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대신할 수 없는 것

AI는 내 경험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by김봄날



AI는 글을 쓴다.
그림도 그린다.
이야기도 만든다.

처음에는 조금 놀랐다.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한 장면을 설명하면 그림이 나왔다.
어떤 분위기의 문장을 원하는지 말하면 문장이 만들어졌다.
막혀 있던 이야기에 새로운 방향도 제시했다.

예전 같으면 며칠씩 고민했을 일을
AI는 몇 분 만에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작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


AI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혼자 바카라상 앞에 앉아 한 문장을 붙잡고 있기보다
AI에게 먼저 질문을 던져 보기도 한다.

“이 장면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이 문장은 너무 설명적이지 않을까?”

“아이의 마음을 보여주려면 어떤 장면이 필요할까?”

AI는 꽤 많은 답을 내놓는다.

그중에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답을 읽고 있으면 다시 질문이 생긴다.

“그런데 나는 정말 이렇게 쓰고 싶은가?”

그 순간부터 이야기는 다시 내 몫이 된다.

AI가 수십 개의 문장을 만들어 주어도
그중 어떤 문장을 남길지는 내가 결정해야 한다.

AI가 여러 장의 그림을 보여주어도
그중 어떤 그림이 내 이야기와 맞는지는 내가 느껴야 한다.

결국 AI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은
만드는 일의 일부이지
왜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는 아니었다.

내가 어린 공주를 쓴 이유

내가 어린 공주를 쓰기 시작했을 때도
처음부터 완성된 이야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린 공주라는 아이가 있었고,
그 아이 옆에는 별가시가 있었고,

그에게 별이 있었고,
그 별 주변에는 가시가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쓰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가시는 단순한 가시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상처였고,
누군가에게는 기억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쉽게 말하지 못했던 마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가시가 별이 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상처가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빛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이것은 AI에게 “가시가 별이 되는 이야기를 써줘”라고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 이야기를 왜 쓰고 싶은지는
내가 살아온 시간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
아이들의 말 한마디에 오래 마음이 남았던 순간,
교사로 살아오며 보았던 수많은 표정들.

그것들이 조금씩 이야기 속으로 들어왔다.

AI는 그 경험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작가는 경험을 이야기로 바꾸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랫동안 교사로 살았다.

수많은 아이들을 만났고
수많은 수업을 했고
수많은 하루를 보냈다.

그때는 그것이 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지나가는 하루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돌아보니
그 하루하루가 모두 내 안에 남아 있었다.

아이의 한마디.

교실에서의 작은 사건.

퇴근길에 문득 떠오른 생각.

혼자 걸으며 오래 생각했던 질문.

처음 바카라을 내고
출판 계약서에 서명하던 순간.

그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이야기의 재료가 되었다.

경험은 그대로 글이 되지 않는다.
경험을 바라보는 시간이 있어야 글이 된다.

아마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AI 시대의 작가에 대한 중요한 단서다.

AI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오래 바라보았는지는 모른다.

AI에게 맡길수록 작가의 질문은 더 중요해진다

AI 시대가 오면
작가는 더 이상 모든 것을 직접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초고를 쓰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자료를 정리할 수도 있고
이미지를 만들 수도 있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작가도
자신의 이야기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만들어 볼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다.

예전에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는 것이
그림바카라을 만드는 데 하나의 벽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AI를 만나면서
그 벽이 조금 낮아졌다.

그렇다고 작가의 일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무엇을 만들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AI가 잘 만들수록
작가는 더 많이 골라야 한다.

무엇을 버릴 것인지.

무엇을 남길 것인지.

어떤 문장이 정말 내 문장인지.

어떤 그림이 이야기의 마음을 제대로 담고 있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이 이야기를 왜 세상에 내놓으려 하는지.


AI가 대신할 수 없는 것

나는 AI가 작가를 대신할 것인가를
요즘 자주 생각한다.

그런데 이제는 질문을 조금 바꾸게 되었다.

“AI가 작가를 대신할 수 있을까?”

가 아니라,

“작가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라고.

AI는 나보다 빠르게 문장을 만들 수 있다.

나보다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을 수도 있다.

더 그럴듯한 그림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어느 날 교실에서 들었던
아이의 한마디를 대신 기억할 수는 없다.

내가 처음 바카라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던 순간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다.

내가 별가시에게
왜 별을 주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이 이야기를 쓰면서
어떤 마음으로 한 문장을 지웠다가 다시 썼는지도
대신 느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제
AI가 두렵기보다 궁금하다.

AI가 많은 일을 대신해 준다면
나는 그 빈자리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

아마도 더 많은 경험일 것이다.

더 오래 바라보는 일.

더 깊이 질문하는 일.

그리고 내가 살아온 시간을
나만의 이야기로 바꾸는 일.

나는 AI와 함께 글을 쓴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AI에게 맡기지는 않는다.

AI에게 문장을 부탁할 수는 있어도
내가 왜 이 이야기를 쓰는지는 내가 알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 내가 생각하는
AI 시대의 작가다.

잘 쓰는 사람만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놓지 않는 사람.

AI가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도
세상에는 여전히
자기 삶에서 시작된 단 하나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내가 선택하고 쓴 글의 바카라임은 작가가 지는 것이다. 중요한 건 AI는 바카라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AI가 대신할 수 없는
작가의 자리인지도 모른다.


AI가 이야기를 만들어 주는 시대에도,
나는 내 삶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쓰고 싶다.



https://fishingproductfr.com/@4904fa9a093d468/122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