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삽화를 직접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엔 AI를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by김봄날


플랫폼의 삽화디자이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원고를 첨부하고, 그동안 AI로 시도했던 이미지들을 함께 보냈다.

"이런 느낌인데, 계속 캐릭터가 바뀌어서요"라고 썼다.

답장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작가님, 이 캐릭터가 어떤 마음을 가진 아이인지 먼저 말씀해 주시겠어요?"

순간 멈칫했다.

나는 지금까지 AI에게 무엇을 설명해 왔던가.
눈은 얼마나 크게, 가시는 몇 개, 색은 어떤 톤으로, 표정은 이렇게.
겉모습이었다. 온통 겉모습에 대한 설명뿐이었다.

병실에서 아이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아줌마는 눈에 보이는 것만 그리네."


나는 그때도, 지금도 똑같은 실수를 하고 있었다.

디자이너에게 답장을 썼다.

캐릭터의 겉모습이 아니라, 별가시가 왜 가시를 세우게 됐는지,

그 가시 안에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그리고 그 아이가 결국 무엇을 찾고 싶어 하는지를.


며칠 뒤, 견적서가 도착했다.

한 장에 오만오천 원이었다.

그림바카라 한 권에 필요한 삽화는 열 장이 훌쩍 넘었다.

계산기를 두드려볼 것도 없이 답이 나왔다.

몇 장이 필요할지 모르는데

이 삽화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를 보니 나의

바카라 분위기와 같은 그림이 아니었다.

나는 한동안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결국 정중히 인사를 남기고 대화를 닫았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이번엔 AI를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디자이너가 내게 했던 질문을,

내가 AI에게 던져보기로 했다.

캐릭터의 생김새가 아니라,

이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이 장면에 서 있는지부터 적어 내려갔다.


그래도 쉽지 않았다.

여전히 캐릭터는 자꾸 바뀌었고,

설명은 계속 길어졌고,

마음에 안 드는 그림은 지우고 또 지웠다.

버려진 그림이 채택된 그림보다 훨씬 많았다.

폴더 안에는 세상에 나오지 못한 어린 공주가 수십 명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버려지는 속도가 조금씩 느려졌다.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조금씩 내가 생각한 아이에 가까워지는 그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겉모습을 백 번 설명해서 나온 게 아니라,

이 아이가 어떤 마음인지를 붙잡고 씨름한 끝에 나온 것들이었다.


그렇게, 버려진 그림들 사이에서 삽화가 한 장씩 완성되어 갔다.

사람에게 물었다면 더 빨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무한 반복 속에서,

내가 그리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더 오래,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나무 밑동 굴 그림을 그렸던 그날처럼.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을 읽는 일은,

사람에게 맡기든 혼자 붙잡고 있든 똑같이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화, 금 연재