이런 나의 국수 사랑은 자연히 국수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국어사전에 국수는 ‘밀·메밀·감자 가루 따위를 반죽한 다음, 반죽을 손이나 기계 따위로 가늘고 길게 뽑아낸 식품. 또는 그것을 삶아 만든 음식’이라고 간결하게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국수는 내 삶에 많은 추억거리를 만들어 왔고 인류 역사에서도 무수한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는 음식이다.
우리나라에서 국수는 삼국시대나 남북국 시대에 전해졌다고 추정하지만, 구체적인 문헌 증거는 없다. 다만 송나라 서긍이 1123년 고려의 사신으로 와서 기록한 『고려도경』에 “나라 안에 밀이 적어 장사치들이 화북 지방에서 사 오므로 면의 값이 대단히 비싸 성례(成禮) 때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 국수는 귀한 음식으로 취급된 듯하다. 『고려사』에도 “제례에는 면을 쓴다.”라고 했으니, 혼례나 잔칫날의 특별한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미혼자에게 결혼 언제 할 거냐는 뜻으로 “국수 언제 먹여 주냐?”라고 말하는 것도 이때의 풍습이 이어진 거라고 볼 수 있다.
조선 시대의 조리서에 의하면 메밀, 녹말, 밀가루, 감자, 콩, 옥수수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든 50여 종의 국수가 나오며 소고기나 꿩 등으로 육수를 사용한 기록이 있다. 메밀과 밀, 녹말을 주로 사용하다 6·25 전쟁 이후 미국의 원조로 대량으로 밀가루가 들어오면서 그로 만든 음식들이 급격히 늘어났고 국수도 예외가 아니었다. 모두가 궁핍한 전쟁통에 피난민들은 뜨끈한 국물과 면으로 허기와 지친 마음을 위로받았을 것이다. 주식인 쌀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1950년대부터 시작된 정부의 혼분식 장려도 국수를 대중화하는 데 일조했다. 설렁탕이나 추어탕 등에 소면을 넣어 먹는 것도 혼분식 장려의 영향이다. 쌀만으로 충분치 않았던 탄수화물을 섭취하기 위한 궁여지바카라이었다.
국수는 지역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음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역 농산물이나 특산물을 이용해 만든 특색 있는 국수를 즐기고 있다. 흑돼지 고명을 올린 제주도 고기국수, 밀가루와 전분을 섞어 만든 면과 돼지고기 육수를 내서 만든 부산 밀면, 걸쭉한 콩물을 국물로 하는 전라도 지역의 콩국수가 있다. 지금도 적응하기 어렵지만, 연애 초 여수 출신 아내가 콩국수에 설탕을 사정없이 넣어 먹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었다. 바지락이 듬뿍 들어가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인 서해 지역의 바지락칼국수, 말린 옥수수로 올챙이처럼 짧고 뭉뚝하게 만든 강원·영서 지방의 올챙이 국수, 메밀면에 양념장, 잘게 썬 김치 등을 얹고 동치미 국물이나 육수를 넣어 비벼 먹는 강원도 지역의 막국수, 회국수라고도 불리는 감자 전분을 이용해 만드는 함흥냉면, 메밀로 만드는 평양냉면 등 지역마다 고유한 국수를 만들어 먹고 있다.
국수는 긴 모양 때문에 예로부터 장수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 뜻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음식이 면 한 가닥으로 국수 한 그릇을 만들어 내는 중국의 ‘일근면’이다. 일근면을 뽑아내는 요리사의 모습은 현란한 무용수의 춤사위 같기도 하고 무술 고수의 날렵한 몸놀림 같기도 하다. 먹방 유튜버가 일근면으로 면치기를 한다면 숨이 차서 쓰러지고 말 것이다. 일근면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극단적 음식인 셈이다. 아이가 건강하고 오래오래 살길 기원하며 돌잡이에 국수를 올려놓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장수는 인간의 가장 큰 소망이다. 국수는 장수뿐만 아니라 결혼한 이들의 백년해로를 기원하는 뜻도 담고 있다. 국수처럼 두 사람의 연이 길게 이어지길 바라는 것이다. 미혼자에게 “국수 좀 먹여 달라.”라는 말은 단순히 결혼하라는 말이 아니라 “좋은 사람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라.”는 기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미혼자들이여! 국수 먹여 달라는 말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기를.
국수는 장수와 영원한 사랑과 행복, 추모 등의 뜻을 담고 있으며 그런 날 찾아온 귀한 손님들을 대접하는 음식이다. 잔치 국수라는 말도 국수로 손님을 대접한 데서 유래됐다. 이용기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면상(麪床)이라고 하는 ‘국수장국상’과 ‘국수비빔’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각각 “국수장국상에는 편육 한 접시라도 놓으니 대접 중에 낫고, 온갖 잔치나 아침, 점심으로 안 쓰는 데가 없다.”라고 했고 “국수비빔에는 김치, 편육, 고기볶음, 버섯볶음…,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인데, 귀한 재료가 여러 가지 들어가야 더 귀한 음식이라 여기는 풍조가 있는 시대라서 그런 듯하다.”라며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귀한 음식이었다는 걸 알려 주고 있다.
요즘은 짜장면이나 냉면을 먹을 때 가위로 면을 잘라 장수 기원의 의미가 퇴색하는 듯하고 도시 문화와 주거 형태의 변화로 잔칫날 뷔페가 일반화되면서 결혼식장에서 국수가 사라지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 국수는 최고의 기복과 손님 대접의 융숭한 음식이었다. 지금도 시골집에 가면 가끔 어머니께 점심은 간단히 국수를 먹자고 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이 간단한 것이 아님을 결혼하고 아내를 통해 알았다. 평생 어머니는 가족을 위해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잰 손놀림으로 국수를 해 주셨다. 그 국수에는 우리 조상들이 그래 왔던 것처럼 가족의 무병장수와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잔치 국수의 따뜻한 국물에서 어머니의 사랑과 비빔국수의 매콤함에서 가족에 대한 기원을 느끼며 오늘도 큼지막한 대접의 국수를 다 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